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어린이문학 밝힌
작가들의 재미난 동화
방정환 주요섭 조지훈 외 지음, 정가애 박세영 전미화 그림
창비·각 권 7500원
고전을 왜 읽나. 딱 하나만 꼽으면? 재미다. 요새 사람과 은근히, 때론 도저하게 결이 다른 생각과 말이 주는 재미의 신천지. 출판사 창비의 ‘근대 유년동화 선집’ 세 권은 고전에 값하는 1920~40년대 동화 스물두 편을 모았다. 방정환에서 조지훈까지 근대 어린이문학을 밝힌 열일곱 작가의 작품이다. 하나하나 읽노라면, 역시나 재미난다.
첫 권 <시골 쥐의 서울 구경>은 방정환의 표제작을 비롯해 권환, 맹주천, 이병화, 이태준, 이영철, 박태원의 아홉 편 모음. 처음 상경한 시골 쥐가 우뚝 솟은 새빨간 양옥집(그림)에 사는 서울 쥐를 만난 뒤 “어쩐 영문인지 모르게” 집배원 가방에 실려 서울 구경을 하는 표제작도 참 유머러스하거니와, 지난 세기의 근대 동화들이 내장한 재미의 정체는 해학에 있다. 읽는 아이들의 눈높이와 등장인물(동식물)의 처지에 충실한 시선은 한순간의 유머를 그저 웃고 넘어가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에 멈추어서 생의 한 국면을 응시하게 한다.
새 알을 만지고 싶은 아이의 조바심을 담은 이태준의 3쪽짜리 짧은 동화 ‘슬퍼하는 나무’ 역시 군더더기가 없다. 나무 위 둥지의 알을 꺼내겠다는 아이에게 어미 새는 “며칠 지나면 까놓을 테니 그때 가져가”라 하고, 며칠 뒤엔 “고운 털 날 테니 그때 둥지째 가져가”라 한다. 천연덕스런 말 탓에 어미 새의 기지를 미처 모르고 (읽는 이가) ‘진짜 제 새낄 넘기려나’ 하는 찰나에, 다시 며칠 뒤. 아이가 와보니 나무에 둥지만 달랑. 아이가 “내가 가져갈 새 새끼가 다 어디 갔니?” 묻자 나무가 답한다. “누가 아니. 나는 너 때문에 좋은 동무 다 잃어버렸다. 너 때문에!” 알을 얻지 못해 속상한 아이를 향해 던지는 나무의 ‘일격’, 그 마지막 반전이 상큼하다.
<벼알 삼 형제>는 주요섭, 최인화, 정우해의 네 편, <콩 눈은 왜 생겼나>는 조지훈, 정명남, 임원호, 송창일, 강소천, 우효종, 박목월의 아홉 편이 묶였다.
세 책은 ‘첫 읽기책’이다. 소리내 읽으며 노는 동화다. 아이들이 읽거나 어른이 읽어주는 책이다. 작가 개성이 실린 말을 최대한 살리되 읽기 쉽게 가다듬었다. 조미료 친 듯 강한 말의 홍수 속에서도, 이 책의 싱거운 듯 꾸밈없이 진실한 말의 당길심이 아이들을 빨아들일 것임이 분명하다. 6~9살.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그림 창비 제공
(*한겨레 신문 2014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