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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경험이 신경회로를 결정한다
선천적으로 백내장이 있는 아기들은 생후 9개월까지는 시력을 그대로 보유하기 때문에 백내장 수술을 해주면 볼 수 있고 그 이후의 시각적 경험을 통하여 시력이 향상된다. 그러나 완전하게 따라잡은 것이 아니다. 만 3세에 시력을 측정해보면 정상아의 1/3수준이다. 그러나 시기를 놓쳐서 24개월 후에는 수술을 해주면 아이들은 영구적으로 시력을 잃어버린다. 시각의 신경망이 발달할 때 시각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근시도 마찬가지다. 근시는 수정체의 조절이 떨어져 멀리 있는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다. 근시는 유전적인 요인이 있지만 환경적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1960년대 솔로몬 군도에서는 2-5%가 근시였고, 현재 싱가포르에서는 중국인 학생들의 90-95%가 근시이다.
근시 발생률은 지난 수십년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1990년에는 20%가 근시였는데, 2002년에는 28%로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반에는 25%가 근시였는데 2000년대 초반에는 42%가 근시였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빨리 일어나고 있어서 아이들의 시각경험에 대해 점검해야 한다. 특히 야외활동이 근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미국의 연구에 의하면 하루 2시간의 야외 활동을 하면, 하루 1시간 미만의 야외 활동을 할 때보다 4배 정도 근시 위험을 감소시킨다. 아이들이 야외에 있을 때 무엇을 하는지와 상관 없이, 야외 활동은 특히 부모가 모두 근시인 아이들에게 더 강한 억제효과가 있다. 이는 근시 관련 유전자가 아이들의 시각경험에 의하여 민감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현대의 아이들이 실내활동이 많아진 것은 근시와 관련이 많은 것이다.
시각경험이 신경망이 형성되는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은 발달신경과학에서는 획기적인 발견이다. 데이비드 허블(David Herbel)과 토스튼 위즐(Torsten Wiesel)이 1960년대 초에 이것을 발견하여 노벨상을 받았다. 이들은 출생 직후 고양이나 원숭이 새끼의 위아래 눈꺼풀을 실로 묶어서 시야를 가렸다. 이렇게 하면 시각 영역의 구조와 기능이 크게 변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쪽 눈을 가린 동물의 뇌가 양쪽 눈을 모두 가린 동물에 비해 더 심하게 변한다는 사실이다. 허블과 위즐의 연구에 의하면 양쪽 눈을 모두 가리면 시각계의 전기신호가 전반적으로 사라지더라도 좌우의 균형은 유지되지만, 한쪽 눈만 가리면 가리지 않은 눈에서 오는 전기 신호에 압도되어 가린 눈에서 오는 전기 신호가 처리되는 뇌 영역이 사라진다. 뇌신경망이 형성되는 데는 두눈 사이에 일정한 경쟁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에 의거하여 최근에는 한쪽 눈이 약시일 경우 정기적으로 정상적 눈에 안대를 채워 과도한 자극을 줄여 좌우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시술이 보편화되고 있다.
신생아의 시각
신생아는 겨우 전방 20cm 안에 있는 물체만 볼 수 있을 뿐이다. 6개월이 되면 물체의 깊이를 감지하고 색을 구분하며, 양안 운동의 미세한 조절도 가능해진다. 12개월이 되면 색색으로 빛나는 3차원의 세계를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시각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인간에게는 시각이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조물주가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좋은 시각을 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적으로 보면 시각이 어느 정도 제한된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너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적당한 경험을 하도록 만든다. 아기가 시신경계가 성숙된 상태로 태어났다면, 아기는 갑자기 많은 양의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신생아가 엄마의 얼굴이나 젖꼭지, 자신의 손을 보고 이해하는 데는 제한된 시력으로도 충분하다. 출생 후의 시각경험을 단계적으로 높이므로써 뇌 시각 영역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시신경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한 갈래는 뇌간으로 가서 안구의 움직임과 반사를 조절하고, 다른 갈래는 외측슬상핵(lateral geniculate nucleus)을 거쳐 대뇌의 시각 영역으로 연결된다. 두 경로 중에서 뇌간의 경로가 빨리 성숙하여 생후 2개월까지 아기의 시각을 담당한다. 뇌간의 경로는 무의식의 수준에서 작동한다. 외측슬상핵의 경로는 의식적인 시각을 담당한다. 망막의 백만개의 신경절세포들이 시신경을 형성하여 외측슬상핵와 연결된다. 외측슬상핵 신경들은 후두엽에 있는 일차시각피질에 연결되어 시각 정보 처리가 시작된다.
아기가 뽀로로의 동영상을 볼 때, 아기의 뇌는 색, 모양, 위치, 방향 등을 따로따로 처리한다. 좌우뇌의 시야에서 오는 정보가 따로 처리되듯이, 각각의 구성 요소가 뇌의 각 영역에서 따로 분석된다. 뇌의 각 반구에서 32개의 시각 영역이 각 영역별로 물체의 모양, 색, 세세한 부분, 움직임, 위치, 깊이 등 인식하는 정보가 모두 다르다. 이 때문에 아기는 시각정보의 많은 구성요소들을 동시에 처리하여 빨리 시각인식을 할 수 있다.
아기들은 단일 장소에서 깜빡거리는 자극을 생후 4주에 거의 성인과 마찬가지로 감지할 수 있고 생후 2개월에는 성인과 비슷해진다. 운동 방향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바탕으로 공간적 변화를 지각하는 것도 생후 7주 무렵에 나타난다. 생후 20주에는 아기들이 다양한 속도의 움직임을 구별할 수 있어서, 생후 3-5개월에는 움직이는 자동차의 창문으로 보이는 빗방울과 같은 대규모 동작 패턴을 지각한다. 난독증이나 자폐증 같은 발달장애는 이러한 동작 패턴을 지각하는 데 문제가 있다.
눈의 망막에는 빛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시세포인 원추세포와 간상세포가 있는데, 이 시세포층이 빛을 신경 신호로 바꿔준다. 원추세포는 빛의 양이 많은 낮에 색깔을 감지하는데, 갓 태어난 아기들은 색깔을 분별하지 못하지만, 생후 4개월에서 색깔을 잘 볼 수 있다. 간상세포는 빛이 적은 밤에 명암을 감지하는데, 생후 6개월이 지나야 발달한다. 깊이를 지각하려면 양쪽 눈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 양쪽 눈은 동일한 대상을 조금씩 다르게 보는데, 이런 양쪽 눈의 차이는 머리 크기에 따라 좌우된다. 신생아들은 깊이를 지각하지 못하지만, 생후 4개월이 되면 양쪽 눈으로 깊이를 지각하는 양안단서를 사용하는 능력이 발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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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의 시각
태아의 시각계 형성은 망막, 외측슬상핵, 일차시각영역, 측두엽과 전두엽의 주위 시각중추 순으로 진행된다. 시각계의 형성은 배아 4주부터 일찍 시작되지만, 모든 체제가 구비되고 가동되려면 출생 후 몇 개월이 지나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경로가 견고하게 안정되려면 그 후로 또 몇 년이 더 걸린다. 망막은 수정체중심와(fovea)에서 시작해서 주변부로 향하며 성숙된다. 임신 14주가 되면 수정체중심와 세포는 모두 형성되지만, 망막 주변부에 있는 간상세포와 원추세포는 출생 후에도 계속해서 형성된다. 신생아는 주변시가 중심시보다 좋다. 중심시는 출생 후 몇 개월이 지나 원추세포의 변화로 급격히 좋아진다.
외측슬상핵의 신경세포들은 망막의 세포들이 형성되고 난 뒤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임신 11주에는 외측슬상핵 내 모든 신경세포의 형성이 끝난다. 그리고 임신 초기가 끝나갈 무렵에 망막의 신경절세포와 외측슬상핵의 연결이 이루어진다. 출생 후에도 외측슬상핵 신경의 시냅스 형성은 계속되는데, 이때 시냅스는 대뇌피질세포와 연결됨으로써 대뇌피질이 시각 기능을 조절하게 한다.
임신 중기가 되면 시각피질은 급격히 자란다. 일차시각영역에 있는 1억개의 세포들이 임신 14주와 28주 사이에 모두 만들어진다. 1억개나 되는 시냅스는 각각 자기 길을 찾아서 색, 모양, 위치, 방향, 깊이의 감지 등에 필요한 신경회로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시각계의 발달을 고려하여 자궁 속 태아에게 어떤 빛을 비춰주어야 할 것인가. 태아 스스로 빛에 대한 적응력을 서서히 키워야 하므로, 강렬한 빛보다는 부드러운 빛이, 인공광보다는 자연광이 좋다. 집 안에만 있지 말고 가벼운 나들이를 자주 하고 때론 태양이 눈부시게 비치는 강변을 산책하자. 따뜻하고 환한 햇빛 아래 있으면서 태아에게 태양 빛을 선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