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에 김장을 했다.
큰언니네 세식구와 우리집 다섯 식구, 친정 세식구 먹을 김장은
매년 우리집에 모여서 함께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집이 제일 넓기 때문이다.
덕분에 김장하는 날은 모처럼 친정 식구들이 모이게 된다.
명절처럼 신경써야 하는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니
김장은 흥성스러운 잔치처럼 왁자하게 지나간다.
몇년 전 까지만 해도 배추를 사서 직접 절였는데
3년전부터 절인 배추를 사서 김장을 담그고 있다.
나는 아직 김장 배추를 절일만한 내공이 없는데다가
칠순을 넘기신 친정엄마도 힘이 들어 씻고 절이는 일이
너무 고되기에 내가 나서서 절인 배추를 주문하곤 한다.
자매들 모두 바쁘고 아직 육아에 매달려 있는 딸들이
세명이나 되는 친정은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기도 하다.
절인배추로 한다고 해도 친정엄마를 하루 전날 차로 모셔와
밑준비를 하는 일이 바빴고, 나는 대 식구들 몰려올 것을
대비해 집안을 치우고 음식 준비를 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가 없는 큰 언니가 주로 엄마를 도와 김장을 하고
나는 뒷설거지와 음식 준비, 치우는 일을 맡았다.
5개월된 둘째를 돌보느라 쩔쩔매는 막내 여동생은 따뜻한
점심이나 먹고 가라고 불렀다. 작년에는 쌍둥이 자매 가족도 왔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빠진 것이 서운하긴 했다.
남편은 금요일 퇴근할때부터 기침이 심했다. 제대로 몸살이 온 모양이다.
딱하긴 한데 하필 김장하는 날 아프니 제대로 챙겨줄 수 가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있게 하는 것이었는데 그마저 친정 식구들이
우글거리니 맘 놓고 못 쉬었을 것이다.
대신 내가 남편 몫까지 다 했다.
김장엔 역시 수육이다.
갓 버무린 무채를 절인배추에 올려 수육과 같이 먹으니 꿀맛이다.
친정 부모님과 큰 언니, 막내네 가족 네 명, 우리 가족 다섯 명이 먹을 점심을 차리느라
힘들긴 했지만 모처럼 친정 식구가 모여 맛있는 밥 한끼 먹는 행복은 컸다.
둘째 돌보느라 힘겨운 동생의 푸념도 들어주고, 치매 초기인 시어머님을 지켜보는
맏며느리로서 큰 언니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모처럼 사촌 언니를 만난 이룸이가
종일 신이 나서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맛있게 버무려진 김장은 네 집으로 사이좋게 나뉘어져 통에 담겼다.
아이들은 먹고 있는 묵은지도 있고, 얼마전에 담근 배추김치고 있는데
벌써부터 김장김치 먹자고 성화다.
기특한 것은 이룸이도 김장 김치가 맛있다고 잘 먹는 것이다.
친정 엄마가 더 연세들고 건강이 안 좋아지면 이렇게 엄마가 지휘하는 김장 풍경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솜씨 야무진 딸들이 있으니 그때는 자매들끼리
맛난 김장을 같이 하며 또 행복한 연말을 보낼 것이다.
힘들고 번거로와도 김장을 하며 한 해를 정리하고 서로를 챙기고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된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김장은 여전히 소중하고 중요한 행사다.
해가 갈 수 록,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수록 건강문제도 생겨나고 이런 저런
사정들이 닥쳐오지만 그럴수록 가족이 한 번 더 모여서 서로 보듬고
살펴가며 같이 사는 것이다.
김장은 오래 떨어져 있던 가족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한다.
사연과 애정으로 버무려진 김치를 들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
1년 내내 서로의 정이 담뿍 담긴 김치를 먹으며 다시 잘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우리에겐 역시 '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