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 데이월트 글 올리버 제퍼스 그림
박선하 옮김 주니어김영사·1만원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어느 날 갑자기 크레용이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면 긴장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단지 크레용을 꺼내려고 사물함을 열었을 뿐인 대니는 색색깔 크레용들이 써놓은 편지 꾸러미를 발견했다.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빨강, 노랑, 초록, 검정 크레용의 색깔이 선명한 손편지가 이어진다.
“나야, 빨강 크레용. 우리 이야기 좀 하자. 다른 크레용들보다 나는 일이 정말 많아. 올해 내내 나는 소방차, 사과, 딸기 등 빨간 것을 모두 칠하느라 너무 힘들었어. 심지어 나는 쉬는 날에도 일했어.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 할아버지를, 밸런타인데이에는 그 많은 하트를 칠했지! 난 정말 쉬고 싶어!”
노동 착취 당하는 빨강 크레용이라니! 회색 크레용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 “너는 코끼리를 정말 많이 좋아하더라. 문제는 코끼리가 회색이라는 거야. 나 혼자 다 칠하기에는 코끼리가 너무 커. 정말이지, 이젠 나도 좀 쉬고 싶어.” 하양 크레용의 불만은 정반대다. “너는 왜 색칠할 때 나를 안 쓰는 거니?”
그렇다면 검정 크레용은? “난 내가 늘 물건들의 테두리만 되는 게 싫어. 정작 물건들은 다른 예쁜 색깔로 칠하고, 그 색깔들은 나보다 다 화려해!” 검정 공을 그려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으로 끝맺는 편지를 어찌해야 할까?
우리가 별생각 없이 대하던 대상이 우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면? 검정 크레용을 가장 좋아한다는 미국 작가가 내민 이야기는 재밌으면서도 우리를 진지한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임지선 기자, 그림 주니어김영사 제공
(한겨레 신문 2014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