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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림마을” 원생 하지현(사진 왼쪽)과 서윤아. 피망과 참외를 맛보고 있다. |
[esc]요리
슬로푸드문화원의 유아동 대상 미각체험 교육 현장
“향을 맡고 만져보세요
부드러워요? 딱딱해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부드러워요” 외친다
“이제 먹어볼까요?”“딴딴 따라라” 전주가 울려 퍼진다. “쌀밥, 보리밥, 조밥, 콩밥~, 된장국, 호박국, 무국~” 처음 듣는 노래에 아이들은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운다. 여기는 경기도 남양주시 월문초등학교. 서울에서 차로 30여분 거리. 하지만 학교 풍경은 산골 분교처럼 정겹다. 한 학년에 한 반씩만 있는 아담한 학교다. 지난 16일 이곳에서 이색적인 수업이 펼쳐졌다. 1학년 20여명과 6학년 15명 정도가 한 교실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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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월문초등학교 미각체험수업현장. |
사단법인 슬로푸드문화원의 강사 심온씨가 질문부터 던진다. “혼자 밥 먹으면 어때요?” 아이들이 너도나도 외친다. “외로워요”, “쓸쓸해요”, “저는 행복해요. 동생이 안 뺏어 먹어요.” 웃음이 잘 익은 박처럼 터진다. ‘슬로푸드미각체험교육’ 첫날이다. 월문초등학교는 슬로푸드문화원에 요청해 3주간 미각교육을 한다.
“부엌에서 밥 냄새도 맡고,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도 듣고, 어떤 즐거운 일이 있었나 밥상에서 얘기하면 행복해져요.” 심씨는 ‘밥상머리교육’부터 시작한다. 밥상소통은 어린이의 자존감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가공식품과 제철음식의 차이, 로컬푸드와 푸드마일리지까지, “환경을 생각하는 식생활”에 관한 풍성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좁은 케이지에 목만 내민 채 사육되는 닭들을 보여주자 “불쌍해요” 소리가 터진다. 6학년 남예현군은 “(닭들이) 행복하지 않아서 (먹어도) 맛이 없어요”라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아이들이 3~4명씩 짝을 이뤄 반 접은 신문지에 올라선다. 신문지는 가파른 절벽 같다. “답답해요”, “떨어질 거 같아요.” 공장형 축사에서 사육되는 닭들의 심정을 몸소 체험한다. 식품첨가물실험, 음식의 원재료 맛에 집중하는 미각실습, 요리수업 등이 2, 3주차에 걸쳐 계속될 예정이다. 슬로푸드문화원 교육팀장 남윤미씨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아는 이가 결국 깨끗하고 건강한 음식을 선택한다. (이런 수업은) 똑똑한 소비자로 성장하는 첫걸음이 된다”고 한다. “다양한 맛의 즐거움을 알면 다양한 사고가 가능하고, 다른 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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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각체험교육의 재료인 딸기와 피망 등. |
‘맛의 천국’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일찍부터 어린이 미각교육을 시행했다. 1971년에 처음 시작한 프랑스는 1983년에 전국으로 확대했고, 이탈리아는 1998년부터 학교 내 텃밭을 키우는 등의 미각교육을 시행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슬로푸드대학에서 그들의 미각교육을 지켜본 사단법인 푸드체인지 대표 노민영씨는 “기업제품과 로컬푸드의 차이를 알아채는 실력을 키워, 로컬푸드를 먹게 하자는 것”이라며 “음식의 맛, 향 등을 체험하고 표현하면 창의력도 커지더라”고 한다.
즐거운 미각체험에 폭 빠진 아이들은 월문초등학생만은 아니다. 남양주시 도농동 어린이집 ‘그림마을’의 네살배기 16명은 강사 정인숙씨가 “만져보세요”라고 하자 눈동자가 커진다. 엄마 앞에 앉은 윤아는 메밀색 떡과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에나 나올 법한 덩어리를 보고 고개를 돌렸다. 현미로 만든 떡과 된장에 땅콩 잼을 섞은 소스와 조청이다. 엄마가 손가락을 끌어당겨 촉감을 느끼게 하자 호기심이 생긴다. 몰랑몰랑하다. 옆자리 친구 지현이는 더 용감하다. 푹 찍어 먹는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일은 아마도 본능인가 보다. 윤아도 입에 댄다. 달콤하다. 정씨는 “처음 본 음식을 겁내지 않는 것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엄마와 함께 온 리서에게 탱탱한 피망이 도착한다. “향을 맡고 만져보세요. 부드러워요? 딱딱해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부드러워요” 외친다. “이제 먹어볼까요?” 리서는 피망이 싫다. 강사 최성은씨가 나서서 리서의 팔에 피망을 갖다 댄다. 차갑다. 리서는 그제야 호기심이 발동해 피망을 씹는다. 맛은 미뢰(혀의 미각세포)만 중요한 게 아니다. 후각, 촉각 등 온 감각의 합이다. 엄마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리서가 피망 먹는 게 처음이에요.” 이어서 딸기와 참외가 나타나자 아이들의 표정은 환해진다. 빨간 즙을 뚝뚝 흘리면서 먹는다. 껍질째 만져보고 맛본 것과는 다른 맛이다. 최씨는 말한다. “피망, 딸기, 참외 순으로 줘요. 반대로 주면 피망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죠. 당도가 연한 것부터 줘야 먹어요. 싱싱한 재료의 맛을 기억하게 한 후에 요리해주면 맛의 변화를 알게 됩니다.” 미각교육에서 맛 표현하기는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맛이 없니? 있니?”로 물어보기보다는 구체적인 표현을 끌어내는 게 중요. “어휘력이 풍부해집니다.” 단맛은 감미롭다, 달콤하다, 달곰삼삼하다, 달곰쌉쌀하다, 달착지근하다 등으로, 매운맛은 매콤하다, 매움하다, 매큼하다, 맵디맵다, 아리다, 얼얼하다 등으로, 짠맛은 짭짤하다, 찝찔하다, 간간하다 등으로, 신맛은 시디시다, 새콤하다, 시큼하다, 새큼하다 등으로, 쓴맛도 쌉쌀하다, 쓰디쓰다 등으로 말하도록 이끄는 게 좋다고 한다. “깔끔하다 등의 표현은 화학적인 맛에서 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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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각체험수업에 참여한 월문초등학교 학생들은 교실에서 상추를 키운다. |
5살부터의 교육은 부모와 아이가 분리돼 진행된다. 부모는 설탕과 식품첨가물의 유해성, 우리 장문화의 우수성을 배운다. 슬로푸드문화원은 올해 미각훈련과 표현법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작년에는 재미있는 실험을 많이 했다. 직접 생딸기를 갈아 우유와 섞은 주스를 마트에서 파는 딸기우유와 비교했다. 콜라 당도실험은 즐거운 놀이였다. 콜라에 방울토마토를 넣고 토마토가 가라앉을 때까지 물을 부어 콜라의 당도를 측정해봤다. 정인숙씨는 “식재료의 적당한 당도는 8% 정도까지”라며 그 이상을 넘어가면 몸에 피로감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만큼의 물을 마셔 희석해야 하는 것이다. 실험은 당도가 높은 콜라를 마셨을 때 피로 제거를 위해 필요한 물의 양인 셈이다. “요즘 아이들은 단맛에 너무 중독돼 있어요. 미각이 형성되기도 전에 단맛에 점령되는 거죠.”
2007년 문을 연 슬로푸드문화원은 2011년부터 경기도 남양주시의 지원을 받아 미취학 어린이부터 고등학생까지 미각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집에서 해보는 미각체험① 텃밭을 만들어서 먹거리가 생산되는 과정 지켜보기. 베란다 화분도 적극 활용한다.② 식재료를 열 손가락 활용해 만지고 향을 맡고 천천히 씹어 먹기.③ 향과 맛을 느낀 식재료로 완성된 요리를 먹으면서 조리과정을 통해 변화된 맛을 경험하기.④ 맛본 느낌을 여러가지 표현으로 말해보기.⑤ 아이에게 직접 양념으로 간 맞추기를 시켜 요리에 참여시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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