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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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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4주년…불쏘시개가 된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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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은 결혼 24주년이다. 2월말부터 올해는 어떤 밀당 놀이로 아내에게 깜짝쇼를 할 것인지 궁리를 시작했다. 올해는 멋진 꽃바구니를 선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즉시, 아내에게 봄이 되었으니 꽃시장에 가자고 슬쩍 말하니 즉시 흔쾌히 응한다. 아내와는 봄과 가을에 꽃시장에 자주 가기 때문에 일상적인 대화다. 이제 절반의 성공이다. 3월 5일, 딸이 오랜만에 일찍 귀가를 했다. 그래서 주말에 엄마와 꽃시장에 간다는 말을 슬쩍 흘렀다. 그러자 갑자기 딸이 반색을 하며 “아빠, 나도 가고 싶어요. 안개꽃 사야해요”라며 함께 가자고 했다. 


3월 7일, 오전 10시에 출발하기로 전날 약속을 했다. 그러나 1시간 전에 청천병력과 같은 아내의 말이 들린다. “나,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가지 않을거예요. 꽃 사고 싶지 않아요”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서 일단 알았다고 하며 자초지종이나 들어보자고 했다. 상황을 보니 아들 때문에 기분을 상하게 한 듯 싶다. 이제 나의 위기관리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우선 아내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며, 상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럼 오늘 꽃 사지마. 그냥 당신이 좋아하는 드라이브나 하면서 기분 풀어. 그리고 꽃시장 근처에서 추어탕이나 먹자고. 오늘은 딸이 사려는 꽃이나 사자고…” 이미 변덕이 심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아내는 이 말에 마지못해 동의한다. 그래서 즉시 출발을 하려고 했지만 머리감고, 샤워하고, 치장하는 딸을 기다리느라 11시가 되어서야 출발을 했다. 그리고 침묵속에서 자동차는 양재동 꽃시장으로 향했다. 


아내는 도착하자마자 본능적으로 자신이 사고 싶던 화분가게에 들러서 크고 작은 화분을 만진다. 딸은 혼자서 꽃 구경을 한다고 온실 속으로 사라졌다. 30분이 지나서 야생화를 파는 곳으로 모두 소집을 했다. 아내는 옥상 정원에 꽃을 심는다며 할미꽃과 양귀비 등을 골랐고, 딸도 덩달아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골랐다. 그리고 딸이 꼭 사고 싶다던 안개꽃과 프리지아를 사려고 지하 꽃상가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이미 20년이 넘는 단골집 꽃집 사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아이들이 미취학때부터 알던 사이다. 아내와 딸도 인사를 한다. 사장님은 몇 년만에 본 딸을 보고 처녀가 되었다고 놀란다. 그리고 따뜻한 커피를 내놓는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딸이 필요한 꽃을 주문했다. 그리고 안개꽃 다발이 완성되어 딸에게 건내졌을 때, 사장님에게 주문한 바구니를 달라고 했다. 이것은 이미 어제 전화로 예약을 것이었다. 그리고 네 사람 사이의 테이블에 멋진 꽃바구니가 놓여졌다. 순간, 딸과 아내는 기가 막혔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얼음이 되었다.


11120150307_130606.jpg» 결혼24주년 꽃바구니 선물.


5초간의 적막이 흘렀다. 딸과 아내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심히 당황했다. 이 때, 아내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결혼 24주년 기념 선물이야. 그동안 수고 많았어” 그러자 아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작 더욱 놀란 것은 딸이었다. 딸은 순간 큰 소리로 웃음이 빵 터졌다. 동시에 아내의 얼굴도 밝아졌다. 사장님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딸은 “아빠, 그럼 오늘 나는 깍두기야? 깍두기로 데려온 것이었어”라고 재치있게 말한다. 이 말에 “아니, 너는 오늘 불쏘시개야”라고 답했다. 딸은 그 곳에서 “아빠, 한 달에 한 번 꽃시장에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딸에게 꽃시장이란 어린 시절에 100번 이상 들렀던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도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늘 애틋하다. 점심은 추어탕이 아니라 갑자기 변한 아내의 메뉴변경으로 인하여 딸의 학교 앞에서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었다.

 

밤에 집에 돌아오니 꽃바구니는 식탁 테이블에 모셔졌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그것이 사라졌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리고 거실 테이블 위 수반 속에 꽃꽂이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다시 부엌으로 부른다. 창가에는 종이 커피컵에 꽃꽂이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베란다에 걸려있는 장미가 박쥐처럼 거꾸로 걸려있었다. 제목은 ‘우리 꽃바구니가 달라졌어요’였다. 

 

꽃1.jpg» 거실 수반에 꽃꽃이로 변하다(왼쪽), 부엌 종이 커피잔에 꽃꽃이로 변하다.

 

꽃2.jpg» 천장에 장미를 말리다(왼쪽), 문에 걸린 장미.


딸은 엄마와 아빠를 위하여 9일에 사용할 수 있는 호텔을 보름 전에 예약해주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그 호텔 CIP(Cataloging in Publication)작업을 했으며, 거기에 가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저녁에는 선약이 있기에 밤 10시 출발했다. 이 날 따라 바람도 불고, 체감온도가 영하 15도까지 내려갔다. 도착하니 아내가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라고 한다. 한눈에 딸이 그린 그림임을 알 수 있었다. 1층부터 15층까지 모든 층에 그림을 있다고 한다. 


11120150309_235646.jpg» 딸이 호텔로비에 그린 그림.


방에 들어가보니 놀랬다. 방이 코딱지 만했다. 그래도 명색이 호텔이라 갖출 것은 다 갖추어져있다. 한 마디로 다운사이징를 해서 만든 저가형, 실속형 호텔이었다. 아내는 출출하다고 하여 근처의 식당에서 오랜만에 해물파전에 막걸리로 건배를 했다. 10일 오전, 호텔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여유있게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음악이 없어도 하루종일 환한 얼굴이 되었다.


밀당놀이란 밀고 당기는 놀이다. 이것의 묘미는 상대방이 예측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에 알고도 속일 수가 있다. 그런데 이것은 누구에게나 함부로 하면 안된다.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도 행복하고, 기획하는 사람도 행복하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은 아빠를 일컬어서 ‘밀당의 고수’라고 한다. 하긴, 아이들의 웃음을 빵빵 터트리는 것에 밀당놀이 만한 것이 없다. 그것이야말로 웃음을 만들고, 소통을 만들고, 행복을 만들고,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동아줄과 같은 역할을 한다.

   

11120150310_072105.jpg» 호텔방에서 바라본 전경. 신라호텔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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