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아기돼지 세 마리
데이비드 위즈너 글·그림, 이옥용 옮김/마루벌 펴냄(2008)
데이비드 위즈너는 스타 그림책 작가다. 발간한 작품 대부분이 호평을 받았으며 한 번도 받기 어렵다는 콜더컷 메달을 세 번이나 수상하였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책은 한국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다. 엄마들은 그의 그림책을 보면 우선 당황한다. 글씨가 없다니! 이래서야 어떻게 아이에게 읽어줄 수 있지?
데이비드 위즈너는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으며 글자에 매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그림책 중 다수는 아예 글자가 없다. 대신 영화를 촬영하듯 화면을 구성하고, 만화 기법을 이용하여 그림을 배치해서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문자가 있어야 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문자가 없는 곳에도 사건은 벌어지고 이야기는 있다. 위즈너는 글자가 읽어주는 세상을 넘어서서 아이들이 세계를 경험하고 상상하기를 바란다.
<아기돼지 세 마리>는 위즈너의 책 중 몇 개 되지 않는 글자가 많은 그림책이다. 그는 이 그림책을 통해 고전적인 이야기인 <아기돼지 삼형제>를 비틀었다. 아기돼지들은 늑대가 찾아와 집을 무너뜨리려고 바람을 불자 그림책 밖으로 날아간다. 그림책 밖은 빈 공간이 있고 늑대는 이곳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아기돼지는 그림책 밖 세상을 여행한다. 늑대가 등장한 장면은 한 장의 종이가 되었고 아기돼지들은 그 장면의 종이를 접어서 종이비행기로 만든다.
종이비행기를 타고 가서 만난 첫 번째 세상은 마더구즈(구전동요)가 흐르는 세상이다. 지루하고 이차원적인 공간이다. 돼지들은 실망해 곧 다른 곳으로 향하고 바이올린을 켜던 고양이도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아기돼지들을 따라나선다. 그들은 욕심 많은 왕자에 의해 위기에 몰린 용을 구출해 그림책 밖으로 데리고 나온다. 그러고는 다시 자기들의 그림책으로 돌아간다. 그림책 속에서 늑대는 여전히 바람을 불어 아기돼지를 잡아먹으려 한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온 것은 거대한 용. 아기돼지는 늑대를 물리치고 용과 고양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
위즈너는 이차원적인 그림책, 글자의 틀에 갇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책을 넘어서려 한다. 하지만 상상을 통해 넘어서야 할 것은 과거의 그림책, 과거의 이야기 방식만은 아니다. 겉으로는 따뜻해 보이지만 지극히 일방적인 교육, 상상을 허용하지 않는 닫힌 구조의 세계야말로 아이들이 상상 속에서 뒤집어야 하는 대상이다. 비록 상상 속에서지만 그런 세계를 뒤집어 낼 때 아이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한겨레 신문 2014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