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3시, 충남 홍성에 있는 ‘그림이 있는 정원’에 아내와 들렀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후에 들어서니 넓은 정원이 펼쳐진다. 그리고 몇 걸음을 걷자 아내는 ‘여기 아주가가 있네’라고 외친다. 그것은 야생화인 '아주가'였다. 아내의 옥상 정원에는 이것보다 작은 미니 아주가가 있다. 그리고 조금 길을 걷다가 ‘저것은 흑산도 비비추다’라고 외친다. 그렇다. 그것은 흑산도에서 자생하는 비비추였다. 그리고 초대형 붓꽃과 옥잠화, 다양한 형태와 색을 자랑하는 매발톱, 바닥에 지천으로 깔린 백리향, 벌개미취, 음지에 있어서 이제 막 만발한 라일락 등을 보고 아내는 계속 꽃의 이름을 부른다. 그리곤 그렇게 많은 야생화를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워하고 즐거워한다. 늘, 나보다 앞서서 걷는다. 그렇다. 이제 아내는 야생화 전문가가 되었다.
이 정원에 오게 된 이유는 오전에 충남교육기관에서 강의가 있어서였다. 요즘은 지방 강의가 있으면 아내와 함께 떠나곤 한다. 두 아이는 대학생이 되어서 더 이상 놀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이제 딸아들바보에서 아내바보로 변신중이다. 아내는 전 날, 홍성에 관하여 스마트 폰으로 서핑을 한다. 그리고 그 정원을 찾았다. 그 곳에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전신마비의 자식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아버지가 꾸민 부성애가 가득한 정원이다. 이미 그 분의 사연은 TV에도 방송이 된 터라 아내도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 실패로 그 곳은 이제 경매로 넘어갔고, 제3자가 운영 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체적인 하드웨어는 멋진데 땡볕에 잠시 쉴 수 있는 그늘조차 없기에 금방 피곤이 몰려 왔다.
아내는 흙을 만지는 것을 싫어했다. 어린 시절부터 거의 흙을 만지지 못하고 자라왔던 영향이다. 그래서 결혼 후, 단독주택에 살았어도 마당에 있는 상추조차 뜯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아파트에 살면서 화분 관리는 늘, 나의 몫이었다. 그런 아내가 흙을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요즘은 분갈이도 혼자서 가볍게 하며, 상추와 청경채 등을 따는 것도 능숙하다. 그것은 작년 6월 말에 옥상에 사무실 겸 정원을 장만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흙을 만지는 것에 대하여 강한 트라우마가 있는지 싫어했다. 그러던 그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야생화를 구입하러 꽃시장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야생화를 하나씩 구입한 덕분이다. 그리고 그 것을 새 화분에 심거나 분갈이를 하면서 정을 붙이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벌개미취에 흠뻑 취했으며, 올 봄에는 과꽃과 여러 가지 씨앗을 심었고, 거기에서 싹이 올라오면서 애정이 더욱 샘솟기 시작했다. 특히, 토란 싹이 매일 조금씩 자라서 잎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에 그만 마음을 빼앗겼다. 요즘은 잠을 자기 전, “오늘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행복한 사람에게는 빨리 흘러간다.
아내가 달라졌다. 이젠 능숙하게 흙을 만진다. 그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꽃밭을 가꾸기 때문이다. 바로 옥상이라는 특별한 장소를 제공해주었고, 또한 자신만의 꽃밭을 가꾸게 됨으로서 더욱 꽃을 사랑하게 되었다. 또한 그 곳에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북아트 공부를 한다. 사실, 한 사람의 성품이 변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에 형성된 성격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3살 버릇 80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만일, 집에서 화분 몇 개를 사다주면서 관리하라고 했다면 그렇게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에게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자. 모든 부모들은 아이를 사랑한다. 그래서 많은 사교육을 시키고, 또한 조기교육을 시킨다. 그러면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다양한 인성도 형성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전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아이는 스마트폰 게임에 빠지고, 사춘기가 되면 집안이 뒤집어지며 한 지붕 세 가족으로 진화한다. 이로 인하여 중학교 2학년의 인성이 바닥이라고 한다. 결국, 부모의 넘치는 사랑이 아이에게 불행한 인생으로 이끌고 있다. 바로 어린 시절에 행복하지 못한 아이의 인생을 살았다면, 성인이 되어서 대물림이 될 수 밖에 없다.
한 세대 전에는 아빠들이 아이와 놀아주지 않아도 누구나 좋은 아빠가 되었던 '아빠의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빠가 놀아주고 놀아주어도 아내는 아이와 더 놀아주라고 채근한다. 놀이의 개념을 살펴보면,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이 전부는 아이다. 사실, 인생의 모든 일상사가 놀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그래서 영아일 때는 신체놀이가 중요하지만 초등학생이 되면 야외놀이가 더욱 중요하다. 퇴근 후에 공을 가지고 단지내에서 30분만 놀아도 아이는 행복하다. 주말에 꽃시장이나 수족관, 새를 파는 곳, 뒷산, 냇가, 수산시장을 가도 아이는 흥분한다. 바로 아이에게 세상이란 온통 호기심 천국이기에 그런 활동은 다양한 형태로 동기부여를 해준다. 이미 수많은 사례에서 보듯이, 위인들의 공통점이란 바로 어린 시절에 개구쟁이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며, 이제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환경이 중요하다고 내가 놀이동산이나 동물원을 모두 만들 필요는 없다. 필요하면 그곳에 가서 놀면 된다. 바로 주변의 환경을 적절히 이용하면 된다. 아이와 야외로 나가면 아빠가 일일이 가르쳐 줄 필요도 없다. 이미 아이 스스로 오감을 통하여 세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등학생이라면 집안의 놀이보다 밖으로 나가서 자연과 교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면 아이에게 다양한 인성은 저절로 형성된다. 또한 많은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래서 놀이는 곧 행복이다.
그동안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200번 이상의 전국 여행을 다녀왔다. 데리고 다닌 것은 아빠였지만 세상의 이치와 지혜를 가르쳐 준 것은 자연이었다. 그래서 두 아이와 아직도 자연스럽게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다.
결국, 자연이 아빠보다 위대한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