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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안심해 그는 버리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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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20548201_20141219.JPG» 그림 베틀북 제공

서천석의내가 사랑한 그림책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
심스 태백 지음/베틀북 펴냄(2000)

쓸모없는 존재로 버려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어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적잖은 아이들은 자신이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스스로 무력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끔은 과장된 태도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도 하고, 애교나 떼쓰기로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는 무력한 존재다. 어른이 돕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아이들은 물건을 버리는 것을 싫어한다. 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도 버리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고, 다 낡아빠진 어린 시절 이불이나 예전에 보던 그림책도 버린다고 말하면 싫어한다. 심지어 병뚜껑과 같은 자잘한 쓰레기를 서랍 가득 모아두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이라면 심스 태백의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요셉은 오버코트가 다 낡아 해졌지만 버리지 않는다. 아랫단을 잘라서 재킷으로 사용한다. 재킷으로 사용하다 낡으면 팔을 잘라 조끼로 만들고, 조끼가 낡으면 목도리로, 목도리가 낡으면 넥타이로 만든다. 넥타이가 끝이 아니다. 넥타이는 손수건이 되고 손수건은 작은 단추 하나가 된다. 마침내 단추도 사라졌지만 요셉은 오버코트와 헤어질 생각이 없다. 오버코트가 단추로 변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어 영원히 간직한다.

가난하고 구두쇠여서 요셉은 이렇게 궁상맞게 행동하는 것일까? 물론 그림책에는 요셉의 재정 사정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요셉에겐 삶에 찌든 모습은 없다. 그림책 속 요셉은 낡아빠진 옷을 입고도 늘 웃고 있다. 웃으며 소중한 것을 간직하고 삶을 즐기려 애쓰고 있다. 요셉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오래된 옷만이 아니다. 오래된 사람도 그에게 소중하다. 멀리 있는 동생을 만나러 가고, 조카의 결혼식에선 신나게 춤을 추며 즐긴다. 요셉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

서천석.JPG»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보면서 느끼는 첫번째 감정은 따뜻함이다. 요셉은 당장 쓸모없다고 내치지 않는다. 부족하다고 탓하지 않고 지금의 모습에 어울릴 새로운 자리를 잡아준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다. 이런 대사는 어떤가? “이것 봐, 이젠 아무것도 없지만 이렇게 또 만들고 있잖아.” 이런 어른이라면 안심이다. 그와 함께라면 안심하고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버림받지 않을 테니까. 그림책에서 요셉을 바라보고 있는 동물들의 동그랗게 뜬 눈은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 책은 아름답다. 그리고 재미있다. 심스 태백 특유의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색채, 유머를 가득 품은 콜라주 기법은 감탄을 자아낸다. 간결하면서도 리듬감 있게 반복하는 매끄러운 문장은 아이의 귀를 사로잡고, 구멍을 사용해서 발견의 즐거움을 주는 옷의 표현은 아이의 손을 가만있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더욱 빛날 수 있는 까닭은 바탕에 따뜻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불안하지 않을 때 아이는 비로소 삶의 재미와 아름다움을 제대로 누릴 수 있으니까.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한겨레 신문 2014년 12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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