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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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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국민 여행지, 카메런 하일랜드(Cameron highlands)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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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소개하는 여행안내서에는 어떤 내용이 쓰여있을까? 언젠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여행안내서, 론리플래닛 한국편을 펼쳐보았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하기도 했고, 여행안내서의 추천 명소를 따라가는 우리의 여행이 어떤 것인지 가늠해보고 싶었다. 외국인이 여행 안내서를 들고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답이 될 것 같았다.
그 책에서 추천하는 한국 최고의 여행지는 경주였다. 네게 일주일의 시간이 있다면 당장 경주로 달려가라, 첫 문장이 그랬다.
경주?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이후로 한 번도 다시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경주가 추천 일 순위라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하지만, 외국인의 입장이라면 경주의 유적과 유물들이 무척 색다르고 흥미롭게 느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행안내서에 소개된 곳이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행안내서에서 추천하는 유명한 여행지엔 볼거리가 많았지만, 여행자, 특히 외국인을 너무 의식하는 게 느껴져서 불편하기도 했다. 뭐랄까, 매일 먹는 밥상도 진짜 전통 음식도 아닌, 외국 사람 입맛에 맞게 신경 써서 차린 손님상을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외국인보다 현지인이 즐겨 찾는 여행지는 어떤 모습일까? 현지인들은 휴가를 어디서 어떻게 보낼까? 이번 말레이시아 여행에 카메런 하일랜드(Cameron highland)를 일정에 넣은 것은 이런 호기심 때문이었다.

카메런 하일랜드(Cameron highland)는 해발 1300~1800미터의 말레이시아의 고산 지역이다. 섭씨 10~20도, 상대적으로 선선한 기후 때문에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단다. 말레이시아 게임의 Atrraction 카드에 소개되지 않아, 처음에는 이름조차 몰랐는데 다른 걸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말레이시아 국민 여행지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앞두고, 학생들 방학이 끝나가는 요즘, 최고 성수기라서 게스트하우스 예약이 쉽지 않았다. 꽤 일찍, 한국에서부터 예약을 시도했는데 평이 좋은 게스트하우스의 가족실은 이미 fully booked! 라고 했다. 대체 뭐가 있길래, 얼마나 좋길래? 호기심과 함께 약간의 오기도 발동했다. 꼭 가봐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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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런 하일랜드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타만네가라, 쿠알라타한 마을에서 첫차를 타고 다시 제란툿으로 나와 거기서 여행사 미니 버스를 탔다. 여행사 직원이 두세 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직선거리로는 그리 멀지 않은데 구불구불 산을 돌아가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목적지 타나라타(Tanah Rata) 근처에서는 길도 많이 막혔다.
버스가 타만네가라 인근의 다른 마을을 돌며 여행자들을 태우고 막 도시를 빠져나왔을 때였다.
켁켁, 해람이 기침이 심상치 않다 싶은 순간, 왈칵.
버스 기다리며 점심을 양껏 먹었던 것이다. 해람이는 멀미 잘하니까 차 타기 한 두 시간 전에는 먹이지 말아야 하는데. 번번이 당하면서도 곧잘 잊어버린다. 다행히 주머니에 있던 비닐봉지를 갖다 대어 옷을 버리지 않고 잘 처리했다. 내 순발력에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재빠르게! 하지만, 좁은 버스에 시큼한 냄새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엄마, 나도! 켁켁.
냄새 때문인지 생전 멀미 한 번 안 해본 아루도 힘들어했다. 결국, 차를 세워 잠깐 쉬면서 차 안을 환기시키고서 다시 출발했다. 해람이는 버스 안에서 한 번 더 왈칵, 점심으로 먹은 걸 모두 게워냈다. 게스트하우스에 내려서는 물까지 다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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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올라오면서, 열대의 정글 대신에 밭이 나타났다. 산등성이 짙푸른 차 밭이 인상적이었다. 타나라타(Tanah Rata)에 이르르니 알프스 산장을 닮은 리조트,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케 하는 침엽수들도 나타났다. 우리나라 무주와 비슷한 풍경이랄까. 사람들이 털모자를 쓰고 털목도리로 멋을 내었다. 쿠알라룸푸르, 타만네가라에 비해 덜 덥긴 하지만, 해지고 나서야 반소매 티셔츠에 얇은 겉옷을 덧입을 정도인데 털모자에 털목도리라니! 일 년 내내 더운 나라에 사는 이들에겐 이 정도 기온도 색다른 경험이 되는 모양이다. 우리에겐 열대의 해변과 정글이 매력적이지만 그것을 일상으로 누리는 여기 사람들은 눈 쌓인 겨울 풍경을 동경하겠지.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없는 이 나라 사람들은 그래도 조금 선선한 이곳에서 겨울 기분을 내보는 것이리라.

 

 

다음날 아침, 타만네가라에서부터 같이 온 리카르도가 차밭을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이곳의 주요 볼거리는 차 밭, 딸기, 선인장 등의 식물 농장, 그리고 안개 자욱하고 이끼 많은 숲이란다. 대중교통으로는 갈 수가 없어서 여행사 투어를 신청하거나 택시를 대절해야 하는데 잘 됐다. 리카르도랑 같이 가면 빡빡한 투어 일정을 바삐 쫓아다닐 필요가 없으니 좋고, 택시비를 나누어 낼 수 있어 좋고! 수완 좋은 리카르도랑 같이 다니면 바가지 쓸 일도 없을 것이다. 제란툿에서 여기 올 때 리카르도가 버스비 흥정하는 걸 보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는 흥정할 생각 못하고 부르는 대로 다 줬는데. 밀당과 흥정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는 우리는 물러서 있고 리카르도가 택시를 하나 빌렸다.
자가용 승용차는 아니지만, 택시를 타고 차밭 구경을 가려니 우리도 현지인들처럼 며칠 휴가를 내어 가족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었다. 길이 좀 막혔지만, 심하게 막혀서 7km의 거리를 두 시간 만에 도착했지만, 원래 한국에서도 인기 많은 휴가지에서는 길이 막히는 법이니까. 언제 도착해? 언제 도착해? 아이들이 묻다가 지쳐 잠이 들었고 우리는 창밖을 구경하며 리카르도의 여행담, 연애담을 들었다.
이곳의 최고 인기 상품은 딸기! 길가에 딸기 농장이 종종 나타났다. 농장에서 딸기 따는 체험을 하고 딸기 모양 기념품을 사는 것이 가족 여행의 정해진 코스인 것 같았다. 딸기가 그려진 우산, 털모자와 목도리, 귀마개, 티셔츠, 양말 등을 파는 기념품 가게도 많았다. 열대지방에서 자라지 않는 딸기, 열대과일에 비해 당도가 훨씬 떨어지지만, 귀하니까, 그만큼 사랑을 받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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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딸기 괴물이야!
꾸벅꾸벅 졸던 해람이가 창밖의 풍경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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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론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멋지다는 차밭, 이곳에서 생산, 가공하는 차는 BOH라고, 꽤 유명한 브랜드란다. 차밭을 둘러보며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박물관에서 차 생산과정을 영상으로 보고 차 공장에서 가공하는 것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차를 구입하면 된다.(꼭 사야 하는 건 아니지만...)
엄마, 여기는 오설록 박물관 같아.
제주도의 오설록 박물관을 아이들도 기억해냈다.
우리, 거기서 녹차 케이크랑 아이스크림 먹었는데...
그렇지, 케이크랑,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기억은 오래가는 법!
녹차 케이크 대신에 딸기 케이크. 생크림 잔뜩 바른 케이크 위에 딸기를 올린 모습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나는 밀크티를 마셨다. 홍차를 진하게 끓여 우유와 설탕을 타서 달게 마시는 차. 인도, 네팔에서는 짜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떼따릭(Teh Tarik)이라고 부른다.
짙은 초록의 물결, 계단식 차밭을 감상하며 차 한잔 마시는 여유.
차밭을 배경으로 가족사진도 찍어주고, 현지인 관광객들 틈에 섞여 차 박물관과 공장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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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가족 여행이 될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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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이 몰려왔다. 한바탕 쏟아지고 사라지기를 기다렸는데 좀처럼 맑아지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 했는데 주차장에 택시가 없었다. 우리를 여기까지 태워준 택시는 리카르도가 흥정한 가격이 터무니없이 적다며 불만을 토로하며 가 버렸다. 괜찮아, 택시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리카르도의 말처럼 그럴 줄 알았다. 어찌 됐든 방법은 있겠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차 마시고, 박물관 보고, 차밭도 다 둘러봤는데, 여기서 할만한 건 다 했는데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일단 걸어보자. 브린창(Brinchang) 산까지 2킬로미터 정도 되니까, 잘하면 걸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걷다가 운이 좋으면 택시를 잡거나 지나가는 차를 얻어탈 수 있을지도 모르고.

비옷을 입고 비를 맞으며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걷지 않고 택시 탄다고 했잖아.
딸기 농장에는 언제 가는데?
아이들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택시 타고 다니며 케이크 사 먹고 딸기 농장 체험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언제 어디서 차를 탈 거라는 기약도 없이 빗속을 걸어야 한다니, 실망스러울 수밖에.
터벅터벅,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가는 우리들은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 같았다. 호박 마차는 사라지고, 잔치는 끝났다.

걸으니까 좋잖아, 이렇게 멋진 풍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까.
애써 명랑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달래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좋아, 오르막길에서 조금 업어줄게.
아이들을 번갈아 업었다. 1킬로미터쯤 걸었을까. 갈림길 가까이 왔을 때 택시 한 대가 나타났다.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택시비 흥정할 겨를도 없이 일단 올라탔다.
브린창 (Brinchang)산으로 가 주세요! 안개 자욱한 이끼 숲에 가봐야지. 원래 계획했던 다음 일정을 떠올렸다.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워 못 간다고 기사가 말했다.
그럼 타나란타! (Tanah Rata) 그냥 숙소로 돌아가죠. 가는 길에 딸기 농장 한군데 들르고. 길이 너무 막혀서 타나란타까지도 갈 수 없다고 했다.

가까운 브린창(Brinchang) 읍내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타나란타 가는 로컬 버스를 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시장 구경을 했다. 옥수수와 고구마를 보니 반가워서 조금씩 사고 꼬치에 딸기를 끼워서 초콜릿을 끼얹은 초코 딸기 꼬치를 사 먹었다. 배가 고팠지만, 해람이가 버스 타고 멀미를 할지 모르니 다 같이 참기로 했다.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꼬르륵, 꼬르륵, 배꼽시계는 주책없이 자꾸 울리는데 버스는 언제 오는지, 길이 그렇게 막힌다는데 타나란타까지는 대체 몇 시간이 걸릴지...

 

 

얘들아, 여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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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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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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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잡이 식물
여러 가지 화분을 늘어놓고 파는 가게(화원)에서 아이들의 시선을 끌 만한 것들을 발견했다. 아루는 예쁜 꽃들과 딸기를 좋아했고 해람이는 벌레잡이 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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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농장, 선인장 농장, 화훼농장이 여기 다 있네!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조그만 화원에서 오늘 하루, 못다한 갖가지 투어를 다 했다. 호박 마차를 잃고 심통 난 신데렐라들의 기분도 좀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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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허름한 로컬버스에 올랐다. 돌아올 때도 두어 시간 걸렸지만, 상황이 그런 줄 알고 마음을 비우니 조금 나았다. 구불구불하게 돌아가는 일차선 도로에 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주차장처럼 보였다. 다시 무주 스키장 가는 길이 떠올랐다. 길가에 유럽의 집을 흉내 낸 펜션과 리조트들의 모습이 비슷했다. 꽉 막힌 도로까지, 우리가 주말이나 짧은 휴가를 보내는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딸기 모형 앞에 아이들을 세워 두고 사진을 찍는 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깜찍하고 예쁜 딸기 모양 귀마개를 하고 옥수수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얘들아, 여기 봐~ 찰칵! 이 남자의 사진기에 찍힌 사진을 생각했다.  아이들과 좋은 추억 거리를 남기고 싶어서, 이 한 장의 사진을 위해 꽉 막히는 도로와 복잡한 인파를 참아낸 것이리라. 그 한 장의 사진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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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라타에 도착해서 드디어 밥을 먹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아루가 고른 바나나 잎 정식.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하자마자 자리에 누웠다. 피곤이 몰려온다. 남들 다 갈 때 따라가는 여행은 피곤해, 피곤해! 언제나 결론은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휴가철이 되면, 요즘 이곳이 뜬다는 소문을 들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또 떠나게 될 것이라는 걸. 막히는 차들의 행렬 속에서 내가 미쳤지,를 연발하게 될지라도.

우리는 열대의 정글과 해변을 찾아 여길 오는데, 내가 찾는 걸 일상적으로 누리는 사람들은 또 다른 것을 찾아 떠난다. 행복은 쫓으면 쫓을수록 날아가 버리지만 실제로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파랑새 동화의 결말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쩌면 정말 행복은 우리 가까이에,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 모습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삶의 진리에 다다르지 못했다. 어쩌면 삶이란, 우리 같은 보통 인간의 삶이란, 어딘가에 있을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과정이 아닐까. 그러다 문득 깨달음을 얻기도 하겠지만, 평생 모를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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