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음식을 먹거나 과식을 하면 항상 소화가 안 되고 체하는 경향이 있는 5살 된 아이가 내원했다. 보호자로 온 할머니는 평소 이런 증상이 있을 때 손을 따주면 괜찮아지곤 했는데 최근에는 잘 안되는 것 같으니 정확히 어디를 따주어야 하는지 물어왔다.민간요법으로 따주는 것은 손가락이나 발가락 끝을 상처내어 피를 뽑는 것으로, 흔히 체하거나 정신을 잃었을 때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사혈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피를 뽑아내어 몸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방법이다. 하지만 예로부터 피는 소중하게 생각돼 질병이 있을 때 피를 보충하기 위한 방법을 많이 사용했고, 특별한 순간에만 피를 뽑아냈다. 사실 서양의학에서 훨씬 더 흔하게 피를 뽑아내는 치료법을 시도해 왔다. 역사적으로는 히포크라테스가 활약한 기원 전 5세기부터 약 100년 전까지 널리 이용된 치료법이다. 이때 사용된 방법은 병을 유발한 나쁜 피를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는데, 다량의 피를 뽑았다. 심지어 2리터 이상의 피를 뽑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사혈은 그 효과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부족하고, 사혈을 하기 위해 만든 상처를 통해 질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이 침입하기 때문에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현대의학에서는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한의학에서는 사혈이라는 단어보다는 자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근본적으로 사혈의 개념과 다르기 때문이다. 인체에는 경락이 흐르는데 몸의 아래위를 세로로 흐르는 것이 경맥이고 여기서 옆으로 흘러 말단까지 이르는 것을 락맥이라 한다. 자락이란 락맥을 침으로 자극하여 피를 뽑아내는 방법을 말한다. 보통 ‘딴다’라고 이른다. ‘따다’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물체의 한 부분을 떼어 내다’, ‘종기나 살갗 따위를 째거나 찔러 터뜨리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결국 인체의 피를 소량 제거하는 것이지 다량의 피를 뽑아내는 것은 아니다.자락은 두 가지가 있는데 육안으로 바로 보이는 혈락(암적색의 피가 모여 있는 부위)에 침을 자극해 어혈을 제거하는 방법과 말초순환이 가장 잘 드러나는 손발 끝 부위의 락맥을 침으로 자극하여 피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하지만 두 방법 모두 전문가의 판단이 꼭 필요하다.어혈을 제거하는 방법을 쓰기 전에 개인의 기운이 충분한지 부족한지 확인한 뒤 감당할 능력이 되어야 사용할 수 있다. 손발 끝 부위 락맥을 침으로 자극하는 경우에는 정확한 부위를 선정해야 효과가 나타된다. 다섯 손가락과 발가락 끝을 흐르는 경락이 각각 틀리기 때문에 증상에 맞게 부위를 선정해야 한다. 비록 경락이 손발을 모두 연결하여 흐르기 때문에 다소간의 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정확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부위, 깊이, 피를 뽑는 양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일괄적이지는 않지만 손발 끝의 경우는 10방울 이내가 적당하다.자락은 기본적으로 피를 뽑아내는 방법이므로 귀중한 피를 함부로 빼서는 안 되므로 증상이 있을 때에만 시행해야 한다. 아울러 가정에서는 따주기 전에 부위를 소독하고 소독액이 마른 뒤 멸균된 1회용 침을 사용하며 피를 뽑은 부위를 다시 소독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방법은 한의원에 내원하여 진단에 따라 정확하게 시술을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