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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지름신, 유죄?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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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탕.jpg

 

남편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 대신 담배는 오래 피웠었다.

한 2년 전 베이비트리를 시작할때 남편은 야심차게 금연을 선언했고

나는 남편을 응원하느라 베이비트리 지면에 대대적인 응원의 글을 올렸더랬다.

남편은 좀비같이 무기력한 과도기를 거치며 금단현상을 이겨내는가 싶었는데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담배를 피우고 말았다.

이 남자, 담배는 정말 못 끊나보다.... 체념을 했는데...

 

남편은 지금 석달째 금연중이다.

비흡연 인구의 권리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남편 회사 건물도

흡연건물로 지정되자 아마도 담배 피우기가 옹색해 진 모양이었다.

마침 회사에서도 적지 않은 상금을 걸고 금연을 권장하고 나섰다.

마누라의 눈흘김도 나날이 강도를 더 해가고, 말 잘하는 네 살 막내까지

'아빠, 담배 피우지 마요'하고 잔소리를 해대니 버티기 어려웠으리라.

그래도 전적이 있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었는데

환경이 달라져서인지 남편은 더 많이 움직이면서 잘 견디고 있다.

대신 사탕을 달고 살게 되었고, 주말만 되면 생라면을 서너개씩 잡수시며

밥상을 물리고 나면 바로 '달달한 거 없을까?'를 외치게 되었다.

 

간식이 늘고 단것에 탐닉하게 되는거야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현상인데 금연을 선언한 후 지름신도 함께 오셨다는게 문제다.

 

우리 살림의 큰 물건들을 죄다 남편이 구입한다. 자잘한 것도 남편이

구입하는 것이 훨씬 많다. 남편은 인터넷 쇼핑을 아주 좋아하고 수많은

쇼핑몰에 매일 출석하며 쿠폰까지 챙기는 알뜰파다.

그러던 남편은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오며서 목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건전한 관심이었으므로 나도 기꺼이 응원했다.

아빠가 만든 옷장과 책장이 생기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기쁜 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목공 관련해서 질러대는 것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콤푸레셔가 들어오더니 원형절단기가 들어오고, 이름을 알수없는 온갖 공구들이

속속 택배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금연을 하면서부터는 부쩍 더 목공에 욕심을 내는 눈치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심을 건전한 육체적 노동으로 승화시키는 일이야 환영하지만

집안 여기 저기 쌓여가는 온갖 자재들과 나날이 늘어가는 공구들을 지켜 보는

내게는 저게 다 얼마일까... 몹씨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게다가 사두고는 바빠서 만들 시간이 없다보니 집안은 곧 창고처럼 온갖 대형

자재들이 쌓여가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또 택배가 날아온다.

 

놀러갔던 친구집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디언 텐트가 있길래 좋더라고 했더니

당장 원형 나무들을 주문해서 인디언 텐트 만들어 주겠다고 했던 것도

몇 달째 그대로 쌓여 있다.

바닥이 미끄러운 안방 목욕탕이 불편하다고 지나가는 말로 했더니

얼마전엔 덜컥 값비싼 목재들이 줄줄이 택배로 도착했다.

싸우나에 들어가는 고급 목재들로 욕실 바닥을 깔아주겠다는 것이다.

그냥 마트에서 커다란 나무 발판 서너개 사서 놓으면 될것을

욕실 바닥 까는 나무 구입에만 이십여만원을 썼다는 예기를 듣고나니 어이가 없었다.

우리집도 아니고 전세로 사는 집인데 아무때고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데

이건 무슨 어이없는 지름신인가 말이다.

 

그래도 폭풍 잔소리는 참았다.

술 마시는 남편을 둔 이웃들에게 하룻밤 술값으로 몇 십만원씩 쓰고 와서

속상하다는 푸념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돈으로 나무나 공구를 산다면

양손 들어 환영하겠다며 그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나무가 들어오고 몇 주가 지다도록 손을 대지 않던 남편은 지난 주말에 하루 종일

나무를 재단하고 자르고 못질을 해가며 욕실 바닥을 완성해 주었다.

다 해놓고 보니 무슨 고급 싸우나에 들어온 것 처럼 근사하다.

게다가 더 좋은 것은 피톤치드의 진한 향이 온 집안에 퍼진다는 것이다.

이 나무는 물에 닿으면 냄새가 더 진해진단다.

아이들 씻기기에도 편하고 맨발로 욕실안을 산들산들 걸어다닐 수 있으니 더 좋다.

집 빼라고 하면 나무도 다 못을 빼서 챙겨 갈꺼라고 걱정하지 말란다.

아무것도 아닌것에 큰 돈 썼다고 궁시렁거렸는데 요즘 나는 안방 욕실에

들어설때마다 핀란드의 사우나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래, 그래..

이런것도 못하면 담배가 다시 땡길지도 몰라. 몸속에 니코틴으로 수십만원

쌓아놓는 것 보다 차라리 집안에 근사한 사우나식 발판이 생기는게 더 좋지.

남들은 술값으로도 엄청나게 쓴다잖아.

 

잔소리하지 말아야지.

혹시 알아?

이담에 회사 그만두게 되면 혹시 집수리나 목공으로 제 2의 인생을 설계할지...ㅋㅋ

 

그리하여 나는 남편의 지름신과 사이좋게 지내기로 했다.

나무야 쌓아둔다고 금방 썩는것도 아니고, 술 취해 들어오는 아빠대신

주말마다 땀흘려 나무 자르고 못질하고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아빠의 모습이 애들에게도 더 좋겠지.

열심히 힘쓰다 보면 몸도 더 좋아질테고... 그러다보면 부부사이도 더 ????? ㅋㅋ

 

그래도 여보야..

이제 나무도 많이 쌓여 있으니 더 사기 보다 더 만들어봐..

내가 이웃들에게 주문이라도 받아놓을까?

지름신도 좋은데 조금만 살살... 여보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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