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 32개월 예린이가 본교에서 진행하는 활쏘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려고 아빠와 오후 1시에 도착했다. 차에서 잠을 자다가 와서 그런지 다소 낯설었지만 도착하자마자 금방 적응을 했다. 보는 사람마다 배꼽 인사를 한다. 그러자 먼저 왔던 10여 명의 언니, 오빠들이 반갑게 맞으며 눈높이 인사를 해준다. 이날 예린이는 그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숨바꼭질과 ‘나 잡아봐라’를 하며 즐겁게 놀았고, 심지어 언니들이 귀엽다며 업어주기도 했다. 오후 4시, 행사를 마치고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예린이는 가기 싫다며 구석에 있는 석류나무 뒤에 숨어서 아빠의 애간장을 태웠다.
예린이는 재작년 가을부터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작년에는 3월에 진행되었던 칡 캐기, 옥상에서 진행되는 별 보고 잠자기, 그리고 여름에는 물총서바이벌, 가을축제와 숲 속 놀이와 송년의 밤 등에도 모두 참여했다. 물론 처음에는 낯을 가리고 쑥스러워했다. 그러나 행사에 참여하는 숫자가 늘수록 아는 친구, 언니, 오빠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저절로 사라졌으며 오히려 자신이 행사의 주인공처럼 행세했다. 참여하면 할수록 사회성이 자연스럽게 향상되었다. 이제 본교의 행사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놀이문화의 공동체로 무르익어가고 있다.
2019년 4월 14일 본교 개교 10주년이다. 이제 명실상부한 공동체가 되었으며 누구나 가입 후에 조금만 활동을 하면 저절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놀이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이 말의 로고스란 아빠들이 육아와 놀이에 적극적인 참여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네이버에 기반을 둔 카페로서 처음에는 온라인에서만 활동했지만 점차 오프라인 활동이 증가하고, 다양해졌으며 놀이와 육아의 고급정보를 공유하고 실천함으로써 육아란 스트레스가 아니라 행복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1박 2일 행사를 할 때, 엄마가 참여하면 놀라워하며 더욱 좋아하게 된다. 바로 수십 명의 아빠가 참여했는데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는 아빠가 없다. 사실, 모임에서 술은 금지품목이다. 아빠 학교의 기록을 보자. 현재 회원은 450명, 하루 방문객 2,000명, 게시글 30개, 댓글 500개 정도가 올라오고 있다. 회원이 적은 이유는 1달 이내에 방문하지 않으면 강퇴를 시킴으로써 활동하는 아빠만이 참여할 수 있다. 그러기에 지난 10년간 강퇴당한 아빠의 숫자는 15,000명에 이른다. 또한 게시글에는 회원들의 실질적인 활동만을 올리고 있으며 스팸 글이나 공구 등의 글은 원천 봉쇄를 함으로써 진정한 청정 카페가 되었다.
» 아빠놀이 학교 송년의 밤 행사. 사진 제공 권오진.
아빠 학교의 3대 시스템
1. 모든 아빠는 아빠학교 교장이다.
이 개념은 필자가 2007년에 정립한 개념으로서 모든 아빠는 자신의 집에서 교장이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아빠가 교장이란 뜻이며, 아빠라면 누구나 우리 집에서 교장이다. 그리고 엄마는 이사장이며 내 아이는 학생이다. 내 집은 학교이며 아빠가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곧 수업시간이다. 그러므로 수업시간에 대한 특별한 시간표가 없어도 언제나 수업을 할 수 있다. 그저 아이의 나이에 따라서 신체놀이, 도구 놀이, 실내놀이, 야외놀이, 체험 놀이가 가능하며, 아이와 놀면 그 시간이 언제나 수업시간이다. 때론 자정에 영화를 보러 가는 수업도 가능하고, 무인도 체험수업도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늘 아빠와의 놀이를 좋아하며 아빠가 놀아주기를 학수고대한다. 단지 1시간, 2시간이 아니라 매일 365일을 놀고 싶어한다. 아빠가 잘 놀아주면 아이는 늘 행복하다. 여기서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면 아이는 아빠의 말을 잘 듣는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누구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말을 잘 듣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행복양육법이며, 유비무환 양육법의 핵심이다. 아이들이란 누구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며, 또한 칭찬을 받으려고 말을 잘 듣는다.
아빠가 아이와 잘 놀아주면 훈육할 일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이런 놀이를 통하여 아이는 창의성, 사회성, 자존감, 배려, 교감, 공감, 리더쉽 등 18가지의 인성이 발달하며, 체육심리학에서 말하는 순발력, 민첩성 등 9가지의 신체기능이 발달한다. 이를 통하여 자기 주도성을 발달시킬 수 있으며, 꿈과 재능과 소질을 발견하고 키워줄 수 있는 계기로 만든다. 그동안 관념적으로 아빠란 그저 많은 돈을 벌어오는 역할로 축소해서 해석을 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작은 역할이며, 본래 교장의 역할로서 하게 된다면 인성과 자기 주도성은 물로 재능까지 키워줄 수 있다.
2. 부부가 행복하면 아이는 저절로 잘 키울 수 있다.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육아 전문가들은 백가쟁명식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결론은 단순하다. 그저 부부가 행복하면 된다. 그러면 양육과 훈육은 저절로 쉽게 이루어진다. 많은 부부가 양육과 훈육에서 어려움을 겪고 하소연을 한다. 만일, 아이가 떼가 심하거나 밥을 잘 먹지 않거나 동생을 때린다 등등 고민을 한다. 그런데 그 이유를 보면 훈육이란 미명아래 아이와 수직적인 관계를 만들면서 명령, 공갈, 협박을 자신도 모르게 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양육의 기본인 아이에게 공감을 해주는 법을 알지 못한다. 최고의 양육법이란 바로 부부가 행복해야 한다. 이것을 실천하면 아이는 저절로 키울 수가 있다. 더는 양육과 훈육이 필요하지 않다.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줄 때, 최고의 양육이 된다. 차선책이 아빠가 아이와 잘 놀아주는 것이다. 이것은 곧 아내를 가장 사랑해주는 쓰리쿠션 사랑법이다.
아이들이란 늘 따라쟁이 습성을 가진다. 엄마와 아빠가 하는 행동과 언어와 표정을 따라 한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공감과 교감과 소통과 배려와 경청을 배운다. 그래서 부부의 행복은 저절로 최고의 양육법이 된다. 그러나 부부의 불화가 잦고 부부싸움을 자주 한다면 이는 아이에게 어떤 느낌과 기분이 들까? 유아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무섭고, 두렵다. 초등학생이 되면 부모의 이혼에 대한 공포가 조성된다. 중고생이라면 결혼이란 곧 공포와 두려움으로 대상으로 각인된다. 또한 부부싸움 후에 각방 쓰기를 하면 아이의 입장에서는 싸운 후에 대처법을 배우게 된다. 그 결과 공동양육과 일관성 훈육을 불가능하게 하는 한계를 가진다. 부모가 부부싸움으로 분노가 많다면 훈육에 대하여 잘못된 편견을 갖게 된다. 부모가 지시하고 아이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훈육의 본질이란 아이가 해야 할 일과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고 따르는 일이다. 명령과 지시는 다른 개념이며 아이가 억지로 하는 것과 수행은 역시 다르다. 또한 훈육할 시간도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훈육이란 지시를 수행하는 법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부모에게 혼나서 울먹일 때 하는 훈육이란 협박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을 보면 점점 부부 사이에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결혼 5년 이내의 부부의 이혼이 증가하고 있다. 부부가 처음에는 사랑했기에 결혼했지만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이란 상대방의 이야기에 마쳐주는 일이 많아야 한다. 공감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대부분 한계를 갖게 되면서 격한 갈등과 반목을 하면서 기 싸움을 한다. 결혼 초기에 내가 이겨야 행복한 결혼생활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서로 다음을 인정하지 못하기에 발생한다. 하지만 마쳐주는 일은 부부가 되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며, 근본적인 행복의 방정식인데 그것이 공감이며 긍정의 심리학이다. 그래야 소통과 교감과 협력관계가 형성되고, 공동양육과 공동훈육이 이루어질 수 있기에 가정의 평화도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모든 부부에게는 면죄부를 제공한다. 그 이유는 대부분 15년의 공교육을 배우면서 국영수는 잘할지 몰라도 공감하고, 교감하고, 소통하고, 배려하고, 신뢰에 대하여 별로 배운 적이 없다.
공교육에서는 진학을 위하여 외우는 것은 배웠지만, 서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저 학창시절이란 공부지상주의에서 줄서기에 바쁘게 살아왔다. 심지어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윤리 과목 의 내용을 봐도 점수를 내기 위한 윤리다. 경험론이나, 칸트, 사르트르, 하이데거 니체, 실존철학 등을 배우지만 역시 외우는 것에 불과한 지식의 차원이다. 그 결과, 우리는 인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인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결혼을 한다. 그 결과, 내가 공감해주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공감을 받기를 바라며, 내가 배려해주지 않으면서 배려를 먼저 받으려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배워본 적도 없기에 결혼생활이 심리적으로 힘들고, 육아는 더욱 고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서로 다름을 알고, 공감을 실천한 부부의 사례를 보자. 4살, 6살, 8살의 3자녀를 둔 부부가 있다. 아내는 정규직이며, 남편은 사업 초기이므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그런데 평소 아내가 퇴근하면 피곤한 표정을 짓고, 짜증도 자주 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퇴근 후에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부부관계도 좋지 못하다. 여기서 남편에게 공감의 팁을 알려주었다. 바로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네 사람이 달려가서 반겨주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아내가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 때, 남편과 세 아이가 동시에 엄마에게 달려가면서 ‘엄마’ ‘여보 수고했어’라는 말을 하며 안겼다. 그랬더니 아내의 피곤한 얼굴은 사라지고 환한 표정으로 밝아졌다고 한다.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 ‘당신 오늘 회사에서 일하느라고 수고했어’라는 뜻으로 남편과 아이가 엄마이자 아내에게 공감을 보내주었기에 아내는 이를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란 말과 같이, 공감 역시 내가 먼저 주어야 한다. 공감이란 샘물과 같이 영원히 사용해도 계속 나온다. 또한 공감이란 교감과 소통과 경청과 신뢰로 들어가는 출입구와 같다.
3. 놀이가 최고의 양육과 훈육 스킬이다.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와 많은 놀이를 경험하면 된다. 그러면 양육과 훈육의 어려움이 적어진다. 놀이의 속성은 곧 행복이며 사랑이기 때문이다. 놀이에서 ‘아빠 효과’란 잘 놀아주면 아이에게는 심리적, 정서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아이 스스로 감정조절을 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그래서 아빠가 잘 놀아주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 늘 편안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아이의 인성은 10살이면 90%가 완성된다고 뇌과학자들이 말하며,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의 판단능력이 15살이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중학교 때의 놀이는 별로 아이에게 영양가가 적다는 뜻이며, 어릴 때 놀아주는 것이 최고의 사람 교육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빠가 아이와 놀아줄 시간도 많지 않다. 보통 5~8년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더는 놀이가 없다. 아이와의 놀이는 참 쉽다. 그 이유는 이미 아빠와 놀고 싶은 공감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가 ‘아들아, 놀자’라고 하고 큰소리로 외치면 즉시 놀이가 시작된다. 내가 정리한 놀이는 5,000가지이며 생활놀이다. 그런데 그 놀이는 모두 쉽다. 집에서 보이는 모든 물건으로 놀이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이불만 있으면 300가지 놀이, 박스만 있어도 300가지 놀이, 신문지가 있으면 1,000가지 놀이를 할 수 있다. 아빠들이 알고 있는 축구, 농구, 야구, 배구, 골프, 폴로 등이 상식은 훌륭한 놀이의 툴이 된다. 또한 스토리 텔링 놀이 기법을 알면 집에서도 자동차 놀이로 여행을 떠날 수가 있고, 의사 놀이를 할 수 있으며, 아무것도 없어도 요리 놀이도 할 수 있다. 그저 상호작용을 생성시킬 수 있으면 모두 놀이가 되기 때문이다. 놀이의 특징을 살펴보면 아빠가 아이보다 행복할 때, 놀이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아빠의 컨디션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놀이를 어려워하는 아빠들이 많다. 그 이유는 가짜놀이를 하기 때문이다. 놀이는 양의 개념이 아니라 질의 개념이며 놀이의 주도권은 아이에게 있을 때, 진정한 놀이가 이루어진다.
아빠 놀이학교는 곧 놀이문화의 공동체다.
1. 공동체의 놀이는 행복이다.
2018년의 아빠 학교 활동은 공동체가 활성화가 되어 놀이문화가 시작된 원년이다. 작년 봄부터 활동을 보면 3월에 칡 캐기 행사, 별 보고 잠자기, 물총서바이벌, 숲 속 교실, 가을축제, 송년 1박 2일 등을 진행했다. 전에는 대부분 내가 진행했지만 작년에는 대부분 서로 다른 아빠들이 주최해서 진행했다. 또한 행사에는 거의 아나바다를 진행했다. 평소 아이가 놀지 않던 장난감이나 옷, 책 등으로 나눔을 했다. 받는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주는 아이들 역시 보람을 느꼈다. 이는 아나바다 반에 영구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삼삼오오 자발적, 자생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서 만나는 아빠들이 급격하게 증가를 했다.
» 아빠와 함께 한 칡캐기, 연날리기 체험. 사진 제공 권오진.
공동체가 행복이란 이유는 서로 자주 만나야 되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어색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렵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카페에서 아빠들이 서로 교감하고 공감을 하기에 쉽게 친하게 된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친구가 되고, 형, 동생, 언니, 누나, 오빠가 되었다. 그러자 동생들은 따르고, 형, 오빠, 언니들은 동생들을 잘 챙겨주었다. 드디어 아이들이 동무들과 놀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은 아빠다. 아빠가 항상 아이를 데리고 참가를 했으며, 참석하기 전, 카페에서 친구들의 얼굴을 익힘으로써 어색함을 줄여주었다. 아빠 학교에는 전국에서 좋은 아빠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육아 도서를 출판한 아빠도 여러 명이다. 그래서 행사를 하면 아빠들이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아이들끼리 놀게 해주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하여 저절로 친구를 만들면서 소통과 교감을 했다. 그러면서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주기 어려운 사회성, 소통, 배려 등이 저절로 향상되었다. 드디어 아이들은 놀이를 통하여 행복을 경험하고 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2. 유유상종과 따라쟁이 시스템
아빠 학교에 가입하면 누구나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 그 방법 역시 간단하다. 하루에 댓글 하나 올리기를 하면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그 이면에는 유유상종과 따라쟁이가 있다. 먼저 게시글을 올리면 아빠들이 많은 아빠가 댓글을 단다. 그러면서 아빠들끼리 유유상종이 이루어진다. 물론 처음에는 서먹하지만 매일 방문하면서 점점 낯가림이 사라진다. 또한 댓글을 달면서 선배 아빠들이 아이들과의 다양한 놀이를 보면서 내 아이와 놀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하루에 30개 정도의 게시글이 올라오니 몇 개만 살펴봐도 놀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저절로 아이와 놀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서 놀이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따라쟁이의 습성이 잉태된다. 물론 처음에는 다소 어눌한 점도 있지만 계속 가볍게 따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이와 잘 놀아주는 아빠가 될 수 있다. 이미 선배 아빠들이 매일 다양한 놀이의 스킬을 아주 가볍고, 즐겁게 노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로 유유상종을 통한 따라쟁이의 힘이다.
3. 16개 반의 활동
본교는 학교 시스템을 준용하여 운영하고 있다. 16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반은 반장을 중심으로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각반에는 학교와 같이 반장, 부반장, 줄반장의 아빠가 있으며 각반의 일을 나누어 맡아서 하고 있다. 반의 현황을 살펴보면 신입쟁반, 스마트폰중독예방반, 아나바다반, 꿈점검표반, 요리반, 상장반, 승급반, 도서반, 댓글반, 생일반, 놀이반, 식물동물반, 커뮤니티반, 상담반, 우아달반이다.
신입생반은 신입 회원들이 연착륙을 도와주며, 스마트폰 중독 예방반은 가정에서 영유아의 스마트폰 사용의 절제에 대한 지침을 알려주고 공유하며, 아나바다반은 커뮤니티 행사 때마다 진행되는 나눔을 활성화를 시키며, 꿈점검표반은 아이들의 꿈을 체크를 해주고 있다. 각 반에서 특성에 맞게 프로그램이 있으며 전체 회원들과 공유하고 있으며, 다른 반과의 연대와 협력이 다수 이루어지고 있다. 만일 작은 행사가 있으면 아나바다반에서 나눔에 대한 안내를 공지를 함으로써 성공적인 아나바다를 돕고 있다. 요리반에서는 매달 혹은 매주, 요리에 대한 미션을 공지로 올리면서 아빠들이 따라서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꿈 점검표 반에서는 매달 아이들의 꿈을 체크를 함으로써 내 아이가 지금, 이 순간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때론 2~3개 반이 연대를 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 참여하면서 내 아이와 놀이를 하게 되고, 이를 통하여 공감하고, 교감하면서 소통과 신뢰가 쌓여가고 아이를 키우는 행복을 알아가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활동이 융합한 학교이며, 공동체가 되었다.
4. 커피값 보내기
본교의 소프트웨어 중에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것은 단연 커피값 보내기이다. 댓글 반이나 우아달반, 요리반, 꿈 점검표 반에서 진행되는 미션을 일정 수준 실천을 하면 커피값을 보내는 시스템이 가동된다. 그 금액은 800원이다. 이것의 시작은 6년 전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금액이 2,000원이었다. 참여하는 인원도 10명 전후였다. 그러다가 참여 인원이 20명이 넘으면서 지금의 금액으로 인하했다. 만일, 요리반의 미션에서 아이와의 요리 놀이 10개를 올리면 800원 커피값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요리반의 반장이 10개를 달성해서 축하한다는 공지글을 올린다. 그러면 회원들이 댓글로 축하하며, 커피값 보내기에 참여한다는 글을 보내면서 800원을 보낸다. 얼핏 보면 보내는 돈보다 인건비가 더 많이 든다. 그런데 그 속내를 보면 800원+칭찬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받는 사람은 감사하다는 답글을 달아준다. 비록 800원이라는 돈은 별거 아니지만 이로 인하여 칭찬을 하게 되고, 받는 사람에게는 성취감을 얻게 된다. 양육과 훈육에서 터닝포인트를 만드는 것이 성취감인데 커피값 보내기의 핵심 역시 아빠들에게 성취감을 얻게 된다.
성취감이란 부정적, 무관심을 긍정적이며 관심으로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3일 정도 행사를 진행하면 대충 2만원 내외의 돈을 받게 된다. 그럼 그 돈으로 가족과 작은 파티를 하고, 이 사진을 찍어서 다시 게시글에 올린다. 물론 처음 참여하기란 생소하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매우 재미있는 어른들만의 유치한(?) 놀이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아빠들은 저절로 유유상종이 무르익게 되고, 따라쟁이를 가속해준다. 이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더욱 높여주는 밑거름이 되었다.
에필로그) 놀이 문명의 부재 시대가 열리다.
아빠 학교는 비록 400명에 불과한 작은 카페이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는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아빠들이 육아와 놀이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그것을 공동체 놀이에서 즐기고 있다. 주말이 되면 전국에서 3가족, 5가족, 10가족의 소모임이 여러 곳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또한 외동이인 경우, 한 명을 더 낳으려는 시도가 목격되고, 아이가 2명이 있으면 행복이 2배라는 인식이 점점 팽배해지고 있다. 바로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여기서 공동체의 실질적인 의미를 살펴보자. 키즈 카페에서 모르는 가족끼리 만나서 아이들이 함께 노는 것은 공동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부모들끼리, 아이들끼리 교감과 공감을 끌어낼 수가 없다. 공동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아빠끼리, 또는 아이들끼리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통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사람이란 자주 만나서 놀다 보면 저절로 친한 사이가 된다. 바로 이 점이 본교의 강점이다. 가입해서 활동하면 게시글에 수많은 글과 사진들이 올라온다. 그러면 저절로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며, 댓글을 통하여 공감하고 교감을 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 오프라인상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기에 첫 만남이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아빠들이 편한 사이가 되니 아이들은 저절로 친구가 되고 형제, 자매와 같이 친한 사이가 되고, 장소에 상관없이 다양한 놀이를 즐기면서 관계 형성이 이루어진다. 그러자 외동아이라도 금방 많은 이웃사촌을 만들게 된다.
출산율이 비상이다. 합계출산율이 제로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또한 내년 출생아 수가 30만명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100조를 쏟아부었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다양한 정책을 실행했지만 출산율의 변곡점을 찾지 못했고, 오히려 뒷걸음을 치고 있다. 그런데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스웨덴에서는 성평등과 일·가정양립으로, 영국에서는 보편적 아동수당과 보육바우처로, 그리고 프랑스는 ‘모든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는 정책으로 저출산을 극복했다. 우리의 저출산 정책은 10여년 이상 외국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며 출산율을 제고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아마 세계에서 저출산을 극복한 모든 나라의 성공사례를 열심히 적용한 나라이다.
그러나 출산 정책은 계속 실패했다. 그러자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백화점식의 정책이 아니라 특단의 조치,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누구도 시원스런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마치, 고양이의 목에 방울 달기 게임을 하는 듯하다. 그 이유는 이 문제가 마케팅 적으로 고객의 니즈에 국한된 것 같지만 사실, 그 이상의 역사적이며 복합적이며 입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놀이와 역사의 이해가 필요하며 문화의 관점, 심지어 문명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근 정부 정책의 피드백을 보면 아빠의 참여와 인프라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늦게나마 재정지원만 하는 저출산 대책은 100% 실패라고 자인했다. 서울대 조영태 교수는 수천만원 수준의 파격적인 출산 수당 같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씁쓸하지만 일리만 있다.
결국, 저출산의 근본 원인을 보면 놀이의 부재가 저출산을 가속했으며, 인구절벽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역사적인 관점에서 놀이를 조명해보면 더욱 놀라운 사건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놀이 부재의 시대이며, 놀이문화 놀이 부재의 시대이며, 심지어 놀이 문명시대의 부재 시대가 시작되었다. 조선 500년 시대부터 1980년대까지 놀이의 전성시대였다. 아니, 역사 이래로 아빠가 아이와 전담으로 놀아주는 시대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놀이가 소멸되면서 놀이 부재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고, 2000년부터 저출산 문제가 수면위로 급격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골목길이 실종이 종료되면서 저출산 문제가 화두가 되었는데 이는 인과의 법칙이 명확하다. 저출산 문제는 사회문제의 차원이 아니라 문명의 변동으로 인하여 격변의 시대, 혼돈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려주는 리트머스종이가 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놀이를 너무 가볍고, 경박하고, 우습게 생각했고, 심지어 공부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 요즘 아이들은 점점 놀이가 없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하여 친구를 만들고, 세상을 배우고, 다양한 인성이 형성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에 역행하고, 저평가되고 있다.
저출산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포지셔닝은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환경과 인프라이다. 바로 놀이 환경에 대한 투자를 통하여 놀이를 복원시켜야 한다. 부모에게 양육에서 가장 힘든 일은 바로 아이와의 놀이다. 그러나 아이와 놀이를 할 줄 모르는 부모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역사에서 찾을 수가 있다. 한 세대 전에는 부모가 아이와 놀아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저 놀이의 해방구인 골목길에서 놀았다. 거기에는 형, 동생, 누나, 언니 등이 항상 있었으며, 그곳에서 수많은 놀이를 하며 누구나 마음껏 놀았다. 바로 아빠들이 아이와 놀아주지 않아도 누구나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었던 ‘아빠의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90년대부터 대단위 아파트가 세워지고, 핵가족이 일반화되면서 동시에 골목길이 멸종되었고, 이는 저출산 문제의 실마리로 돌변했다. 이제 아이들이 놀 곳이 모두 사라졌다. 그러자 경천 동지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 놀이의 짐이 전국의 모든 부모의 어깨 위에 커다란 돌덩어리로 짓누르는 형국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어린 시절에 아빠가 놀아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아이와 놀아주는 시대로 돌변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아이를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동안 놀이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이와 놀아주려고 하니 숨이 막힐 정도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바로 이 비명이 저출산을 부추기는 핵폭탄급 뇌관이 되어서 터졌다. 그러자 심지어 아이와 놀아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늦게 귀가를 하거나 혹은 회사에서 야근하는 척하는 아빠들도 등장했다. 놀란 정부는 부랴부랴 일 가정 양립정책이나 10만원의 수당을 주면서 그 마음을 달래려고 했지만 조족지혈이며 몰핀주사에 불과했다.
골목길의 실종으로 인한 후폭풍을 비유로 들자면, 이솝 우화에서 당나귀가 솜이 무겁다고 일부러 물에 빠진 후에 걸어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결국 부모들에게 놀아주어야 하는 부담감은 두려움으로 엄습하기 시작했고, 점점 출산에 대한 공포 바이러스로 퍼졌다. 또한 이를 생생하게 목도한 결혼 적령기의 선남선녀들은 결혼에 대한 두려움에 공감하고, 결혼을 미루면서, 합계출산율은 정부의 투자에 반비례하기 시작했다. 마치, 깨진 독에 물을 붓는 형국이 되었다. 더구나 미래의 전망은 더욱 어둡다. 이미 10대들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숙지하면서 결혼과 출산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으로 확 돌아섰다. 더구나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지금의 상황이란 저출산에 국한하지 않고 문화의 차원이며, 문명의 차원이기에 그 후폭풍이 50년, 100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나는 골목길의 부활이 저출산을 극복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놀이를 알려주는 활동이 아니라 놀이문화가 다시 복원될 때, 저출산의 변곡점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 핵심은 부모가 아이와 놀아주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 친구란 아빠가 아니라 동무들이다. 끼리끼리 놀 수 있는 그런 환경, 그런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역사적으로 골목길의 위대함을 경험했으며 순기능을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긍정적인 환경의 시그널이 있으니 바로 한국의 인구밀도에 있다. 골목길의 이미지는 곧 안정되고 자유로운 공간이며 공동체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를 부활시키기에 너무도 좋은 조건이다. 바로 인구밀도가 조밀하기 때문이다. 북유럽 나라들은 한국보다 땅 크기는 10배인데 인구밀도는 우리의 1/10에 불과한 나라가 많다. 이는 몰려서 사는 사람의 숫자가 매우 적으며, 많은 이웃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한국은 도시화가 많이 진행되었으며, 또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파트단지 문화가 발달했다. 이는 곧 놀이문화를 복원시키기에 안성맞춤이란 뜻이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골목길을 주제로 흉내를 내고 있지만 일회성이나 이벤트성의 흉내 내기에 그치고 있다. 놀이문화가 복원하려면 단순하다. 다시 골목길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선견지명과 혜안이 있어야 한다.
» 아빠와 함께 한 숲속체험. 사진 제공 권오진.
본교 개교 10주년이 되었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좋은 아빠가 되는 노하우를 후배 아빠들에게 전해주었다. 이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하여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면서 각 가정에서는 아이와의 놀이가 생활화가 되어가고 있으며, 이는 공동체로 발전해가고 있다. 골목길이 없는 이 시대에, 아빠가 아이와 놀아주기 어려운 시대에, 좋은 아빠가 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공동체란 구심점을 통하여 놀이문화를 만들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커다란 행복임을 체감하는 아빠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우리의 작은 활동이 저출산 시대에 작은 밀알이 되고자 한다. 어쨌든, 본교에서 활동하는 아빠들은 자녀의 출산이 곧 행복이라고 말하며 자랑스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