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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만네가라, 정글 속에서 네 식구 함께 한 작은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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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만네가라, 토큰 없음!
“우왕, 엄마 타만네가라 걸렸다. 히히, 토큰 못 받네!”
“괜찮아, 여긴 풍경이 아름답잖아. 여기서 쉬었다 가는 거야.”
내가 토큰 못 받는 타만네가라 카드를 뒤집었을 때, 나도 아루처럼 말했다. 푸트라 모스크에서 토큰은 못 받아도 ‘분홍색’이라서 괜찮다고 아루가 말한 것처럼.
게임 카드에 인쇄된 조그만 세 장의 사진에 반했다. 짙은 초록의 숲, 강인지 호수인지 모르겠지만 그 위에 떠 있는 조그만 배 한 척, 그리고 숲 속의 집.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었다. 저 배를 타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 거야.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신선한 공기를 내뿜겠지.

숲 속에는 누가 살까? 원숭이? 코끼리? 물가에서 새들이 물을 마시고 있을지 몰라. 물고기를 잡아 올릴지도 모르고.

악어가 나타나면 어쩌지? 괜찮아. 악어는 밤에 돌아다니니까 뜨거운 태양 아래 낮잠을 즐기고 있을 거야.

짙푸른 숲 속에서 하룻밤 자도 좋겠다.

숲 속의 밤은 어떨까? 어둠 속에서 동물들의 소리가 들려오면 무시무시한 기분이 들겠지? 우리 꼭 껴안고 자자.

아침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뜨면 정말 멋질 거야. 오솔길 따라 아침 산책을 해도 좋겠지.

사진 속 풍경으로 우리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타만네가라, 쉬었다 가자!"언젠가부터 타만네가라 카드를 뒤집으면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타만네가라(Taman Negara)는 말레이어로 ‘국립공원’이라는 뜻이다.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라서 일반 명사가 그대로 고유 명사가 되어 버렸다. 그 당시에는 국립공원, 타만네가라가 오직 하나였을 테니까.

말레이 반도의 ‘허파’라 불리는 타만네가라는 말레이시아 중부의 열대 우림이다. 서울시 면적의 일곱 배에 해당하는 정글은 1억 3 천만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빙하기, 화산 활동 등의 지각 변동을 피해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원시림이란다. 다양한 동식물,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라플레시아 꽃, 희귀 난초와 양치류, 곰팡이 그리고 말레이시아 호랑이, 게 먹는 원숭이, 수마트라 코뿔소, 큰푸른목도리꿩(Great Argus), 적색야계(赤色野鷄, Red Junglefowl, 닭의 야생 조상) 말레이시아 물소, 아시아 코끼리 등의 희귀 동물이 살고 있다고 알려졌다.

 (론리플래닛, 위키피디아,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Taman_Nega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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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란툿에서 아침 첫차를 타고 쿠알라타한(Kuala Tahan: 쿠알라는 강 하구라는 뜻이고 타한은 고유명사.) 마을에 도착했다. 타만네가라 국립공원과 강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이곳에 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란툿 근처에서 배를 타는 것이다. 배를 타고 여기까지 오면서 두세 시간 동안 강가의 야생동물을 볼 수 있어 여행자라면 누구나 버스보다는 배를 선호하는 게 당연.  하지만, 우기에는 강물이 불어 위험하다고 해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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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반겨준 것은 희귀 야생 동물은 아니고 들고양이, 닭, 이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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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닭 졸졸 따라가는 병아리들.  나랑 아루해람 같다.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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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기에 여행을 다니면 좋은 점도 있으니 북적거리는 인파를 피해 한가롭게 둘러 볼 수 있다.  마주치는 사람이 없어 호객꾼이 반색하며 다가와도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눌 듯.

조그맣고 수수한  마을이 우리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길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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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양쪽에 늘어선 나무가 뭔고 하니 고무나무였다.  바닥에 떨어진 생고무 조각을 하나 주웠다. 나중에 머리끈으로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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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숙소를 발견했다. 아마존의 지류가 흐르는 볼리비아의 루레나바께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와 느낌이 비슷하다.

딱 여기다 싶어 기념 사진까지 찍었는데 아쉽지만 가족실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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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더 걷다가 더 멋진 곳을 발견했다. 외딴집이 마음에 들었다. 너른 마당도 좋고.  슬슬 다리가 아파오는데 더 이상 가봤자 뭐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가격도 착하다. 더블 침대와 이층 침대가 있는 화장실 딸린 가족실이 하룻밤에 60링깃(2만원 조금 넘는다.)!

은신처 삼으면 딱인데!

그냥 다 잊고 한 일주일 살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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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러 가자.

버스 정류장 근처의 나루터로 되돌아왔다. 아까는 분위기가 좋아 아무 생각없었는데 온 길을 되돌아가려니 힘들었다. 우리가 버스정류장으로부터 거의 1킬로미터나 떨어진, 가장 먼 곳에 숙소를 정한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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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바라본 쿠알라타한 마을. 배를 정박해 놓은 조그만 나루터는 식당을 겸한다. 이른바 floating restaurant. 여행사 패키지 상품에서 소개하는것만큼 거창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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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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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만네가라 국립공원 안내소. 커다란 리조트 단지 안에 있다. 입장료를 내고 지도를 받아 들었다. 곧 비가 쏟아질지 모르니 서두르라는 말에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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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 속으로!

생각보다 산책로가 편하게 잘 돼 있었다. 우기에 특히, 거머리가 많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못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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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가 大나무인거지? 깨알 같은(!) 좌린의 말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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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축축한 정글 속으로 한 줄기 빛이 뚫고 들어온다.

으앙~!

가족사진 찍자고 좌린이 카메라를 고정할 곳을 찾는 동안 우리는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해람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보통 울음이 아니라 겁에 질린 괴성이었다. 커다란 개미 한 마리가 해람이 목을 기어가고 있었다. 침착하게 손가락으로 개미를 떼어내고 아이를 달래었다.

괜찮아. 별거 아냐. 봐봐. 개미잖아.

놀란 아이 달래느라 이렇게 말은 하지만 등줄기가 서늘했다. 내 손톱보다 큰 왕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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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성큼 앞선 자의 여유. 쉬면서 해람이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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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람이는 지나갈 수 있는데 아빠는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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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노피 워크웨이(Canopy walkway) 거대한 나무와 나무를 연결해서 만든 흔들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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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빨리 좀 와!

얘야, 나는 너처럼 그렇게 가볍지가 않단다. 너는 가벼우니까 지나가도 별로 흔들리지 않지만 나는 다르다구.

아이들이 겁을 내면 우리가 업고라도 가보자 생각했는데 실제 상황은 달랐다. 다리가 후들거려 머뭇거리는 건 나. 아루는 깡총깡총 뛰듯이 앞서 가며 다리를 흔들어 내게 겁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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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따라 오는 해람이. 안전을 위해 앞사람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다리 하나에 최대 4사람이 지나갈 수 있단다. 성수기에는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데 비수기라서 여기도 우리가 독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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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람이도 웃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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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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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의 풍경

보기만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너희들은 정말 괜찮은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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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00미터, 일곱 개의 다리를 모두 건넜다. 단 과자로 에너지 보충.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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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건넌 다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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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가는 길. 뿌리가 이렇게 어마어마하니까 그렇게 하늘 높이 솟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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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람이 몸에 딱 맞는 나무 터널. 우리는 기어가듯 몸을 낮추어야 하는데 해람이는 그냥 걸어간다. 엄마, 아빠가 낮은 터널 통과하느라 애쓰는 걸 보니 재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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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는데 무사히 흔들다리를 건너고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내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쏟아지지 않을 뿐이지 습도가 엄청 높았다.

물먹은 스폰지처럼 땀에 절은 몸을 씻고  마당에서 놀았다.

해먹 바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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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앞에 피고 지는 꽃.

마당에 키 큰 람부탄 나무에 람부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장대로 따 먹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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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라운지. 성수기라면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로 북적거릴테지만 얌전한 고양이 한마리 홀로 낮잠을 즐기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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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집 아이들이 만화영화를 켜 놓았다. 카운터 너머 주인집 거실 TV를 훔쳐보는 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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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 고양이 이름은 뭘까? 뭐라고 부를까?

흰둥이, 순둥이, 얌전이..

고양이가 얼마나 순한지 아이들이 만지고 간지럼을 태워도 꼼짝 않고 몸을 맡겼다.

단 한 번, 해람이가 꼬리를 슬쩍 잡아당겼더니 그제서야 이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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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 부엌. 역시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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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버스정류장, 나루터까지 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 좌린이 혼자 나가 먹을 걸 사왔다.

바나나 잎에 싼 나시라막. 한 개에 1링깃 (3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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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떨어지고 시원스레 쏟아지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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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다리 끝에서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내딛는 해람이를 보며 아이들이 막 걸음마를 시작할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루는 혼자서 잘 걸을 때까지 오랫동안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더니 손을 놓고 나서는 한 번도 크게 넘어지지 않고 안정된 자세로 잘 걸었다. 혼자 걸어보라고 손을 놓으면 멈춰 서서 팔을 쭉 뻗어 내 손을 찾던 아이가 어느 날 거실 끝에서 반대쪽 끝에 있는 내게로 돌진해 왔다. 아장아장 걸어와 나를 잡았을 때의 감동이란!
해람이도 조심성이 많지만 아루 만큼 오래 뜸을 들이진 않았다. 장난감 접시를 한 손에 들고 신들린 듯 걸음마를 시작했다. 어른 보폭 한 개 정도의 좁은 거리를 열여섯 걸음 걸어 내 품에 와락 안겼다. 아이의 첫걸음은 불안하고 아슬아슬해 보였다. 지켜보는 내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불안한 것은 엄마의 마음일 뿐 아이는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깔깔깔, 기우뚱해서 주저앉아도 깔깔깔, 다시 일어나며 계속 깔깔거렸다. 해람이의 첫걸음을 우리는 ‘신바람 걸음마’라고 불렀다. 식당에서 음식 나르는 사람처럼 한 손에 접시를 올려놓은 것이 재미있어서 해람이를 따라서 다 같이 깔깔깔, 웃음바다가 됐다.
아이가 세상을 향해 첫발을 뗄 때의 그 벅찬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오직 젖 빠는 힘만 가지고 세상에 나온 아이가 스스로 걷게 되다니! 아이가 태어나서 나날이 자라고 조금씩 변하는 과정은 영화보다 더 짜릿한 전율과 훈훈한 감동을 주었다. 엄마 노릇이 고되고 외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두 아이가 자라온 매 순간을 곁에서 고스란히 지켜볼 수 있어 참 행복했다.
“잘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흔들다리 끝에서 걸음마를 할 때처럼 해람이를 응원했다. 카메라 렌즈로 주밍 하듯이 다가오는 해람이의 얼굴을 살폈다. ‘아, 웃고 있구나!’ 해람이가 겁먹지 않았을까, 마음속에 있던 한 가닥의 걱정이 비로소 사라졌다. 나도 따라 웃었다.
고백하건대 흔들다리에서 가장 겁을 먹은 건 바로 나였다. 다리가 몹시 후들거렸다. 주변을 살펴보고 사진을 찍자, 마음으로는 그렇게 외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내 무게만큼 다리가 출렁거릴 때마다 가슴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안 무섭~!, 안 무섭~!
불현듯 마음속 어디선가 아루 목소리가 들렸다. 수년 전, 아루가 아직은 어린이라기보다 아기에 가까웠을 때, 아루 손을 잡고 거창의 시골집 앞에 나 있는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오던 일이 떠올랐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비탈길은 꽤 가팔라서 혼자 걸어도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는데 아이와 함께 걸으려니 바싹 긴장이 되었다. 그때 아루가 노래 부르듯이 외쳤다. “안 무섭~! 안 무섭~!” 아루의 주문은 내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 함께 ‘안 무섭!’을 외치며 내려오는 비탈길은 두렵지 않고 즐거운 길이 되었다.
안 무섭~! 안 무섭~!
주문을 외니 훨씬 나았다. 사뿐사뿐 나보다 앞서 가는 아루, 조심조심 뒤따라오면서 나름의 모험을 즐기고 있는 해람, 또 그 뒤를 따라오는 좌린.
아이들과 함께, 네 식구 함께 걷는다고 생각하니 불끈 용기가 났다. 나를 믿고 나를 올려다보는 두 아이. 이렇게 온전히 나를 믿어주는 이가 또 있을까? 나를 믿고 내게 의지하는 아이들을 보면 내가 조금은 훌륭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더 용감하게, 더 멋지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서울의 일곱 배만큼 큰 타만네가라 국립공원에서 우리가 걸은 것은 얼마큼일까? 넓이로 따지면 타만네가라에 다녀왔다고 자랑스레 말할 수 없을 만큼 미미하다. 혼자서라면 더 높이 더 멀리 갈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고 해서 더 깊은 감동을 얻지는 못했으리라. 작은 모험이지만, 네 식구 함께하는 것이라 특별했다. 서로의 걸음에 발을 맞추고 걸음마 하듯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는 과정이 참 소중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돼서도 아직 겁쟁이인 내게 아이들은 커다란 용기와 즐거움을 선물해주었다.

 

고맙고 행복했다.

함께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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