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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다 부모가 문제…경쟁유발자들을 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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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 소장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학부모들과 사교육 탈출 방안을 상담하고 있다. 박 소장은 “사교육은 ‘단거리 성적경쟁’에서 부모의 불안감을 단지 일시적으로만 완화해주는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함께하는 교육] 박재원 행복한공부연구소장에게 듣는다

얼마 전까지 잘나가던 강남 학원가의 전문상담가였던 그는 지금 시민운동가로 변신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만들기에 발벗고 나섰다.

그는 왜 사교육 첨병에서 사교육 탈출의 전도사로 전향했을까.

‘반에 전교 상위권이 많아서 내 등수가 떨어진다’고 짜증내는 친구에게 ‘친구가 잘하면 축하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딸이 아직은 순수해 보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이러다가 내 딸만 처지는 거 아냐?’라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만약 이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불안감 속에 방황하며 아줌마부대에 휩쓸려 학원가를 돌아다니고 있었겠지? 자신에겐 그날 하루의 복습이 알맞다고 천천히, 조금씩 공부해가는 딸을 보며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처럼 꾸준히 하는 공부와 부모의 신뢰가 어우러진 시간을 다짐해본다. (꽃비)

내 아이만은 승자로 만들고 싶은 욕망 
‘행복한공부 부모학교’라는 부모교육 프로그램 후기로 누군가 남겨놓은 글이다. 도대체 어떤 교육이기에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도 딸을 철석같이 믿는 학부모로 변화시켰을까? 그곳에서 학부모들에게 ‘지금 바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를 교주로 받아들이라’고 외치는 ‘이상한’ 강사를 만났다. 몇 달 전까지 받던 억대 연봉이 이제 월급 150만원으로 줄어든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행복한공부연구소’ 박재원 소장이다.

그를 ‘확 저지르게’ 만든 건 어느 엄마의 한마디였다. 강남 유명 학원가에서 학습법과 진로상담을 하던 어느 날, 아이를 따라온 한 엄마가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듣고 가면 아이와 행복하게 일주일을 버틸 수 있다”고 했다. 둔탁한 망치로 머리를 가격당한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부모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아이의 성적표를 들고와서 “인생 헛살았다”며 내쉬는 어느 아버지의 한숨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아이가 아니라 부모교육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모교육에 몰두할수록 아쉬움이 쌓였다. 사적 영역에서 일회성으로 이뤄지는 부모교육은 사교육 시장이 만들어내는 ‘불안과 욕망’에 속절없이 용해돼버리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끝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현실에서 부모들은 ‘내 아이’만 처질 수 있다는 불안, 그 경쟁 속에서 ‘내 아이’만은 승자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앞에 무기력했다. 그들에게 ‘불안과 욕망’의 실체를 알려주고 지속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체계적인 부모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런 부모교육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 보고 싶었다. 그가 사교육의 현장을 등지고 지금의 단체로 활동무대를 옮긴 이유다.

“하다 보니 전체적인 구조와 현실이 보였습니다. 상담을 통해 아이와 부모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꼭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교육 시장은 자체적으로 수요를 만들어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공교육을 정상화하거나 제도를 개선해도 사교육이 줄어들지 않으며, 따라서 부모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부모교육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교육은 철저하게 ‘단거리 성적경쟁’에서 부모의 불안감을 일시적으로 완화해주는 시스템입니다. 그냥 제 속도로 가게 두면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몰아붙이면 얼마 가기도 전에 나가떨어지게 되는 겁니다. 모두가 잘못 가고 있는 상황에선 대세를 따르면 망하고 벗어나면 흥합니다.”

선생님 이야기 듣고 가면 
일주일이 행복해요 
이 한마디에 일 저질렀다 
부모교육이 우선이다 
전문가 해법에서 도망쳐라 
필요한 건 ‘스몰액션’이다

기다리기보다 준비할 수 있도록 돕자 
그가 자주 얘기하는 ‘사교육 탈출’ 사례가 있다. “제가 상담한 어떤 아이가 중학교 때 경제분야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혼자 힘으로 경제능력테스트에 응시도 하고 경제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게 시험공부가 아니잖아요. 당장 성적과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 부모가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아이를 그냥 지켜본 거예요. 이 아이는 좋아하는 경제분야를 정말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름의 방법으로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면서 그걸 자신만의 공부기술로 발전시켰어요. 경제분야 노트정리 방법을 스스로 개발하더니 그 기술을 다른 공부에도 접목시켰고, 결국 고등학교 때는 진짜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더라고요. 다른 아이들이 사교육에 지쳐 다 나가떨어질 때 이런 아이들은 씩씩합니다. 절대로 나가떨어지지 않아요.”

그는 사교육 현장의 허와 실을 명확하게 알려주면서, 기존의 잘못된 개념들을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를테면 부모에게 ‘아이를 기다려 주라’고 하는 대신, ‘아이가 더 많이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라’고 말한다.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막함은 ‘준비’가 주는 구체성으로 치환된다. 부모들은 답답해하지 않고 일종의 기대감을 갖게 된다.

사교육 해법을 제시하는 전문가는 많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학부모들이 겪는 혼란은 수많은 전문가가 제시하는 너무 많은 해법 탓이 크다. 지금 학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지식이 아니라, 당장 조금이라도 현실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스몰액션’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제아무리 좋은 부모교육을 받아도 스스로와 아이들을 비교하도록 만드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결국 또다시 ‘불안과 욕망’에 지배당하게 된다. 그는 ‘나를 불안하게 하고 경쟁심을 유발하는 결정자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볼 것을 권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과 만나는 것을 자제함으로써 ‘사교육 불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만날 시간에 건강한 교육단체 카페라도 들어가 다른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저는 부모들이 학교나 사회단체 같은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이 속한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데 참여할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그렇게 단체 안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활동하다 보면 상황이 더 잘 보이고,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도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교육이 일으키는 불안과 욕망을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거죠.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그렇게 가는 것이 진짜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껏 경험하고 실험한 부모교육을 체계적인 ‘표준 교육과정’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그 출발점으로 경기도교육청 학부모교육 티에프(T/F) 팀장을 맡았다. 사교육 영역에서 개발된 교육 가운데서도 정말 좋은 것들을 발굴해 공교육 영역에 ‘보급’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돈 있는 몇몇이 아닌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것이다.

시민단체로 옮겨 온 지금, 하루 끼니를 걱정하던 노동운동 시절처럼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는 무엇이든 길게 보려 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할 수 있다면 그다음 길은 그다음 가서 열리는 거라고 그는 말한다.

지금 뭘 해야 하는지 깨닫도록 해야 
‘성공과 실패는 예측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삶은 미래도 없고, 과거도 없고, 지금밖에 없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네가 이 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저한테 학습법 강의를 들은 아이들이 만들어준 제 ‘어록’에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이 말을 아이들이 깨달으면 공부를 되게 열심히 합니다. 아이들은 불안하니까 가만히 앉아서 ‘성적이 올라갈까? 내가 대학 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어요. ‘그래 어떻게 될지 몰라. 근데 내가 지금 어떻게 하느냐가 결정하는 건 맞지.’ 이렇게 생각을 바꾸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그 말은 제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성공하려면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동생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우스개가 있다. 우리나라 가정이 철저하게 사교육을 중심으로 해체되고 있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슬픈 농담이다. 이탈리아 작가이자 언론인인 피티그릴리는 ‘내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자신이 발간하는 신문의 사설을 매일 아침 읽는다고 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인간일지라도 결국 자신이 보고 듣는 만큼만 생각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학부모인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날마다 보고 들어야 할 것이 많겠지만, 우선 수많은 아이와 부모의 사교육 피눈물을 목격한 박재원 소장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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