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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하나, 숙제를 덜 끝낸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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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요즘 임신과 출산 시즌이다.

출생률이 낮아 오랫동안 고민에 빠진 일본 정부가, 왜 저리 고민을 하나 싶을 정도로

내 주변 엄마들은 둘째나 셋째 가지기를 별로 망설이지 않는다.

아이가 요즘 유치원을 다녀와서 자주 하는 말은,

"엄마, 오늘 00네 집에 아기가 태어났대."

"00네 집은 크리스마스 쯤에 태어날거래."

"엄마 배에는 아기 없어? 왜 없어? 언제 들어와??"  ...   뭐 이런 식.


그러고 보니, 첫째가 지금 둘째만 했을 때도 주변 친구들 집에 아이가 태어나는 일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유난히 아기를 좋아했던 딸은 유치원에 마중오는 엄마들이

모두 유모차를 끌거나, 아기를 업고 안고 오는 걸 보며 몹시 부러워했다.


"엄마는 왜 아기 안 데리고 혼자 와?"

"우리집에도 아기가 왔으면 좋겠어."

"나 하나님한테 아기 부탁하러 목요일에 갈거야." (왜 목요일로 정했는지는 아직도 불명-;;)


저러다 말겠지..하던 우리 부부의 예상과는 달리, 사람을 좋아하는 딸의 아기타령은 

그 후로도 몹시 집요하고 때론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딸과 친한 친구들은 유난히 형제들이 많고 셋은 기본에 넷 있는 집도 몇몇 있었는데,

일본은 외동아이들도 많지만, 별 제한없이 아이를 많이 낳는 집도 여전히 많다. 

특히 우리가 사는 지역은 부모 세대와 집이 가까운 젊은 세대가 많아,

부모님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으니 안심하고 많이 낳는 분위기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나도 혼자 크는 아이를 보다가, 둘이나 셋 이상되는 집에 놀러가 보면

아웅다웅하면서도 함께 크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보였다.

하나만 키우는 나보다 훨씬 경험도 풍부하고 여유있어보이는 그 집 엄마도 부러웠고

첫째와는 다른 둘째, 둘째와는 또 다른 셋째 아이의 생김새나 그 아이만의 성격, 매력을

지켜보는 게 무척 신기하고 이뻤다.

똑같이 하는 육아임에도 하나와 둘 이상은 이렇게 큰 차이가 있고,

그 다양함을 부모로서 경험하며 인생의 전성기인 30대를 보내고 싶은 욕심도 나고,

인생의 전체 시기를 두고 볼 때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쉽게 실천에 옮기기에는 여전히 망설임이 앞섰고

형제가 있는 친구네 집의 이층침대를 너무 부러워하는 딸에게는

그냥 혼자서 아래 위층 번갈아 자며 놀게 사주고 말까? 하는 식의

철없는 생각만 하는 우리 부부였다.


imageT01.gif

한국어 제목으로는 <순이와 어린 동생>이란
이 그림책을 좋아하던 딸아이는
"나도 동생한테 신발 신겨주고 싶어."
"아기 기저귀 내가 갈아줄래." ...
하며 조르기를 하루에도 열두번, 그래도 별 반응이 없는 엄마아빠에게 툭 하면
짜증을 내거나 남편과 내가 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기만 해도 엄청 질투를 하거나
심할 땐 서럽게 울기까지 했다.
집에서 함께 놀던 친구네가, 엄마는 잠든 어린 동생을 안고
그 친구는 동생의 작고작은 신발을 들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딸아이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장면을 보듯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모른척'으로 일관하기에는 아이의 '혼자 크는 외로움'의 골이 너무 깊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겨우 힘든 육아에서 조금 놓여나 여유를 찾은 듯 한데, 다시 시작하려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당장 생긴다 해도 태어날 때까지 1년 가까이
걸리는데, 그 사이에 첫째와 나이 차가 너무 생기게 되면,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우리는 또 우리대로 힘들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렇다. 시간여유가 없다.
만에 하나라도 낳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그렇게 둘째낳기를 계획한 첫달, 그 달에 덜컥! 임신이 되었다.
이것도 복이라면 복이고, 주변에 불임으로 고생하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데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임신5주째부터 시작된 입덧 때문에 나는 다시 힘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산부인과에서 임신 확인을 하고 돌아온 날, 딸아이는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엄마 배를 만지며  "아기 들어왔대??"  하며 희망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내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는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뭔가 늘 숙제를 덜 끝낸 기분이 들던 우리 세 식구는
그렇게 네 식구가 되었다.


IMG_3540.JPG

여자 동생이길 바랬던 딸의 바램과는 달리, 남자 아이가 태어났지만
그래도 둘은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하게, 무엇보다 외롭지 않게, 함께 자라고 있다.
딸보다 몇 배는 더 키우기 힘든 아들이었지만 키우면서 또 다른 재미와 보람이 있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도 평생 해보지 않은 많은 것들을 경험했지만
둘을 키우면서는 그것의 몇 배는 더 많은 것들을 겪고 배우는 중이다.

유명한 일본 그림책 작가가  "이야기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다."
는 말을 했는데,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내 삶의 이야기들이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억지로 노력하거나 삶을 꾸미지 않아도 저절로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DSCN2403.JPG


이 녀석을 못 만났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누나의 집요한 물음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 부부는 하나만 키우며 지금까지 왔을 것 같다.

그랬다면, 지난 5년 간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 가정 안에서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아파트를 벗어나 주택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큰 일도 이뤄내지 못했을 거다.


새해에 둘째의 탄생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면

첫 아이와 가지는 셋만의 마지막 시간들을 최대한 즐겼으면 한다.

그리고 둘째가 막 태어났거나 아직 어려 험난한 육아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분들께는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좀 더 용기를 내, 좀 더 실험적인 삶을 살아보길 권한다.

그런 시간과 경험들이 삶의 지혜와 내공으로 남게 될 테니까.


둘째에 대한 고민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갖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힘든 가정도 많으니

솔직히 쉽게 얘기 꺼내기가 힘들다.

나 역시, 낯선 외국에서 큰아이를 6년까지 키우면서

외동 아이들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나 편견을 부모로서 견디는 게 힘들 때도 많았고,

틈만 나면 주위로부터 둘째 안 낳느냐는 말에 참 많이도 시달렸다.


혹시 아이 하나를 키우며, 하나라서 더 잘 키워야한다는 게 부담스럽거나

아이와 엄마 둘 다 서로에게만 너무 집중해서 힘들다면,

조심스럽게 둘째낳기를 권해보고 싶다.

하나에게만 집중되는 관심과 걱정이 둘로 분산되면서, 그동안 껴안고 있던 많은 고민들이

순식간에 해결된다. 물론, 하나일 때는 몰랐던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둘 일때가 부모로서는 훨씬 부담이 적어지는 것 같다.

또, 둘째 육아를 통해 알게 된 사람과 세상의 범위도 훨씬 넓어졌으니 얻은 것도 많고.


하나와 둘 사이에서 Go할까, Stop할까.

인생 뭐 별 거 있나?!

어느 정도 가질 마음이 있다면, 일단 아기들을 만나러 다녀라.

이쁜 아가들, 젖냄새 물씬 풍기는 오동통한 아가들, 보는 것만으로도 모성애 수치가

급상승하는 그런 아가들을 만나고 안아보라. 그것이 둘째가 생기는 지름길이다.

실제로 내가 둘째를 낳고 삼칠일이 지났을 때, 우리집에 아기를 보러온 친구 중에

둘이나 임신을 했다. 그것도 2,3개월 채 지나지도 않아서!

그만큼 갓난아기가 어른들에게 주는 에너지는 강한 것 같다.


첫아이도 이렇게 이쁜데 둘째는 또 얼마나 이쁠까, 날마다 상상하라.

배불러 낳기 전까지도 돈문제, 집문제, 교육문제 등등 오만 걱정 다 하게 되지만, 

낳아보면 안다. 첫째 때보다 몇 배로 더 물고 빨고 핥고 ..^^ 하게 된다는 것을.

첫째와 터울이 질수록 둘째의 존재는 더 특별하게 와 닿는다.


아이 둘이 머리 맞대고 앉아 맛나는 걸 먹을 때, 뭔가를 만들며 함께 노는 모습을 볼 때

남편과 나는 두 아이 서로에게 정말 다행이라며, 그동안 고생했다며 서로를 다독인다.

둘째낳기를 고민할 때, 육아와 가사분담 문제로 남편과 더 싸우게 되지 않을까,

그 지겨운 일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것도 크게 두려웠다.

예상대로 첫째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엄청 싸우며

시도때도 없이 우리는 결혼생활의 위기와 절망 앞에 내동댕이쳐지곤 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싶지 않을만큼 힘든 시간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끝난 것 같다.

둘째가 그만큼 자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네 식구 모두가 힘든 터널을 지나면서

서로를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추억과 경험의

보따리가 그만큼 많이 쌓였고 그것들이 사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낳을 거 1,2년이라도 젊을 때 낳아키웠으면, 우리도 좀 덜 힘들고 첫째에게도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든다.


둘째를 지난 5년 가까이 키우는 시간은 내 젊음과 건강도 조금은 잃게 했다.

그런데 싫지가 않다.

보고있으면 신기하고 이쁘다.

이건 여전히 풀 수 없는 육아의 미스테리다.

그렇게 망설였던 게 거짓말처럼, 요즘 부쩍 두 아이의 아기 때 사진을 꺼내보며

셋째를 낳으면 어떤 얼굴일까? 하며 궁금해지는데

이걸 어쩐다 ..


아! 5년만 젊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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