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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위 철사 새들, 환경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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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철사 아티스트’ 김은경 씨


 1437562309_00536291701_20150723.JPG“꼬마야~ 관심 있어? 너도 만들어볼래?”

철사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던 여자는 주변을 맴도는 아이에게 새 사진이 있는 카드 몇장을 내밀었다. 6살 아이는 다양한 새 가운데 어치 사진을 골랐다. 아이는 새 사진을 보며 하얀 종이에 서툴게 새 한 마리를 그렸다. 여자는 아이에게 적당한 길이의 철사를 건넸다. 아이는 자신이 그린 새 모양을 따라 철사를 구부려 작은 새를 만들었다. 여자는 니퍼로 동그랗게 끝마무리를 해서 아이 손에 맞는 반지를 만들어주었다. 자신이 만든 철사 새가 손에 살포시 앉으니 아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해졌다. 아이가 기뻐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여자는 아이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가 자주 먹는 빵 봉지 묶는 끈 있지? 그것을 벗기면 이런 철사가 나와. 그런 철사를 모아 이렇게 예쁜 새를 만들 수 있어. 반지도 만들 수 있고 책갈피도 만들 수 있어. 신기하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달촌갤러리에서 철사 아티스트 김은경(31)씨를 최근 만났다. 이곳에서는 ‘레이철 카슨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주제로 그의 두번째 전시전과 워크숍이 열렸다. 많은 아이들은 워크숍에서 철사로 새를 만들고, 전시전에서 버려질 뻔한 철사로 표현한 다양한 작품을 감상했다. 김씨는 함께 있지만 각자 스마트폰만 보는 사람들을 묘사한 ‘군중’이라는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의 소외되는 사람들을 그렸다. 철사들을 모아 새 둥지를 만들고 폐지를 모아 알을 만들어 넣어 생명의 소중함을 알렸다. “지구는 소중해” “물건을 아껴 쓰고 재활용해야 해”라고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함께 만들고 직접 보여주면서 아이 스스로 환경의 소중함과 재활용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살아 있는 교육이었다. 환경·디자인·교육이 절묘하게 융합된 장이었다.

버려지는 것들 재활용 고민 끝
달력 스프링을 예술로 승화
환경고전 ‘침묵의 봄’ 따서 연작

아이들과 함께 전시회·워크숍
환경·디자인·교육 융합 작업도

“디자인을 전공했나요?” 김씨에게 물었다. “아니요. 전 사회과학을 공부했어요.”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어떻게 철사 아티스트가 됐을까? 30대 초반이지만 그의 인생 여정은 남달랐다. 김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했다. 야간자율학습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고 한다. 자퇴를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해 김씨는 자퇴 뒤 집에서 읽고 싶은 책도 읽고 검정고시 준비도 했다. 그러던 가운데 김씨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린 디자이너 1호’ 윤호섭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명예교수를 알게 됐다. 김씨는 “(윤 교수가) 디자인으로 환경운동을 하신다는 거예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색달랐어요. 정말 흥미로웠죠.”

김은경씨가 지난해 국립생태원에서 열린 에코서머 페스티발 ‘하하하(夏夏夏)’에서 녹색공감교실 열어 아이들과 함께 새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김은경씨가 지난해 국립생태원에서 열린 에코서머 페스티발 ‘하하하(夏夏夏)’에서 녹색공감교실 열어 아이들과 함께 새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 김씨는 무작정 윤 교수를 찾았다. 윤 교수는 주말마다 서울 인사동에서 헌 면티셔츠 위에 친환경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주고 있었다. 김씨는 그를 도왔다. 그러던 중 김씨는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생활 하면서 여행도 다니고 환경 관련 봉사활동도 꾸준히 했다. 2010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윤 교수로부터 자신의 작업장에서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윤 교수를 도우면서 그는 계속 환경디자인에 대한 감각을 길러갔다. 그에게는 버려지는 철사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러다 2012년 여름 무심코 달력을 보다가 동그랗게 감긴 달력 스프링을 펴서 새 모양을 만들었다. 윤 교수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니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다. 녹색여름전에 출품하라”고 했다. 녹색여름전은 매년 개최되는 규모 있는 환경 관련 전시전이다.

김은경 씨 작품 '침묵의 봄'
김은경 씨 작품 '침묵의 봄'
마침 그해는 1962년 출판된 환경 관련 고전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50주년이 된 해였다. 레이철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은 디디티 등 유독성 화학물질의 무분별한 사용에 의한 지구 생태계 파괴를 경고하는 내용의 책이다. 조화롭고 아름다웠던 마을이 오염되어 새들이 사라지고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다는 짧은 우화로 시작된다. 그는 하나둘 늘어난 달력 위의 새들에게 ‘침묵의 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녹색여름전에 작품을 출품한 다음해 레이철 카슨을 기리는 첫 개인전을 서울에서 열었다.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철사 아티스트로 거듭나는 계기였다. 전시 이후 국내 환경 관련 단체로부터 워크숍 요청이 꾸준히 들어왔다. 워크숍이 없으면 그는 틈틈이 아시아와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여행하면서 세계의 아이들에게 철사로 새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한다.

2014년 호주 멜로즈 초등학교에서 김은경씨가 워크숍을 진행하는 모습.
2014년 호주 멜로즈 초등학교에서 김은경씨가 워크숍을 진행하는 모습.
철사로 새 만들기 워크숍에 참가한 아이들 모습.
철사로 새 만들기 워크숍에 참가한 아이들 모습.
“아직도 레이철 카슨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더 사명감이 느껴져요. 철사 작업도 재밌고요. 특히 미래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인 어린이들에게 레이철 카슨의 메시지를 알리고 버려지는 철사를 활용하는 법을 알려주니 더 보람을 느껴요.”

‘그린 디자이너’의 삶에 가슴이 뛰었다던 고등학생이 이제는 또 한명의 ‘그린 디자이너’로 삶을 묵묵히 걷고 있다. 김씨는 오는 8월18일부터 30일까지 서울숲갤러리에서 열리는 2015 녹색여름전에 참가할 예정이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철사 아티스트’ 김은경 씨의 전시장 풍경.
‘철사 아티스트’ 김은경 씨의 전시장 풍경.
‘철사 아티스트’ 김은경 씨의 작품 ‘균형 시리즈’.
‘철사 아티스트’ 김은경 씨의 작품 ‘균형 시리즈’.
‘철사 아티스트’ 김은경 씨의 작품 ‘균형 시리즈’.
‘철사 아티스트’ 김은경 씨의 작품 ‘균형 시리즈’.
‘철사 아티스트’ 김은경 씨의 작품 ‘달력새 둥지’.
‘철사 아티스트’ 김은경 씨의 작품 ‘달력새 둥지’.
‘철사 아티스트’ 김은경 씨의 작품 ‘군중-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
‘철사 아티스트’ 김은경 씨의 작품 ‘군중-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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