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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 세상을 누가 만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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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선착장에서 롱보트 (long boat)를 탔다. 오늘은 바람 동굴(wind cave), 맑은물 동굴(clear water cave) 탐험을 해보자!

바람동굴을 향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가늘고 긴 나무배를 타고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것이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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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동굴에서는 다양한 종유석, 석순과 함께 달 우유(moon milk)라는 것을 보았다. 동굴 벽에 하얗게 침전된 것인데 단단한 돌이 아니라서 더더욱 만지면 안 된다고 했다.
달의 계곡, 달 우유...
사람들은 인간의 지력으로 밝혀낼 수 없는 지형을 발견하면 '달'의 이름을 빌리곤 한다. 우유가 응고된 것처럼 보이는 달 우유(moon milk)가 만들어지는 정확한 기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박테리아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종유석 1센티미터가 자라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
동굴 입구에서 가이드가 모두에게 퀴즈를 냈다.
정답은 100년이란다!
종유석 1센티미터를 파괴한다면 100년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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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동굴을 나와서 다시 배를 타고 맑은물 동굴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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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입구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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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가 괴물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동굴 입구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들이 날카로운 이빨처럼 생겨서 거대한 괴물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 저기 저 괴물 이빨에 나뭇잎을 하나씩 붙여놨어.
자세히 보니 그 ‘이빨’에 이파리 하나로만 된 식물이 있었다. single leaf plant, 보르네오 섬에서만 볼 수 있단다. 해람이의 관찰력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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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물 동굴에는 이름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줄기가 꽤 크고 흐름이 빠른 곳도 있었다.

맑은물 동굴, 바람 동굴을 포함하는 맑은물 동굴계( clear water cave system)는 여러 개의 동굴이 연결되어 총 길이가 189km나 된단다. 아직 다 개발이 되지 않았고 가이드도 끝까지 못 가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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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루에서 지내는 내내, 날마다 비가 왔다. 열대우림의 '우'가 바로 비 우 雨 아닌가! 몬순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항상 덥고 습한 곳, 연중 강우량이 4~7m 된단다. (물루 국립공원 사이트를 보니 그래도 7~9월엔 비가 적게 온단다. 일주일에 3일.)
다행히 오전에는 비가 오락가락해서 동굴 탐험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는데 오후만 되면 시원하게, 때로는 무섭게 쏟아져서 가이드 따라 밤 산책하는 ‘night walk'은 끝내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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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질 때는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빗소리 들으며 책을 읽고 사진 편집, 아이들은 분장 놀이, 춤추기, 어지르고 어지르기...
누가 더 웃기게 분장하나, 각자 분장하고 짠~하고 나타났을 때 먼저 웃는 사람이 지는 놀이. 깔깔깔, 웃음소리가 방안 가득했다. 재밌는 소품을 찾는다고 짐을 다 뒤져 엉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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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가 잦아 들면 숙소 근처를 천천히 걸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기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빨리 나아갈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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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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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술? 씨? 열대의 꽃은 풍만하고 원색적이고 노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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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나뭇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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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먹은 구멍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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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표면을 찍다가 개미떼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비가 많이 와서 개미집이 부서졌나 보다. 개미들이 알을 들고 이사하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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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웅덩이에 바글바글 모여 있던 갈색 열매(씨앗)들.
처음 봤을 때는 반질반질한 표면 때문에 딱정벌레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씨앗이었다.
씨앗은 도처에 퍼져 있었다. 빗물에 퉁퉁 불어 있던 씨앗에서 촉수처럼 뿌리가 삐져나왔고 더듬더듬 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리는 순간 새싹이 터져 나올 것이다.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살펴보니 새싹들이, 이제 막 터져 나온 조그맣고 보드라운 새 생명들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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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여기도 있어. 여기, 여기도!!!
별나무인가? 새싹이 별모양으로 나오잖아.
아이들도 내 주변으로 모여들어 갓 터져 나온 새생명들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았다.
아직 씨앗으로 있는 것부터 뿌리가 삐져나온 것, 날개를 펴기 직전의 나비처럼 새순이 접혀 들어가 있는 것, 그리고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이파리를 펼치기 시작한 것... 마치 씨앗에서 싹이 나오는 과정을 연속 촬영해서 보여주는 식물도감 같았다.

 

생명이 움트는 모습
이보다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또 있을까.
이보다 더 두근거리는 감동이 있을까.
안녕!
태양을 향해 제 몸을 곧추 세우기 시작한 별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반가워!
우리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별들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했다.

 

열대 우림의 생명력이란!
흙을 덮어주는 수고 따위는 필요치 않아 보였다.
햇빛, 물, 그리고 비옥한 토양...
생존에 필요한 것들은 풍족했고 본능적으로 제게 필요한 것을 찾아, 제가 있어야 할 곳을 찾아 거침없이 뻗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망설임, 주저함,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감정이 끼어들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노골적이고 거침없는 이들의 생명력이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엄마, 누가 이 세상을 만들었어? 해람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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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잎맥을 따라 씨 같은 것이 줄지어 붙어 있는 이파리를 보고 있었다. 자로 잰 듯 규칙적인 배열이, 그 정연함이 감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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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붉은색 선명한 코일, 마디마다 달려있는 발, 그리고 움츠리고 펴며 앞으로 나아가는 유연한 몸동작. 이 조그맣고 하찮은 벌레의 모양과 움직임에서도 정연하고 섬세한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신기하고 오묘한 것을 누가 만들었을까, 경이로운 열대우림의 생태계가 해람이의 마음에 이런 질문이 떠오르게 한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나도 이런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고민의 늪에 빠져들었던 사춘기 시절, 어리숙하지만 자못 진지하게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이 세상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내는 데 당장 쓸모가 없는 질문은 조금씩 밀려나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해봤나 싶을 정도 오랜 시간 잊고 살았다.

아이들에게 나도 잘 모르는 빅뱅이론, 진화론이니, 창조론이니 하는 지식을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생명력 넘치는 아이들이야말로 더 나은 대답을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글쎄, 누가 이 세상을 만들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어.”
“누가 만든 게 아니라 저절로 생긴 것 같은데.” 아루가 끼어들었다.
“저절로? 어떻게?”
“처음엔 씨앗이 있었겠지. 씨에서 싹이 나고 무럭무럭 자라 풀이나 나무가 되고 꽃이 펴서 또 씨가 만들어지고 그랬겠지!”
“그럼 처음의 씨앗은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세상에 이렇게 많은 식물이 있는데 씨앗도 엄청 많았겠네?”
“엄마, 진짜 요정이 있는 거 아냐? 요정이 마법 가루 뿌리는 것처럼 알록달록 예쁜 씨앗들을 세상에 뿌린 건 아닐까?”
아루가 제가 아는 상식으로 설명해보려다가 안 되겠는지 요정의 힘을 빌렸다.
“요정들은 어디서 왔을까?”
“원래 있었지. 아, 모르겠어. 뭔가는 원래 있어야 하잖아. 이건 꼭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물어보는 것 같아.”
이야기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대한 난상토론으로 이어졌다.
아루는 달걀이 먼저 생겼을 거라고 했다.
하늘의 구름이 뭉쳐져서 하얀 달걀이 만들어졌을 거라고.

 

아무리 머리를 감싸고 생각을 쥐어짜 본들 세상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무엇이 정설이고 무엇이 진실이냐를 따지기는 건 그리 중요치 않으리라.
해람이 마음속에서 이런 의문이 새싹처럼 자라나는 것, 그 자체로 참 신통하고 감동적이었다.
아루가 생명이 씨앗에서 나와 땅에서 자라고 번성하여 또다시 씨앗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고 설명해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림책 삽화처럼 요정이 알록달록 예쁜 씨앗을 뿌리는 상상도 즐거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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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이것은 큰 발견과 깨달음이었다. ‘개발’이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지던 70년대에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내게 자연은 늘 먼 이웃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 추억의 물건은 ‘표주박’이 아니라 알록달록 플라스틱 바가지였다. 서른 살 넘어서 여행을 하며 자연의 위대함을 알았고 아이들을 만나고 함께 지내며 돌아볼 수 있었다. 아이들을 자연과 가까이하게 해주고 싶어서 공원을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시멘트 범벅에 보기 좋게 꾸며진 정원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다르다는 것도 한참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물루에서 지낸 3박 4일,

우리가 영위하는 삶을 뛰어넘어 자연의 이치를 발견하고 초자연의 힘을 상상해보는 참 귀한 시간이었다.
대자연을 아우르는 커다란 미지의 손을 느끼는 순간,
생각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시야는 넓어지며
인간이 유수한 시공간 속의 티끌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스스로 제 몸을 낮출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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