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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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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사라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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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볼 안 세상의 유한함
초현실적 그림으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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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
이명애 그림/반달·1만9000원

<10초>는 위로 끼었다 빼는 은색 커버로 싸여 있다. 건축가의 설계도인 듯 날카로운 직선들이 빼곡히 그려진 커버를 벗겨내면 나오는 책 표지 윗부분에는 작은 동물들이 어딘가를 향하는 듯 줄 서 있다. 인공적인 느낌의 바깥 커버와 표지 이미지가 반전처럼 상충된다.

책을 펼치면 하늘에서 수백 수천 마리 동물들이 떨어져 내린다. 바다 위로 동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산에 사람이 헤엄쳐 온다. 사람은 동물들 사이로 부지런히 못질을 한다. 동물들은 흩어져 하나 둘 옆의 섬으로 자리를 옮긴다. 마치 동물원 우리처럼 직선의 격자 속에 갇혀 있던 동물들이 옆으로 이동하자 흑백이던 동물들의 색도 알록달록 생기있게 변한다. 사람은 더욱더 부지런히 못질을 한다.

<10초>는 글씨 없는 그림책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동물들, 동물들이 모여 있는 섬(인 줄 알았던 거대한 고래)에서 뿜어져나오는 물줄기, 하늘로 다시 날아가는 동물 등 단선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단순히 어린이책이라고 보기에는 어른도 쉽게 말로 풀어 설명해주기 쉽지 않다. 최근 그림책의 성인독자가 늘면서 <10초>처럼 독자 연령 구분이 무의미한 그림책 출간도 늘고 있다. 어른이든 아이든 그림을 보면서 자기 마음속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작가의 의도를 찾자면 앞뒷면에 그려진 동물과 숫자, 이름들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1936 주머니 늑대, 1922 바바리사자, 1939 얼룩 왈라비 등 그해에 멸종되었거나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이다. 또 마지막장에 이 많은 동물들이 놓인 세계가 작은 워터볼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유한함을 보여준다. 지금 30~40대가 어릴 때만 해도 집 앞에는 언제나 참새가 지저귀었고, 구름이 낮게 깔리면 무릎 아래로 나는 제비를 만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호랑이와 기린, 코끼리는 동물원에만 가면 언제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아도 다음 세대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워터볼을 거꾸로 들면 10초 안에 뒤집어지는 그 안의 세상, 인류의 역사도 지구라는 워터볼 안에서는 그만큼 짧은 시간일 뿐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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