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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피디(PD)로 20년 넘게 일하면서 인기 프로그램의 트렌드를 살펴보았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역량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어요. 우선 역량이란 지식과 기술과 태도의 합인데요, 셋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1996년에 처음 방송사에 입사했을 때엔 퀴즈 프로그램이 인기였어요. ‘장학퀴즈’, ‘퀴즈가 좋다’, ‘퀴즈 대한민국’ 등 방송사마다 퀴즈 프로그램을 편성했지요. 80~90년대는 지식의 시대였습니다. 어느 순간 퀴즈 프로그램의 인기가 시들해졌어요.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나 사육신의 이름을 외우는 사람이 인기를 끌지 못해요. ‘저걸 왜 일일이 외우지? 그냥 휴대폰에 쳐보면 나오는데?’
한때는 ‘기인열전’, ‘묘기대행진’, ‘생활의 달인’이 인기를 끌면서 텔레비전에 놀라운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던 때가 있었지요. 이제는 그마저 인기가 시들해졌습니다. 놀라운 주차 신공을 뽐내는 기술자보다 자율주행자동차가 더 신기한 세상이에요. 단순 반복 작업의 경우, 로봇이나 자동공정 기계가 더 잘하는 시대가 왔어요. 기계가 대체하지 않는 노동이란 그만큼 저렴하거나 시장성이 없는 기술 아닐까요?
어느 순간부터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인데요. 사람들의 표를 얻어 승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음악에 대한 지식? 악기를 다루는 기술적 역량? 제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시청자는 좋은 태도를 가진 지원자에게 열광합니다. ‘우와, 저 사람은 힘든 환경에서도 밝게 컸네.’ ‘우와, 합숙기간 동안 많이 힘들 텐데 저 친구는 항상 잘 웃네.’
연예인이든 스포츠 선수든 정치인이든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태도가 좋지 않으면 바로 대중에게 외면받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노동의 종말>에서 제러미 리프킨은 이렇게 말해요. “산업혁명의 결과 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하고, 정보혁명의 결과 컴퓨터가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신할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인류가 최초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유토피아일까요? 소수의 자본가가 생산시설을 독점하고 다수의 인류는 실업상태에 빠지는 디스토피아일까요? 지식으로는 인공지능을 못 당하고, 기술로는 로봇을 못 당하는 시대, 앞으로는 사람의 태도가 가장 중요한 경쟁력입니다. 지식은 학교에서 배우고 기술은 직장에서 익힐 수 있는데요, 태도는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가 없어요. 좋은 태도를 기르는 곳이 가정이라는 점에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태도는 평소의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 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평소 행복하고 즐겁고 긍정적인 생활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아이를 도와줘야 해요.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요? 스스로 열정을 발견하고 몰입하는 습관을 기를 때 행복합니다. 사교육에 찌들어 사는 아이는 평생 남이 시키는 공부를 하고 남이 시키는 일만 하며 살지 몰라요. 그런 사람에게 좋은 태도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아이를 믿어주고 아이에게 시간을 허락해줄 때, 아이는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고 좋은 태도를 얻게 되지 않을까요?
김민식 문화방송 피디 seinfeld6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