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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들은 키다리 아저씨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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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00533675201_20150619.JPG키다리 아저씨
진 웹스터 지음, 이주령 옮김/시공주니어 펴냄(2003)

19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여자들이라면 한 권쯤은 읽었을 ‘소녀소설’이라는 게 있다. ‘말괄량이 쌍둥이’ 시리즈나 최근 복간된 <다락방의 꽃들>처럼 막 성에 눈뜨기 시작할 무렵 읽었던 책들이다. 친구나 동네 언니와 함께 돌려 읽는, 왠지 엄마에게 들키면 안 될 것 같은 비밀스러운 책들이었다. 주디 블룸의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거릿이에요>나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도 이 무렵 읽는 책들이었다.

<키다리 아저씨>는 1912년 발표되어 백년이 넘도록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인기의 비결 중 하나가 ‘키다리 아저씨’다. 키가 크고, 부자인데다, 친절한 신사 ‘키다리 아저씨’는 숱하게 많은 드라마가 베낀 백마 탄 왕자의 원형이다.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내게도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그런 로망이 생겨난다.

고아원에 살던 주디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그 보답으로 편지를 쓰게 된다. 존 스미스라는 가명의 후원자에게 첫 편지를 쓰며 주디는 대뜸 “왜 좀 더 개성 있는 이름을 고르지 않으셨어요? 말뚝 씨나 기둥 씨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느낌이에요”라고 당돌할 정도로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털어놓는다. 주디는 고아원에서 얼핏 본 후원자의 뒷모습을 기억해 내고 그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대학생활 내내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편지에 담아낸 서간문학이 바로 <키다리 아저씨>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기숙사에서 만난 친구 샐리의 잘생긴 오빠 지미, 그리고 줄리아의 친척인 저비스 펜들턴과 주디와의 만남이다. 일명 ‘저비 도련님’과 사랑과 오해가 싹트는 과정이 지금 보면 순수할 정도로 담백하게 그려져 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하지만 다시 읽어본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의 생활이나 심지어 옷에 대한 동경까지 당시 사고방식과 생활상을 그대로 담고 있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었다. 책 속에 주디가 “<작은 아씨들>을 읽지 않고 자란 학생은 우리 대학에서 저 하나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다시 말해 주디 세대는 19세기 청교도적 가치관을 담은 <작은 아씨들>을 읽고 자란 20세기의 신여성들이었다. 이들은 남자처럼 높은 교육을 받았고 여성의 지위향상과 독립을 위해 애썼다. 별스러운 주디의 생각이나 행동은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달라진 여성상을 반영한 결과다. 여성의 참정권을 지지하고, 자신은 점진적 사회주의자이며,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는 등 시대적 반항정신과 독립심으로 똘똘 뭉친 주디의 당찬 모습은 백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이고 현대적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게 관심을 가져 주는 분이 계시다고 생각하니 가족이 생긴 기분이에요. 이제 저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한 주디처럼 우리는 간절하게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원하며 그 힘으로 자란다. 여자들뿐 아니라 모든 어린이들은 나의 키다리 아저씨를 꿈꾸며 어른이 된다. 초등 5학년부터.

한미화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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