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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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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놀이만한 공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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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50224.jpg» 권규리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아들이 이번 대학입시에서 사진학과에 합격했다. 고1 때, 스스로 사진학과를 결정하였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학과에 들어간 셈이다. 합격자 발표를 접하고 아들은 “아빠, 10가지 고민이 사라졌어요”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만일, 대학에 합격하지 않으면 군대에 가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딸과 함께 두 아이가 모두 재수를 하는 일이 없이 한 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트레스가 없었다. 초,중,고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해라’라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더불어, ‘열심히 해’, ‘노력해’ 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늘, 항상 하는 말이란 ‘너의 꿈은 무엇이냐?’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였다. 그러므로 그동안 자신들이 관심있고,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빠에게도 불만이 있었다. “아빠, 왜 우리 집은 다른 집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지 않아요”라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집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하나씩 깨닫게 되었다. 또한 사교육은 항상 1곳만 다녀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결국, 보통의 가정보다 훨씬 적은 사교육비를 지불한 셈이다.

20150201.jpg 아들은 바둑이 아마 5단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초고속 승급을 거듭해서 3학년에 아마1단, 4학년에 벌써3단을 땄다. 5학년 때는 지역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하기도 했다. 바둑이 동네 8급인 아빠는 아들을 응원하기 위하여 인터넷 1단이 되기도 했다. 아들은 민물, 해수, 기수 등 물고기에 대하여 박사급이다. 5학년 5월 5일부터 용인에서 청계천 7가의 수족관에 혼자 다녔다. 보통 1주일에 1번 이상을 다녔다. 그러더니 3개월만에 어항이 7개가 생기고, 300마리 이상의 물고기를 길렀다. 6학년이 되어서는 200만원짜리 초대형 3단 어항을 중고로 50만원에 구입했다. 그 돈은 자신의 전 재산을 탈탈 털어서 지불했고, 아빠는 용달비만 보조해주었다. 아들은 이미 수 백 마리의 물고기 이름을 알고 있었으며, 그 어렵다는 수초 이름도 수 십 개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물을 갈아줄 때면 그 시간이 하루 종일 걸렸다. 모든 일은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물고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3살 때, 동네 대형 수족관에 물고기를 보러갔다가 먹이를 주다가 다이빙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아주 쌀쌀한 3월 달이었다. 아이가 4~7세 때는 동네 개울에서 야간낚시를 종종 하곤 했다. 어느 날, 붕어를 10여 마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했더니 외할머니에게 보약으로 드리자고 한다. 아들이 바둑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할아버지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게 5살부터 알까기와 오목을 배웠으며, 6~7세 때는 13점을 깔고 함께 바둑을 두었다. 그리고 아들은 지면 맨날 울었다. 바로 승과 패에 규칙을 배운 시기이다. 그 추억이 바로 바둑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중학교 때는 농구와 탁구에 빠졌다. 매일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이야기를 한다. 또한 1학년부터 카메라에 입문을 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아빠, 그리고 사진관을 하는 2명의 이모, 새 전문 사진작가인 작은 아빠에게 사진에 대한 노하우를 배웠다. 불과 3개월만에 준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축구에 빠졌다. 스페인, 독일, 잉글랜드, 독일 리그의 선수들의 이름은 물론 감독들까지 모두 꿰차고 있다. 입시공부를 할 시간에 축구를 즐겼다는 이야기다. 그런 아들에게 ‘나중에 축구해설가 해도 되겠다’라는 말을 하니 피식 웃는다.
 
아들의 가장 큰 장점은 사회성과 리더쉽은 물론 다양한 인성이 형성되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잘하며 항상 그 그룹에서 리더 역할을 한다. 그러나 5살까지는 집에 손님이 오면 아빠의 뒤에 숨곤했다. 이런 성격이 변한 가장 큰 이유는 이웃커뮤니티의 덕이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기 전에 동네투어놀이를 200번 이상을 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아이들과 수족관, 꽃시장, 뒷산, 개울, 등을 다녔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전국 여행을 200번 이상을 함께 다녔다. 경비행기타기, 서바이벌, 대관령 양털깎기, 모내기, 벼베기, 허수아비만들기, 망둥어낚시, 루어낚시, 선상낚시, 쭈꾸미잡기, 크리스마스 연극 등등이었다. 

20150203.jpg2005년에는 이웃커뮤니티의 숫자가 5,000가족이 되었다. 그러므로 아들은 자동적으로 많은 아이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소통하고, 교감을 했다. 더구나 6살부터 작년까지 14년간 무인도에 32번이나 아빠와 다녀왔다. 아들이 말하길, 가장 편한 잠자리는 무인도의 모래밭에서 자는 것이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아빠의 준비과정을 도와주었으며, 중학생이 되면서 선생님과 같은 텐트를 쓰면서 그들과 친해졌고, 대학생활과 인생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무인도를 다녀오면서 “아들아, 이제 아빠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 하산해라‘라고 했다. 아들의 몸은 이미 특전사 군인의 몸과 같이 강인하게 되었다. 그 결과, 중3 때는 친구와 둘이서 제주도에 4박 5일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아들이 모든 일정과 숙식을 주도적으로 해결했다. 다녀와서 하는 말, ’아빠, 제가 완전히 친구의 머슴이었어요‘라고 한다.

이제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다.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학과이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아들의 인생 대부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또한 부모로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그러므로 아이들과의 관계는 저절로 소통이 되었다. 딸이 말하길, 아들은 아빠의 아바타라고 한다. 아들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아빠의 포즈다. 심지어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도 거의 비슷하다. 역시 아이들이란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하는 따라쟁이였다. 또한 딸은 대학 1학년 때, 아빠에게 말하길 “아빠, 저 결혼 일찍해도 돼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아들은 일년 빠른 고3 때, 일찍 결혼해도 되냐고 묻는다. 그래도 엄마와 아빠와 사는 모습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나보다.

20150202.jpg이제 부모로서 자식에게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홀로서기’다. 양육의 목적은 홀로서기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고, 세상에서 스스로 자립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도 그리 걱정되지 않는다. 이미 10년 이상을 꿈 점검표를 진행하면서 스스로의 소질과 재능을 발견하고 꿈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또한 아빠의 많은 노하우를 스스로 이해하고, 터득한 것도 많다.

인생은 고해라고 한다. 고통의 바다라고 한다. 정말 좋은 일이란 작고, 크고 작은 걱정거리가 많은 것이 인생인 듯하다. 그런데 그런 이유는 부모의 욕심이 너무 많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의 인생까지 살아줄 수는 없다. 오히려 부모의 역할이란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향해서 나갈 수 있게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스스로 홀로서기를 도와주는 일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늘,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 그러나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행복을 멀리서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바로 가정에서 아이들과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고, 아내와도 늘 소통이 잘 된다. 이제 필자의 이러한 내공을 전국의 모든 아빠들에게 전수하려고 한다. 그래서 아빠학교의 이념은 ‘전국의 모든 아빠들이 좋은 아빠가 되도록 도와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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