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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난쟁이로 만들고 싶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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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6_03.jpg 마법의 설탕 두 조각

한미화와 함께 읽는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미하일 엔데 글, 진드라 차페크 그림
유혜자 옮김/한길사·9000원

우연히 읽고 지금껏 간직하고 있는 어린이책이 있다. 1970년대 말 독일 유학중이던 차경아씨의 번역으로 청람출판사에서 펴낸 미하엘 엔데의 <모모>다. 당시 미하엘 엔데는 국내에 성인물 작가로 소개되었고, <모모>도 어른을 위한 우화 정도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30여년 후인 2005년에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후광을 입고 <모모>는 다시 한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하엘 엔데는 1960년 출간된 <짐 크노프>로 일찌감치 어린이·청소년 작가로 주목받았다. 그의 대표작은 <끝없는 이야기>나 <모모> 같은 장편 판타지 소설이지만, <마법의 설탕 두 조각>도 빼놓을 수 없다. 대가가 써내려간 소품 정도에 해당할 단편이지만 노련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렝켄은 착한 아이지만 엄마 아빠는 좀처럼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는다. 이렇게 참고 지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고 요정을 찾아간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요정이 내놓은 해법은 마법의 설탕 두 조각. 몰래 찻잔 속에 설탕을 넣고 그걸 엄마 아빠가 먹으면 렝켄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마다 부모의 키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결국 엄마 아빠는 고양이에게 잡아먹힐까 걱정할 정도로 키가 작아져 버렸다. 렝켄의 세상이다. 저녁을 과자로 때우고, 씻지도 않고 자고, 하루 종일 만화영화만 봐도 된다. 하지만 낙원은 잠시, 렝켄은 아직 어리고 보호가 필요하다.

작가는 과연 이 모든 걸 어떻게 되돌려 놓을까. 냉정하리만치 엄정한 인과율에 따라 입장 바꾸기를 제시한다. 엄마 아빠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다면 이번엔 렝켄이 마법의 설탕을 먹어야 한다. 렝켄은 마법의 설탕을 먹을까. 마법의 설탕을 먹고 나서 엄마 아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키가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말이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은 분량은 짧지만 시공간을 초월하는 마법의 공간이 이음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설정돼 있다. 마법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한 또 하나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미하엘 엔데가 했던 “문학적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 스스로 창조해 낸 진실”이라는 말이 이런 뜻은 아닐까 싶다. 렝켄과 부모의 심리는 무척이나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난쟁이가 된 순간에도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는 부모의 허세, 친구에게 이 황당한 사건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 렝켄의 우쭐함 등 인간의 본성도 잘 드러나 있다.

무엇보다 부모의 통제에 갑갑함을 느끼는 어린이들에게 심리적 통쾌함을 안겨주는 신나는 작품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없어서 실망하거나 혹은 엄마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한 경험은 누구나 있다. 그만큼 아이는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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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하지만 때로 하고 싶은 걸 못하게 금지하는 부모가 영원히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길 때도 있다. 대부분의 아이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바로 다음 순간 죄의식을 느낀다. 그래서 부모가 잠시 사라지는 경험, 이를테면 엄마의 외출은 아이들에게 그토록 신나는 일일 수밖에 없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은 이런 이중적 심리를 지닌 아이들에게 죄책감 없이 부모를 난쟁이로 만들어보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아직 장편을 읽기 어려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미하엘 엔데의 작품 세계를 맛보게 할 만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혹 ‘우리 아이는 책읽기를 싫어하는데’라고 걱정하는 부모라면 꼭 함께 읽어보시길.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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