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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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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논장 제공
그림 논장 제공
동물원에 갇힌 나를 동물들이 보러 온다면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 동물원
앤서니 브라운 지음, 장미란 옮김/논장 펴냄(2002)

자연을 보여주려고 우리는 아이들을 동물원에 데려간다. 하지만 정작 동물원에는 자연이 없다. 야생의 위험을 걷어내고 통제된 자연은 자연이 아니다. 인공일 뿐이다. 동물원은 아이들에게 야생을 보여주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야생에 대한 인간의 통제를 보여주는 곳이다. 우리 인간이 저 무서운 동물들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고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어 인간으로서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갇혀 있는 동물들을 어떤 아이는 불쌍하게 여기고, 어떤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약을 올린다. 그 어느 쪽이든 야생동물과 인간 중 누가 위에 있는 존재인지 확인한다는 점에서 두 가지 행동은 다르지만 같다.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은 문제작이다. 아이들은 제목을 보고는 사납지만 멋진 사자나 호랑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토끼와 펭귄을 기대한다. 하지만 채 몇 장도 넘기지 않아 기대는 무너진다. 동물원에 가는 길은 교통지옥이고 막히는 차에서 던지는 아빠의 농담은 최악이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아빠는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깎느라 다투고 겨우 들어가서 본 코끼리 우리는 지독한 냄새가 난다. 동물들의 움직임은 한없이 지루해 불쌍하기까지 하다.

이런 동물들이 재미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주인공 ‘나’와 동생 해리는 연방 장난을 친다. 결국 아빠에게 혼이 나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가장 즐거운 시간은 밥 먹는 시간이다. 집에서는 먹지 못하는 패스트푸드를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 선물가게에서 산 원숭이 모자 역시 동물원을 벗어나는 순간 더는 쓰고 다니기 어렵겠지만 마음에 든다. 동물을 보러 왔지만 동물은 재밌지 않다.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외식과 쇼핑이 최고다. 어차피 인공적인 것, 그러니 다른 곳과 다를 이유가 없다.

그림책을 넘기며 아이들은 점점 우울해진다. ‘노잼’ 농담을 반복하며 혼자만 즐거운 아빠는 한심하고, 엄마는 우울하다. 동물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하고 처량하다. 이런 동물원을 기대하고 책을 연 것은 아니다. 아빠도 엄마도 자기 세계에 갇혀 있고 동물들도 자기 세계에 있다. 서로 조금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같은 자리에 모여 있지만 같이하려는 마음도 없다.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은 이런 외면에 힘들어한다. 버림받은 느낌에 괴로워하며 마치 자신도 동물원에 갇힌 동물같이 느낀다. 가만 돌이켜보면 이것이 현실이지만 냉정한 현실은 역시 견디기 어렵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이 책은 아이에게 답을 주는 그림책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그림책의 말미에 엄마는 말한다.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곳이 아닌 것 같아. 사람들을 위한 곳이지.” 엄마의 말을 들은 주인공 ‘나’는 이상한 꿈을 꾼다. 자신이 동물원에 갇힌 꿈이다.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도 주인공의 꿈을 보며 동물들의 입장에 서 본다. 구경하는 내가 아닌 갇힌 동물의 처지에 감정을 이입해본다. 이렇게 동물들을 가둬주는 게 옳은 것인가? 그리고 부모인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다른 생각을 한다.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곳이 아니지. 그런데 이 사회도 인간을 위한 곳은 아니지 않을까? 그럼 과연 누구를 위한 곳일까?”

서천석 소아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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