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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불안과 싸우는 상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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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늑대가 나는 날
미로코 마치코 지음, 유문주 옮김/한림출판사 펴냄(2014)

아이들은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설명은 논리적일 수 없다. 아이의 상상은 저 멀리 뛰어가기에 그에 걸맞은 논리를 갖추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는 자기가 이해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이용해 자기만의 논리를 만들어낸다. 이런 논리는 어른이 듣기에는 황당할지 몰라도 아이에게는 최선이다. 아이가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를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려 하는 것은 그래야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로코 마치코의 <늑대가 나는 날>은 이런 아이들 특유의 사고를 강렬한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수채물감으로 굵고 거칠게 그려낸 그림들은 섬세하거나 단정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흡사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처럼 보일 정도로 투박해 보이지만 그 강렬함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한편으로는 속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한데 한편으로는 불안한 아이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져 가슴이 저려온다. 볼수록 신기한 그림이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아이는 혼자다. 작가는 아이가 왜 혼자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하긴 혼자인 아이는 요즘에는 너무나 흔하다. 부모는 일을 해야 하고 골목에는 친구들이 없다. 골목의 주인은 자동차, 또는 위험한 어른들이다. 아이에게 허락된 공간은 좁은 집안, 또는 상상의 세계뿐. 이렇게 혼자여야 하기에 아이는 외롭다. 아니 두렵다. 버텨야 하는 시간은 만만치 않다. 시간은 길고, 그 시간의 틈 사이로 불안이 파고든다. 문을 꼭 닫고 집안에 있어도 바람소리가 거친 날이면 가슴이 조여 온다. 굵은 비가 유리창을 때리기라도 하면 아이의 온 신경은 집 밖으로 향한다.

아이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동물과 연관 지어서 생각한다. 천둥이 치면 멀리서 고릴라가 가슴을 치는 것이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것은 하늘에서 늑대가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내리치는 것은 얼룩무늬 치타가 몰려오는 것이고 밤의 어둠은 큰 고래가 끌고 온 것이다.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는 다람쥐가 시곗바늘로 장난을 치기 때문이고, 보고 싶던 책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은 앞 못 보는 박쥐가 자꾸 가져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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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이처럼 아이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다. 특히 감정이 고양된 순간에는 현실보다 환상이 더 우위에 선다. 상상은 아이들이 세상을 버티고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무기다. 상상을 하면 아이는 자신이 상황을 조금은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이는 아이가 불안 속에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미로코 마치코는 이러한 아이들 특유의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요즘은 불안한 아이들이 참 많다. 외로운 아이도 많다. 부모가 늘 함께 있고, 사랑을 주는 아이라 하더라도 불안이 적지 않다. 부모 역시 불안 속에 살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면서도 마음은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혼자서 세상을 느끼고, 겁을 먹으면서 세상을 버텨내고, 살아간다. 이 책은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너도 너만의 상상을 해보라고 이끈다. 거칠지만 따뜻한 책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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