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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망토 입은 ‘죽음’이 들려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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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오래 슬퍼하지 마
글렌 링트베드 글, 샬로테 파르디 그림, 안미란 옮김
느림보 펴냄(2007)

아이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아니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살아온 시간이 얼마 안 돼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는데 죽음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아이는 죽음보다 삶을, 끝보다는 시작을 배우고 느껴야 할 나이다. 하지만 아이에게도 죽음이란 경험은 피해갈 수 없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80%가 넘는 아이들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다는 보고가 있다. 봄날의 꽃처럼 이제 막 피어나는 아이에게 죽음을 말해주고 싶지 않지만 죽음에 대한 대화를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죽음을 다룬 그림책은 많이 있다.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브라이언 멜로니의 <살아있는 모든 것은>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로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처음 읽을 때는 너무나 담담하게 죽음을 묘사한 문장에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읽었던 문장이 입에 다시 맴돌며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슬픔일수록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 그것이 슬픔에 대응하는 고귀한 자세이고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에 대한 존중이다.

글렌 링트베드가 글을 쓰고 샬로테 파르디가 그림을 그린 <오래 슬퍼하지 마>는 이보다는 조금 더 아이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죽음이란 추상적 개념이기에 아이들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링트베드가 사용한 방법은 죽음의 의인화다. 검은 망토를 입고 날카로운 코만 삐죽 나온 키 큰 사람이 할머니와 아이들이 사는 집을 찾아온다. 그 사람의 이름은 죽음이다. 커다란 낫을 들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무섭게 숨을 쉬지만 아이들은 겁을 먹진 않는다. 그가 할머니를 데리러 온 것을 알기에 슬픔이 두려움에 앞서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죽음이 할머니를 데려가지 못하게 방해하고 애원한다. 죽음은 아이들의 말을 다 들어주고 서두르지 않는다. 죽음은 차갑고 냉정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죽음은 아이들과 함께 슬퍼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삶에 대한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이 서로 헤어질 수 없는 부부로 살아간 이야기다. 그러고는 그것이 삶이고,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도 서로 헤어질 수 없고, 서로가 있기에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아이들은 죽음이 하는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죽음이 거칠고 두렵고 무서운 존재가 아님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죽음 역시 ‘생명이 가는 길’이다. 이제 아이들은 병든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죽음은 할머니의 곁에 선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마음아 울어라, 하지만 오래 슬퍼하지는 말거라.”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슬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처음에는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죽음에게 화를 내고 싶고, 나중에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눈물이 난다. 그 시간은 우리가 감정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죽음도 생명이 가는 길이다. 죽음은 영원한 사라짐이 아니다. 바람처럼 영혼이 떠나듯 죽음 이후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바람으로 다시 와 내 곁에 머문다. 숨을 쉬면 내 안에 들어와 언제든 내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러곤 내게 이야기할지 모른다. 나를 사랑했다면 지금 내가 자리 잡은 네 마음을 더 사랑해달라고.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그림 느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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