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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도 뺄셈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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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교양도 뺄셈이 필요해 / 전정윤


‘2015 교육과정’ 개정 작업이 막바지다. 교양 없이 말하자면, 2018학년도부터 전국 초·중·고에 도입되는 새 교육과정에 특정 과목이나 내용을 밀어넣거나 뺄 수 있는 시간이 한달 정도밖에 안 남았다는 얘기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놓고 교육에 관심 또는 이해관계가 있는 어른들이 맹렬히 팔을 걷어붙였다. 총성과 드잡이만 없을 뿐이지 교양 있는 교육계에서 요란한 한판 승부가 벌어진 모양새다.


뜬금없이 ‘교양’을 들먹인 이유는 교육과정을 취재할 때 교양·소양·상식 등 ‘교양 관련 어휘’를 부쩍 많이 들어서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를 추진하면서 “인문사회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 한자 교육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가령 아이들이 교양이 뭐냐고 묻는다고 치자. 현행 한글 전용 교육과정에선 “학문이나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나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 따위로 설명할 수 있다. 새 교육과정에선 ‘교양’ 옆에 ‘敎養’을 나란히 적게 된다. 뜻풀이에 한자까지 더해져 의미를 풍성하게 설명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미처 말의 본래 뜻에 가닿기 전에 그냥 ‘가르칠 교, 기를 양’쯤으로 피상적인 이해에 머무를 가능성도 높다. 중고생도 아니고 초등학생이 ‘교양’을 ‘교양(敎養)’이라고 배운들, 그 뜻이 더 잘 와닿지는 않을 것 같다.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의 문제를 기사로 썼더니, 한자 교양인들의 항의가 들어왔다. ‘한자 무용론자’라는 오해도 샀으나, 개인적으로 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고교 교과서에서 한자 1800자를 병기하고 있고, 가르치고도 있다. 초등학교도 창의체험, 방과후 수업으로 이미 한자를 가르친다. 왜 꼭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한자를 병기하려 드는가. <마법천자문> 같은 만화로 한자를 즐기던 꼬맹이들이 교과서에 나온다고 또 한자학원, 급수시험에 시달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다.


한자를 비롯해 소프트웨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다 교양이고 필수라는 어른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교양과 필수가 과도하게 많다. 20여년 전만 해도 보통 중학교 입학 직전에 알파벳을 뗐다면, 요즘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영어가 교양이고 입학 뒤엔 필수다. 그 시절 교양이던 피아노는 요즘 필수고, 부잣집 외동딸이나 배우는 줄 알았던 바이올린, 플루트도 꽤 보편적인 교양이 됐다. 어른들이 이것도 필수고 저것도 교양이라는 통에 아이들이 이것저것 배울 게 너무 많아졌다. 어른들의 노동시간만큼 긴 ‘학습노동’은 아이들 몫으로 남았다.


교육과정과 교양을 언급하면서 수학을 빼놓을 수는 없다. 최근 ‘수학 고통 줄이자’ 기사를 쓰느라 20여년 전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처음으로 미적분을 다시 들여다봤다. 미적분이 ‘최적화’에 관한 교과라는 걸 처음 깨닫고 헛배웠다는 생각에 허탈했다. 고교 미적분을 과도한 문제풀이 대신 중요한 기본개념 위주로 ‘최적화’하자는 기사를 썼더니, “교양 없다”도 모자라 “공부를 얼마나 못했으면”이라는 반응이 빗발쳤다. 수학 교양인 대부분은 미적분 문제풀이 테크닉도 교양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어려선 국문과 갈 사람한테 미적분마저 필수고 교양이라는 어른들의 말에 주눅이 들었다. 수학 문제풀이 하느라 뇌 맑던 학창 시절을 다 털리고, 경전과 고전 한 권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는 중년이 되고 나니 알겠다. 배우면 좋은 교양은 너무 많고, 배울 시간은 정말 짧다. 교양도 적성과 능력에 따라 취사선택이 불가피하다. 더구나 모든 아이를 위한 공교육이라면,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과목과 과도한 수준을 강요하기보단 되도록 선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143263415617_20150527.JPG 전정윤 사회정책부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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