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사과밭에 다녀왔다.
봄에 사과 나무 한 그루를 가족 이름으로 분양받아, 가을에 수확 겸 여행을 나선 것이다.
시부모님, 시동생네 가족 네 명, 우리 가족 네 명
이렇게 3세대가 차 두 대에 나눠타고 5,6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1박2일로 다녀왔는데,
어른들도 아이들도 1년 내내 기대에 부풀어 기다려온 여행이건만
어쩐지 이번은 시작 전부터 삐걱거림이 너무 많았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세 집의 서로 다른 의견들에 갸우뚱하며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결국, 떠나는 전날 남편과 내가 크게 싸우는 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나의 전화 고발(?)로 비상사태임을 파악하신 시부모님께서 버선발로;; 한걸음에 달려오시고
중재에 나서셨는데.. 그렇게 일단 문제는 잠잠해 졌지만, 여행 당일에는 시동생네 부부의
철없고 무심한 태도에 모두가 마음을 상하는 일이 매순간마다 일어나고 말았다.
뭐, 여행 어디 한 두번 해보나.
친한 사이나 가족끼리도 여행하면서 티격태격 싸우는데
아들 둘만 있는 집안에 며느리들과 시부모가 함께 떠났는데 좋은 감정만 있을 순 없다.
아! 복잡한 이야기는 일단 좀 접어두고!
맑고 청명한 이 좋은 가을날을 이런 얘기들로 채우는 건 너무 아깝다.
일단 사과밭 사진이나 구경하고 보자!
간다 안간다, 이대로 접자, 너희들끼리 가라 나는 안 간다.. 사과고 뭐고 다 싫다..
전날까지 난리였던 사람들이 아침8시부터 출발해 고속도로를 달리며 탁 트인 하늘을 만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사이좋고 다정한 가족으로 급변신;;
반복되는 일상으로 부엌에서 시들어가기 직전이던 큰며느리와 시어머니는 바깥 풍경에 감탄하며
서로에 대한 칭찬을 쉴 새없이 늘어놓기 시작.. 결국엔 아이들에게 너무 시끄럽다는 원망을 들으며
겨우 자제를 .. 얘들아, 이게 다 날씨 탓이란다. 어쩌겠니.
일찍 출발한 덕에 6시간 걸릴 거리를 4시간만에 돌파하고
가족 모두는 서로의 현명함을 자화자찬하느라 급화기애애 모드로.
그도 그럴것이 사과밭 현지의 날씨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올법한 수준이었으니..
드넓은 사과밭 사이를 걸어 아이들이 우리 가족의 이름이 붙어있는 사과나무를 발견하고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사과들을 확인하는 순간,
온가족의 흥분수치는 최고조에 도달..
이때가 이번 여행에서 가족 모두 한마음이 된 '단 한 순간'이었다는 건 좀 아쉽구나..;;
사진 찍으면서 보니, 우리 아들 작년 이맘때 사과밭에 왔을 때랑 옷이 똑같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은 엄마..;; 옷값에 인색한 엄마 표가 너무 난다..
그래도 뭐, 1년 전보다 아들 얼굴에 젖살이 좀 빠진 걸로 '전과 후'구분이 되지않을까..
이런 일은 얼렁뚱땅 빨리 넘어가자.
이번이 두번째라 아이도 어른도 모두 손발이 척척.
사과밭에서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사과 위에 함께 얹어 옮기는 아이들..
맛있는 사과를 먹을 수 있게 해 준 자연님에게 감사의 뜻으로 하늘 가장 가까이에 열린
사과 하나를 남겨두고 순식간에 수확은 마무리되었다.
태풍 피해가 많았던 올해는 작년에 비해 수확량이 좀 적어 모두들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맛만은 작년과 다름없이 꿀.사.과.
시중에서 제법 비싼 값을 주고 사 먹어도 여기 사과만큼 맛있는 건 없었기에
1년 내내 이 날을 더 손꼽아 기다려왔다.
차에 실어 옮기는데 차안 가득 달콤한 사과 향기가 그윽하게~
사과를 차에 다 실은 다음엔, 가까운 온천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곳은 시어머님의 친정이 있는 곳이라 근처의 친척댁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어른 6명에 어린 아이들까지 4명, 총 10명이 한꺼번에 신세를 지는 셈이라
어머님의 친척댁에 되도록 부담을 드리지 않고(그 댁 분들이 이미 연로하신 분들이라..)
가능한 한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은 서로 의논하고 분담하자는 뜻에서
여행 전, 세 집 사이에 연락이 분주했었다.
친척집에서 하룻밤 신세지는 걸 뭘 그리 유난떨며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뭐, 같은 가족이라도 성격은 다 다르니까 매사에 쿨한 그런 태도를 어느정도 이해는 해왔지만
이번에는 정말 시어머님도 남편도 두손두발 다 들 정도로 둘 다 너무했다!
아... 형제 둘 밖에 없는 이 3세대 가족 안에서도 관계는 이렇게도 복잡하고 어렵다.
민주? 자유? 책임? 배려?
그런 건, 집 현관문을 열고 나선 사회에서만 실천해야 하는 게 아니란 걸,
당장에 우리 가족 안에서 수도 없이 연습하며 실천해 나가야한다는 걸.
내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게 이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여행 전엔 남편을 비롯한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불만만 가득찼는데
여행이 끝나고 나니, 나 역시 내 욕심에 충실하고 싶은 게 여행 내내 1순위였던 것 같아
너무 민망하고 부끄럽고 .. 그렇다.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가는 시골 장터에서 혼자 싸돌아다니는 나를,
온 가족들이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다.. 식구들 미안,
그래도 시골장은 내겐 너무 매력적인 걸 어떡해요;)
3세대가 좌충우돌. 이번엔 어른들 이야기가 너무 풍성(?)해서 아이들 얘기는 하나도 없다?!
스스로는 남을 먼저 더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하는 행동은 내가 아닌 상대를 위하는 것임을 철썩같이 믿고 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내 욕망과 편리가 전제가 되어있었던 건 아닐까.
가족이기에 좀 더 바라고 기대하는 게 많기에, 실망도 늘 그만큼 돌아오는가 보다.
내가 다른 가족들의 부족한 면을 이렇게 크게 부풀려 느끼는 것처럼
상대방도 내가 이번 여행에서 열심히 한 부분보다, 이기적이었던 면만 부각시켜 보진 않았을까?
솔직히 나는, 장터 구경을 더 천천히 즐기면서 하고 싶은데
많은 식구들과 시간을 맞추는 게 내내 불만이었다.
달랑 우리 가족만 왔으면 얼마나 편하고 신났을까. 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고..
아휴. 사과밭에 대한 로망만 키웠지, 이런 고민을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런 일들이 있었건 말건,
집으로 가져온 사과들은 넘치게 이쁘기만 하고 맛 또한 기가 막히다.
역시,, 사람에 비해 자연은 위대하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