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보육교사 자격기준 강화됐지만 여전히 문턱 낮아
교사 1명당 6.12명의 영유아 담당…노동 심리 스트레스 높아
서울의 한 어린이집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생후 11개월 된 아이를 이불에 씌운 상태로 올라타 온몸으로 눌러 숨지게 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경찰에 긴급체포된 어린이집 보육교사 김아무개(59)씨는 “아기가 잠을 자지 않아 억지로 잠을 재우기 위해 그랬다”고 진술했습니다. 2015년 1월 인천 송도 어린이집 교사의 4살 여아 폭행 사건을 계기로 원내 폐쇄회로티브이(CCTV) 설치 의무화, 보육교사 자격기준 강화 등의 법 개정이 이뤄진 뒤에 벌어진 일이라 충격은 더 컸습니다.
경찰 수사 초기라 아직 김씨의 범행 동기나 심리 상태 등이 드러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2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잠재우려고’ 온몸으로 누른 행동이 일반적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김씨에 대한 처벌은 절차대로 진행하되, 이 사건을 계기로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처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집중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함께 제기되고 있습니다.
■ 어린이집 보육교사 자격 기준 더 강화해야
우선 제기되는 쟁점은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자격 기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2016년 이전에는 사실 온라인 수업만 들어도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딸 수 있어서 자격증을 발행하는 문턱이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인천 송도 어린이집 교사의 4살 여아 폭행 사건을 계기로 법 개정 여론이 일면서, 2016년 1월12일부터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이 개정됐습니다.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과정에 오프라인 대면 수업 과목이 추가되고, 실습 시간도 160시간에서 240시간으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 자격 기준도 충분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새로 나옵니다. 많은 수의 보육 관계자들과 전문가들도 보육교사 양성과정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2017년 12월 육아정책연구소가 발간한 ‘보육교직원 전문교육과정 개발의 방향성 탐색 연구’에서 아동 보육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76.5%의 전문가들이 ‘일부 도움이 되나 보완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 보육교사 1명당 아동 6.12명 돌보고 있어
동시에 여러 명의 아이를 세심하게 돌봐야 하는 보육교사들의 노동 환경에 대한 지적도 나옵니다. <한겨레>가 보건복지부 어린이집정보공개보털을 바탕으로 계산해보니, 2018년 6월 기준 보육교사 1인당 돌봐야 하는 아동은 약 6.12명입니다.
그러다 보니 보육교사들은 업무시간 내내 쉴 틈 없이 아이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15년 전국보육실태조사’를 보면, 보육교사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9시간36분입니다. 반면 휴식시간은 18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아이 한 명을 겨우 잠들게 도와주면 다른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동시에 업무 일지도 쓰고 식사도 챙겨주는 일까지 해야 한다”라며 “한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보육교사가 의사소통도 어려운 영유아 여러 명을 한꺼번에 보호하기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보육교사 숫자를 늘려서 1명당 돌봐야 하는 아동 수를 줄이고, 휴식 시간도 좀 더 폭넓게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보육교사 휴게시간 지침 강행 규탄 기자회견’을 열며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점심 시간, 낮잠 시간 동안 1명당 많게는 40여 명의 아이들을 돌보도록 한 정부 지침을 비판하고 있다. 양선아 기자
■ 보육교사 업종 특수성 무시한 휴게시간 지침변경
하지만 정작 정부의 행정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인해 근로시간 휴게시간 변경 가능 특례업종이었던 보육교사 직군이 이번 달부터 그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보육교사들은 이제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업무 4시간에 30분 휴식, 업무 8시간에 대해 1시간 이상을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언뜻 앞서 필요하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보육교사들의 휴게시간 등이 늘어난 것 같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릅니다. 보육교사들은 하루종일, 식사 시간까지 아이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한 보육교사가 의무 휴식시간을 가지면 또다른 보육교사에게는 두 배의 돌봄 노동으로 업무가 가중되는 것입니다. 결국 보육교사 숫자가 늘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기준법만 현실성 없이 바뀐 점이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보육교사들은 휴식 시간에도 일을 하고 이 시간을 노동 시간으로 인정받지도 못 하게 됐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학부모들이 거리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보육교사 휴게시간 지침 강행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대책이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보육교사의 점심시간도 근무 시간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관련 기사 : “보육교사에 휴게시간 보장?…점심시간 근무 인정하라”)
■ 보육교사 심리 스트레스 해소 대책도 마련해야
아울러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보육교사들의 심리 상담과 치료받을 기회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보육교사들이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심리 상담과 치료를 받을 기회는 마땅찮습니다.
중앙육아종합지원센터는 2015년 인천 송도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이후 보육교직원 상담 프로그램을 실시했습니다. 서울육아종합지원센터의 통계를 보면,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한 서울 지역 보육교사는 2674명이었습니다. 서울 지역 보육교사가 총 약 4만명인 것과 견주면 그리 많지 않은 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효정 한국영유아보육학회장은 “보육교사는 스트레스가 많은 감정노동을 맡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이 돌봄에서 중요한 포인트”라며 “중앙육아종합지원센터 심리 상담사를 더 충원하고 보육교사에 대한 심리적 치료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육교직원 상담 프로그램은 전 보육교사가 대상이 아니라, 신청한 교사에 대해서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비정기적이기도 하고, 직접 신청해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진짜 상담이 필요한 교사라도 신청을 하지 않으면 상담을 받지 못하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서울 소재 한 어린이집 원장은 “보육교사들이 과중한 업무에 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심리 상담을 받을 기회는 거의 없다”며 “보수교육을 받도록 규정돼 있지만 심리 상담이나 교육 과정은 없다. 중앙육아종합지원센터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있지만 직접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며, 한 번에 10명 내외만 받을 수 있어서 사실상 받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든 보육교사들이 받을 의무가 있는 보수교육 과정에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설치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12일 어린이집 원장 및 보육교사의 심리적, 정서적 안정에 관한 교육 과정을 보수교육에 포함하는 영유아보육법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 의원은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육교사가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함과 동시에 정서적 안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동학대 사건의 원인을 전부 보육교사의 심리 건강 문제로 단순화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보육교사는 물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보육교사들에 대한 심리 상담 강화는 시급한 과제일 것입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