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
0교시 페미니즘
남자아이는 자신이 겪은 성차별 사례로 “남자가 더 힘이 세니 체육 도구 정리를 맡아서 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여자아이는 성차별 사례로 “여자애는 예뻐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교사로서 이것을 그저 ‘성차별적인 생각을 가진 나쁜 사람의 잘못’이라 말하고, 성차별은 역시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좋지 않다는 ‘중립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유혹에 종종 빠진다. 그러나 아이들이 겪은 성차별은 분명 서로 다른 결과가 되어 돌아온다.
체육 도구 정리를 남자아이에게 맡기는 학교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성별과 상관없이 남자는 여자보다 힘도 세고 체력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힘도 세고 체력도 좋은 사람은, 당연히 그렇지 않은 이에 비해 야근도 자주 할 수 있고, 출장도 멀리 갈 수 있다. 그러니 취업이나 승진에서 여성보다 힘도 세고 체력도 좋은 남성을 우선하는 것은 차별이 아닌 능력주의에 따른 당연한 결과가 된다. 여기서 해당 남성이 정말로 경쟁자 여성보다 힘도 세고 체력도 좋은지는 검증하지 않는다. 남자가 으레 여자보다 강할 것이라 여겨질 뿐이다. 남자아이가 겪었던 ‘체육 도구 정리’란 불평등은 결국 ‘취업과 승진에서의 이득’이란 큰 결실로 돌아온다.
여자애는 예뻐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생활하는 이들은, 성별과 상관없이 여성에게 더 강력한 외모 기준을 적용할 것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높은 외모 기준을 맞추기 위해 화장을 하고, 단순히 위생을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아닌 파마, 염색 등의 값비싼 서비스를 이용하며, 손톱 관리, 하이힐이나 다양한 장신구 구입 등 남성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게 된다. 그렇게 힘들여 외모를 관리한들 남성과의 경쟁에서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없다. 여성과 남성은 외모에 있어서 비교 상대로 여겨지지도 않고 또 별다른 검증 없이 남성은 ‘여성에 비해 힘이 세고 체력이 좋다’고 여겨지는 것과 달리, 여성이 ‘다른 여성보다 정말로 더 예쁜지’에 대한 검증은 아주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성인 남성과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남자라서 갈아야 했던 ‘정수기 물통’이 그저 억울하기만 한 사람이 너무 많다. 남자는 힘이 강해야 한다는 성차별은 물론 사라져야 할 낡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런 성차별적인 생각이 불러온 지금의 기울어진 현실, 그리고 이를 통해 남성이 얻는 이득을 왜곡하지 않고 인식할 수 있으려면 현재의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3~4학년 교육과정이 개정 중이다. 4학년 2학기 사회 2단원은 초등 교육과정 가운데 유일하게 성차별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룬다. 지난해 교과서는 축구 하고 싶어 하는 여자아이를 이상하게 보는 상황과 소설책을 보고 우는 남자아이를 놀리는 상황을 제시해 성차별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힘드니 모두가 서로 배려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기울어진 구조는 단순히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의 성차별이 남성에게 이득을, 여성에게 손해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은폐하지 말아야 한다.
서한솔(서울 상천초등학교 교사, 초등성평등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