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진 웹스터 지음, 이주령 옮김/시공주니어 펴냄(2003)19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여자들이라면 한 권쯤은 읽었을 ‘소녀소설’이라는 게 있다. ‘말괄량이 쌍둥이’ 시리즈나 최근 복간된 <다락방의 꽃들>처럼 막 성에 눈뜨기 시작할 무렵 읽었던 책들이다. 친구나 동네 언니와 함께 돌려 읽는, 왠지 엄마에게 들키면 안 될 것 같은 비밀스러운 책들이었다. 주디 블룸의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거릿이에요>나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도 이 무렵 읽는 책들이었다.<키다리 아저씨>는 1912년 발표되어 백년이 넘도록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인기의 비결 중 하나가 ‘키다리 아저씨’다. 키가 크고, 부자인데다, 친절한 신사 ‘키다리 아저씨’는 숱하게 많은 드라마가 베낀 백마 탄 왕자의 원형이다.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내게도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그런 로망이 생겨난다.고아원에 살던 주디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그 보답으로 편지를 쓰게 된다. 존 스미스라는 가명의 후원자에게 첫 편지를 쓰며 주디는 대뜸 “왜 좀 더 개성 있는 이름을 고르지 않으셨어요? 말뚝 씨나 기둥 씨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느낌이에요”라고 당돌할 정도로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털어놓는다. 주디는 고아원에서 얼핏 본 후원자의 뒷모습을 기억해 내고 그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대학생활 내내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편지에 담아낸 서간문학이 바로 <키다리 아저씨>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기숙사에서 만난 친구 샐리의 잘생긴 오빠 지미, 그리고 줄리아의 친척인 저비스 펜들턴과 주디와의 만남이다. 일명 ‘저비 도련님’과 사랑과 오해가 싹트는 과정이 지금 보면 순수할 정도로 담백하게 그려져 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