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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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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 아이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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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책읽는곰 제공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몰리 뱅 글·그림, 박수현 옮김
책읽는곰 펴냄(2013)

아이들이 화가 날 일은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아직 약하기 때문이다. 힘도 부족하고, 솜씨도 부족하다. 갖고 싶은 것은 많지만 가진 것은 없다. 무언가를 하려면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세계의 중심에는 자기가 있다. 그 세계는 중심에 가까울수록 크기가 커지는 왜곡된 세상이다. 그래서 아이에겐 자기의 생각과 바람은 너무 크고 중요한 데 비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바람은 작게만 느껴진다. 어쩔 때는 보이지도 않는다. 아이는 갈등이 일어나도 그것이 동등한 두 사람 사이의 의견 차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훨씬 중요한 자기 생각과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부딪친다고 느낀다. 이 상황에서 왜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지 아이는 얼른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아이가 화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몰리 뱅의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은 화가 난 아이를 다룬 그림책이다. 소피는 자기가 한창 갖고 놀던 고릴라 인형을 언니에게 빼앗긴다. 언니가 갖고 놀 차례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 화가 난 소피는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른다. 마음 같아선 뭐든 부숴버리고 다 날려버리고 싶다. 화난 아이는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대단한 에너지를 낸다.

하지만 소피는 진짜로 부수거나 사람들에게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밖으로 뛰어나가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러다 지치자 훌쩍이며 혼자 운다. 폭발은 이제 끝났다. 대신 마음이 가라앉고 조금 허전하다. 소피는 커다란 밤나무 위로 올라가 바람을 맞고 멀리 바다를 바라본다. 잔잔한 세상이 소피의 마음을 채우며 달래준다. 화가 풀린 소피는 이제 집으로 돌아온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식구들은 모두 소피를 기다린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모두가 소피를 반겨주고 함께 퍼즐을 맞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왔다.

아이들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화를 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아이는 화를 내고, 화를 내봐야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화를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된다.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고, 그것이 서럽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것은 아이의 몫이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시간을 주면 대부분의 아이는 스스로 깨닫는다. 오히려 왜 화를 내냐고 야단을 칠 때 아이는 배우지 못한다. 억울하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다는 피해의식을 갖는다. 그렇다고 달래줄 필요도 없다. 달래주면 아이는 화를 풀기 위해 늘 누군가에게 의존하려 든다. 아이의 화가 풀리는 데는 그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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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아이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 아이가 행동으로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는다면 마음속에 아무리 무서운 생각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 무서운 생각을 스스로 달래고 멀리 보낼 수 있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 소피의 가족들은 소피가 화를 내고 집 밖으로 뛰어나갈 때 그냥 두었다. 소피는 이미 자기 혼자 화를 풀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피가 들어오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스스로 화를 푼 것은 대견한 일이고 축하할 일이기에. 부모라고 거기에 한마디 가르침을 굳이 얹을 필요는 없다. 허전한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 그 포근한 사랑이 마지막 화의 불씨를 없애는 가장 강력한 소화전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책읽는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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