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파란자전거 제공
1950년대 협재 해녀들
독도로 가서 미역 땄단다
박옥랑 할머니의 실화
독도 바다야 기억해주길
독도로 가서 미역 땄단다
박옥랑 할머니의 실화
독도 바다야 기억해주길
미역 따러 독도 가요!
허영선 글, 김금숙 그림/파란자전거1만1900원“호오이~.” “호오잇.” “호오이.”물속에서 숨을 참았다가 물 밖에 나오면 새어나오는 이 소리. 어린 옥랑은 엄마의 숨비 소리를 들으며 숨비를 배웠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는 걸 숨비라 했다. 물에 들어가 미역도 따고 전복 따고 성게 따고 소라도 따는 걸 물질이라 했다. 어린 아이가 물질을 하는 걸 ‘애기 물질’이라 했다.“이레 숨비라, 저레 숨비라.” 엉덩이 삐죽삐죽 애기 물질 배울 때 엄마는 말했다. “옥랑아, 물질 배워야 먹고산다. 숨 꾹 참고 바다 돌멩이, 모래 한줌이라도 건져 봐라.” 제주 해녀들은 본디 ‘녀’(잠녀)라 불렸다. 물에 잠겨 물질을 한다 하여 잠녀라 했다.동해바다에 오뚝 솟은 ‘국토의 막내’ 독도. 남해바다에 우뚝하니 설문대할망이 빚은 ‘국토의 제일 섬’ 제주. 저 새파란 독도 바다는 기억하고 있을까? 제주의 잠녀들이 저 먼 1950년대에 독도로 물질하러 왔다는 걸?<애기해녀 옥랑이 미역 따러 독도 가요!>는 ‘애기 잠녀’에서 솜털 보송보송 처녀로 자라 콩콩 가슴 뛰는 첫 바깥 물질을 독도로 나갔던 박옥랑의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았다. 제주 시인 허영선이 글을 쓰고 만화 <지슬>의 김금숙이 그림을 그렸다. 6·25전쟁과 4·3항쟁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 전 국토가 배고팠던 1953년, 제주 협재 잠녀 여섯명이 독도로 첫 원정 물질을 갔다. 독도는 “물 반 미역 반”, 제주 바다를 닮은 그 옥빛 물속엔 전복이 “나무열매 같이 다랑다랑 달려” 있더랬다. 아니 “쇠똥같이 다닥다닥 박혀” 있더랬다.우리의 주인공 옥랑은 벌써 엄마가 그리운데, 씨억씨억한 언니들은 고향 두고 온 아기를 마음에 쟁여둔 채 “미역 천지구나” 하며 바다 밭으로 뛰어들었더랬다.“이어싸나 이어싸나/ 바람일랑 밥으로 먹고/ 구름으로 똥을 싸고…./ 물결일랑 집안을 삼아/ 설운 어머니 떼어 두고/ 설운 아버지 떼어 두고/ 부모 동생 이별하고…./ 쳐라 쳐라.”아직은 여린 옥랑의 마음을 독도의 강치 떼가 어루만졌다고 한다. “울라탕울라탕.” 독도에 경비소를 지으려 통나무를 잔뜩 싣고 온 배가 산더미 파도에 뒤집혀 선원들이 발만 동동 구를 때도 제주 해녀들이 “풍덩” 뛰어들어 둥둥 뜬 통나무를 뭍으로 날랐더랬다.소문은 금세 화악 퍼져 너도나도 독도로 물질을 나섰더랬다. 3월 초에 들어가 두 달 남짓 5월까지, 그렇게 20년 남짓 “물개처럼 훨훨 그 바다를 누볐”다고 한다. 제주 잠녀들에게 독도는 제2의 고향 바다였더랬다. 제주 시인의 바람처럼, 저 독도 바다는 잊지 않으리라, 그 시절 제주 해녀들의 숨비 소리를. 이젠 할머니 된 ‘애기 해녀 옥랑’이 지금은 없는 강치 떼를 가슴에 새겼듯이. 4살부터허미경 선임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