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피아노'의 한 장면. 사진 워너비 펀 제공다큐영화 ‘기적의 피아노’
시각 장애인 예은이의 방송 그후
냉혹한 현실 극복 담담히 담아‘쌍천만 영화’로 들떴던 여름 성수기가 지나고, 이제 영화계는 가을 성수기인 ‘추석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이 틈새를 비집고 촉촉한 가을비처럼 관객들의 마음을 적셔줄 작은 힐링 영화 한 편이 찾아온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찾아가는 시각장애 소녀 예은이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기적의 피아노>다.선천적으로 안구가 없어 앞을 보지 못하는 예은이는 3살 때부터 엄마 노랫소리를 듣고 스스로 건반을 치며 피아노를 익혔다. 엄마가 옆집에서 버렸다며 주워온 피아노를 처음 만난 순간, 예은이의 작은 손가락은 춤을 추듯 건반 위를 날아다녔다. 지난 2007년 한 지상파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에 ‘5살짜리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로 소개되며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그 후 예은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기적의 피아노>는 ‘깜짝 관심’이 아닌 ‘평생의 꿈’을 찾아가는 예은이의 예쁘지만 고달픈 삶을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시각장애인 재주꾼 소녀’를 신기방기하게 바라보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정식 피아노 수업을 받아본 적 없는 예은이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안고 피아노 콩쿠르에 도전하지만, 단박에 탈락한다. 오직 귀로 듣고 감각으로 건반을 치는 예은이의 실력은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할지 모르지만,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또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는 턱없이 부족하다. 예은이는 의기소침해진다.밥을 먹다가 뜬금없이 “엄마, ○○이는 눈이 보여요?”라고 묻거나, 학교 미술시간에 찰흙을 빚다가 “나는 하마를 만들 거예요. 눈이 없는 하마”라고 심상하게 말하는 예은이. 그 안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똬리를 틀고 있다. 예은이는 지팡이를 짚고 혼자 집 앞을 나서는 훈련을 유난히 두려워한다. 엄마 아빠는 그런 예은이에게 세상으로 나설 용기를 주고 싶어 한다.<기적의 피아노>는 세상이 두렵고, 아직은 피아노가 두려운 한 소녀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예은이를 단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고 “언니가 최고”라고 말해주는 옆집 동생 현지, 친엄마 친아빠는 아니지만 사랑으로 예은이의 길을 찾아주려는 부모님, 연주는 물론 작곡 능력이 뛰어난 예은이의 재능이 빛을 볼 수 있도록 돕는 피아니스트 이진욱 선생님까지…. 함께 기적을 일궈가는 주변 사람의 모습은 마치 현실엔 없는 동화나라 이야기처럼 따뜻하고 정겹다. 어떤 자극적 양념도 신파조의 타령도 없이 담백하고 솔직한 스토리는 관객을 울리고 웃긴다. 극적 반전은 없지만 꿈을 향한 예은이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절로 박수가 쏟아진다.영화 중간 중간에 흐르는 예은이의 자작곡도 귀를 사로잡는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은 오선지 없이도 상쾌하고 발랄한 한 편의 즉흥곡이 되고,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즐거운 설렘도 건반 위를 흐르는 아름다운 세레나데가 된다. 마지막 5분여 동안 이진욱 피아니스트와 예은이가 함께 만든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스크린을 타고 흐를 땐 감동의 눈물도 함께 흐를 수밖에 없다.영화는 3년간의 촬영, 2년간의 후반작업을 거쳐 5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예은이는 14살이 됐다. “가장 뛰어난 사람은 고통을 통해 환희를 차지한다”는 베토벤의 말처럼, 중학생이 된 예은이는 “이제 지나간 고통과 다가올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전석매진을 기록했으며,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이 재능기부로 내레이션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주인공이 시각장애인임에도 이 영화를 ‘배리어프리 버전’(음성 해설이나 자막 서비스가 제공되는 형태)으로는 만날 수 없다는 점이다. 3일 개봉.유선희 기자
'기적의 피아노'의 한 장면. 사진 워너비 펀 제공
시각 장애인 예은이의 방송 그후
냉혹한 현실 극복 담담히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