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jpg 동시.jpg](http://babytree.hani.co.kr/files/attach/images/72/695/790/031/%EB%8F%99%EC%8B%9C.jpg)
유강희 시인의 〈손바닥 동시〉는 100편으로 묶여 이 달에 출판사 창비에서 출간된다. 가정과 학교에서 재미있는 동시 놀이, 동시 공부의 텍스트로 삼을 만한 동시집이다. 여기에 실린 100편으로 100가지 시 얘기를 할 수 있다. 자수가 가장 짧은 예에 속하는 두 편을 보자.
차가 지나갔다
웅덩이가
날개를
편다
낙숫물
울지 않는다
안 운다
뚝!
행의 전개에 따라 자수를 줄여나갔다. ‘차가 지나갔다’는 3행 끝에서 제목 끝 글자까지를 선으로 이으면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포물선이 만들어진다. 웅덩이는 3행의 “편” 아래 놓여 있고 그곳을 차바퀴가 밟고 지나간다. 촤르르 웅덩이 물이 튀어 오른다. 제목과 각 행의 자수가 6-4-3-2로 줄어들며 이런 절묘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제목과 본문 간 접속의 밀도가 매우 높게 설정된 예다. ‘낙숫물’도 마찬가지다. 행의 전개에 따라 자수가 5-3-1로 줄어든다. 단위 시간 당 줄어들며 떨어지는 빗방울의 개수를 기입해 놓은 것 같다. “뚝” 그치는 마지막 빗방울을 느낌표(“!”)로 시각화했다.
개구리 눈
연못에 숨어
물 바깥 보려고
조금씩 밀어 올린 걸까
천둥
나뭇잎들
깜짝깜짝 놀라서
어서 푸르러지라고
개구리 눈이 큰 것을 “연못에 숨어/ 물 바깥 보려고/ 조금씩 밀어 올린 걸까” 궁금해 하는 표현에는 개구쟁이 아이의 천진한 동심이 담겨 있다. 조금씩 커지는 개구리 눈을 나타내기 위해 자수가 5-6-9로 늘어났다. ‘천둥’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푸르러지는 나뭇잎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자수가 자연스럽게 증가되는 식으로 행이 배치되었다. 내용이 어떠한가에 따라 형식이 긴밀히 연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천둥과 나뭇잎의 관계식도 눈길을 끈다. 성장을 채근하고 깨우치는 죽비소리처럼 표현되었다.
봄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뾰
화음(和音)
여름비가 촐촐촐
비둘기가 꾹꾹꾹
여우팥이 캥캥캥
국수 가족
호로로호로록
후룩후루루룩
뾰록뾰로로뾱,
‘봄’은 글자 하나의 모양(ㅃ, ㅛ)으로 깨어나고 자라는 봄의 생명력을 왕성하고도 역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뾰뾰뾰”를 소리로 읽으면 봄의 동물성이, 모양으로 보면 식물성이 느껴진다. ‘봄’의 글자 형태는 몸에 싹(ㅂ)이 돋은 모양이다. 제목 ‘봄’의 자음 ‘ㅂ’이 본문에서는 ‘ㅃ’으로, 모음 ‘ㅗ’가 ‘ㅛ’로 늘어났다. 3행의 반점은 잠깐의 쉬어감이다. 잠깐 쉬고 났더니 봄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반점 뒤에 이어지는 “뾰”가 1-2행보다 하나 더 늘어난 게 그 증거다.
‘화음’의 1-3행에서는 모두 ‘비’가 감각된다. 1행의 여름‘비’, 2행의 ‘비’둘기, 그런데 3행에는 왜 비가 나오지 않았을까. 여우팥은 주로 남부지방에 많이 나며 여름에 꽃이 피는 식물이다. 여우는 ‘팥’과도 결합하지만 ‘비’와도 결합한다. 3행의 여우팥은 자연스레 여우‘비’를 떠올리게 한다. “여름비”라는 자연현상이 동물(“비둘기”), 식물(“여우팥”)과 더불어 조화를 이룬 소리를 시인은 ‘화음’으로 들은 것이겠다.
‘국수 가족’에서는 한자리에 둘러앉아 국수를 먹는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들 말소리, 국수가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국수 면발이 감촉되고, 시각과 청각과 미각과 후각이 자극된다. 1-3행의 국숫발의 변주는 3행의 “뾱,”에 이르러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완성된다.
공기놀이는 공깃돌 다섯 개면 충분하다. 기본 규칙과 재주를 익히면 얼마든지 재미나게 놀 수 있다. 손바닥 동시는 각각 2음보로 짜인 3행 22자 내외의 간략하고 소박한 시다. 재미와 감각만 담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세계의 깊이와 모순, 가난한 이웃의 현실까지 폭넓게 담아낼 수 있다. 자연과 인생과 성스러움의 깊이 있는 표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작은 손바닥 안에서 인생의 길흉화복을 읽어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위벌레에겐/ 도토리 한 알도/ 위대한 왕국,”(「작은 왕국」)인 것처럼, 동시 놀이의 참가자들에겐 손바닥 동시가 동시 놀이의 위대한 왕국일 수 있다. 새로운 동시 놀이의 형식이 탄생했다. 「자전거 타기」(“길을 감았다/ 풀기만 하면 돼/ 중요한 건 방향이야!”)처럼, 중요한 건 동시 놀이의 방향이다. 세 편 더 소개한다.
새벽 편의점
컵라면 뚜껑 위에
두 손 얹고 잠시,
눈 감은 막일꾼
개
개 삽니다 대신
사람 삽니다, 하면
얼마나 무서울까
탱자나무
서로 껴안고
있으면서 어떻게
찌르지 않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