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들려주기 3] 아이들이 모르는 말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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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인 텍스트는 그대로 외우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야기 안에 아이들이 모르는 말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전래 동화에는 아이들이 모르는 옛말이나 농기구 등이 등장하는데 이런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다른 말로 바꾸던지 설명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항상 생각하는 부분은 여러분이 아이들이 알지 모를지에 대해 너무 고민한다는 점입니다. 태어난 아이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 모든 것이 새로울 뿐입니다. 몇 살 먹은 아이들도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모르는 것에 대해 전혀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한정된 지식과 추리력을 충분히 살려서 그것으로 부족한 부분은 상상력으로 보충해가면서 어떻게든 미지의 세계를 향해 가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이건 모르겠지 라는 전제를 깔고 걱정을 하고 쉬운 말로 바꾸거나 빼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말이라는 것은 고유명사나 특수한 관용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우 전후의 관계를 통해서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으며,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되는 것이 저희가 말을 배우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아닐까요.
게다가 만약 여러분들께서 알게 하는 것에 너무 치중해서 아이들이 아는 범위를 전혀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 방식을 취한다면, 아이들은 어디서 새로운 말을 접할 수 있을까요. 또 여러분이 언제나 항상 아이들이 아는 말로만 이야기하려 하시면 아이들은 긴장하지 않게
됩니다. 무언가 모르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귀를 쫑긋하고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 문제입니다만, 적당히 모르는 말이 나오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좋은 자극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래 동화에 나오는 오래된 생활 도구나 양식에 관한 말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는 민속학 공부와는 다르기 때문에 두루마기가 어떤 형태를 하고, 어떤 재질로 돼 있고, 어떻게 만들어져서 사용되었는가를 모르더라도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길가의 작은 불상이 눈을 맞고 있는 것이 추워 보여 걸쳐 주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뭔가 입는 것인가, 몸에 입는 것인가 보네 하는 것 정도만 알아차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따라오는 데 충분합니다. 또 만약 아이가 두루마기와 비슷하지 않은 걸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해도 그다지 큰 손해가 있다고는 생각이되지 않습니다.
어떤 어머니께서 폭소를 터트리시면서 말씀해주신 이야기인데, 막 3학년이 된 아이가 최근에 <모모타로>(일본 전래 동화) 얘기에서 ‘시바카리(섶나무를 베는 것)’를 줄곧 ‘시바카리(정원의 풀을 베는 것 - 한자가 다름)’ 라고 생각해 왔다는 것입니다. 꽤나 기묘한 광경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모타로 이야기를 즐겨 왔던 것입니다. 모모타로 이야기 전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할아버지의 섶나무 베기는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복숭아에서 아이가 나오는 신기함, 아이들이 동경하는 영웅으로서의 모모타로의 강함, 도깨비와의 전투에 대한 흥분감, 보물 상자를 얻는 만족감, 그러한 요소들이 이야기에 있어서는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몇 단어를 잘못 받아들이는 것이 이야기를 느끼고 즐기는데 그렇게 치명적인 방해인가 하는 것은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아이 때의 이러한 귀여운 오해는 여러분도 분명 한두 번 정도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험은 이야기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만, 전 어릴 적에 ‘다우트’ 라고 하는 트럼프 놀이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죠. 카드를 뒤집어 놓고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면서 순서대로 쌓아 올라가는 일종의 거짓말 놀이입니다만, 다우트(DOUBT)라는 말을 몰랐던 저는 그것이 ‘자부톤(일본식 방석)’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득의양양하게 이 게임을 소개하고, 방석에 앉아 서로 ‘자부톤! 자부톤!’ 하면서 거짓말을 주고받으며 몇 시간동안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서 영어 교과서의 ‘doubt’ 라는 단어를 보고 저는 비로소 ‘앗! 이것은.’ 하면서 처음으로 이 게임의 ‘본명’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다우트’가 ‘자부톤’이 되더라도 게임의 재미에는 변함이 없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셔도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지금 아이들은 세탁이라고 하면 전기 세탁기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강에 세탁을 하러’라고 말해도 모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만, 그럼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 가운데 직접 강에서 세탁을 한 경험을 가지신 분은 몇 분이나 계실까요. 베틀을 보신 분, 직접 베를 짜보신 적이 있으신 분은 계신지요. 아마 안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틀에 찔려 100년의 잠에 빠지는 <숲 속의 잠자는 공주> 이야기를 이해 못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래 동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코 한두 가지 어려운 옛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말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처음 들었을 때 반드시 그 말을 구석구석 알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말이라는 것이 의미 전달의 수단만은 아닙니다. 오래된 말이어서,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일종의 맛이 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재봉사는 재봉 도구를 갖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양복점 아저씨는 다리미를 들고 여행을 떠났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같은 내용이라도 받는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또 이 이야기가 꼬마 재봉사가 거인을 무찌르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건 아무래도 재봉사라고 해야겠지요. 미싱이나 다리미와 잘 어울리는 양복점 아저씨와 거인과의 매치는 기묘한 느낌이 들게 되니까요.
이야기의 언어를 생각할 때, 단지 그 이야기가 아이들의 일반적 언어 범위를 넘지 않는지를 고려하는 것뿐 아니라, 그 말이 전해주는 이야기의 내용과의 조화가 되는지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일본 기독교 보육 연맹에서 발행한 잡지 《기독교 보육》에 1974년 4월부터 1975년 3월까지 연재된 것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보 2006년 8월호, 9월호, 10월호에 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