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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하면 흉 안 하면 조롱,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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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4).jpg» 조르주 쇠라, <분첩을 가지고 화장하는 여인>, 1889~1890년, 캔버스에 유채, 런던 코톨드 미술관

대학을 졸업하고 6년간 일간지 기자로 일했었다. 수습기자 시절, 나는 잠을 3시간도 못 자며 새벽까지 경찰서와 병원 응급실을 돌곤 했었다. 그렇게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일할 때도 나는 화장하고 다녔다. 여기자도 얼마 없던 시절이라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는 걸 알 때였다. 화장을 안 하고 머리는 떡이 진 채 다니면 “쟤는 여자도 아니야. 자기관리가 엉망이지”라는 흉이 잡히고, 화장을 하고 다니면 “수습인데 화장할 정신이 있는 거 보면 일을 대충대충 하나 보지?”라는 흉이 잡히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욕먹을 거라면, 내 몸을 추스르고 다니면서 욕먹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게 내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방법이기도 했다.

‘여성 기자’라는 특수한 환경을 벗어나면 이 같은 딜레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어느 날 나는 엄마가 되었고, 처음 하는 육아는 나를 매일 ‘멘붕’에 빠뜨렸다. 밤샘 모유 수유 때문에 잠은 늘 모자랐고, 천 기저귀를 썼던 터라 빨래는 항상 산더미.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나날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거울을 보게 되었다. 거울 속에는 웬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다크 서클이 내려와 있는 퀭한 눈을 한 채, 늘어진 모유 수유 티를 입은 한 여자. 그때부터 나는 아이와 외출할 때 아무리 피곤해도 화장을 했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비난받을 이유가 될 줄이야. 어느 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채 밖에 나갔더니, 웬 모르는 할머니가 “아이 옷을 이렇게 얇게 입혀서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한참 꾸짖으셨다. ‘내 아이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하고 좋은 마음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마지막 한마디가 맥을 탁 풀리게 했다. “(애는 이렇게 입혀놓고) 화장할 정신은 있었나 보네”

한국사회에서 ‘아줌마’는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모멸적인 단어로 소비되는지 나는 잘 안다. 인터넷만 켜 봐도 어린 아기를 키우는 엄마는 눈곱 낀 눈에다가 안 감은 머리를 야구모자로 감추고, 펑퍼짐한 몸매의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렇게 애 엄마는 일단 미모를 포기한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조롱받는다. 그런데 애 엄마가 화장하고 잘 차려입으면? ‘애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의심받는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의 <분첩을 가지고 화장하는 여인> 속에 등장하는 마드레느 노브로크(Madeleine Knobloch)도 ‘애 엄마’였다. 쇠라의 모델이면서 애인이었던 그녀는 쇠라의 아이까지 낳았지만, 쇠라의 부모는 그녀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 숨겨진 여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그녀가 화장을 한다. 그런데 표정이 영 꺼림칙하다. 마치 억지로 화장대에 앉은 듯 퉁퉁 부은 표정이다. 썩 예뻐 보이지도 않고 살집도 있는 그녀에게 “애 낳았다고 모델일 포기하고 그냥 퍼진 거니? 화장이라도 하지그래?”라고 쇠라가 지청구라도 했던 걸까. 하지만 그녀가 화장하고 자신을 꾸미는 데만 열중했더라면 아마도 누군가에게 ‘허영 많은 여자’라고 손가락질당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애 엄마가 아니더라도, 기자가 아니더라도 이 딜레마는 모든 여성이 겪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괜히 ‘꾸미기 노동’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화장하는 여성에 대한 이 같은 이중 시선 속에서, 오늘도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화장품을 집어 들다 멈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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