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행위예술 ‘댄싱마마전’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작품 모아
창문 훔쳐보는 남성 마네킹 머리
할매·아지매들의 요상스런 막춤
거북스럽지 않게 메시지 담아
정금형씨의 영상물 ‘녹화, 정지, 재생’은 남성 마네킹의 머리통을 올려놓은 카메라 삼각대를 동물처럼 이리저리 이동시키는 영상을 통해 남성의 관음적 시선을 색다르게 물화시킨다. 사진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요즘 국내외 미술판에서는 퍼포먼스, 이른바 행위예술이 대세다. 1~2년 전부터 꽤 규모를 키운 기획전이나 개인전 개막 현장에는 전시 내용을 상징하는 퍼포먼스 실연이 딸림 행사로 감초처럼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건용, 성능경, 김구림씨 등 1960~70년대 왕년의 전위 행위예술가들도 새롭게 재조명받으면서 이들의 개인전과 기획전, 행위예술 관련 행사도 부쩍 늘었다. 서구의 경우 세계 최대의 국제 미술장터인 스위스 바젤아트페어가 지난해 현대미술 거장들의 비상업적 퍼포먼스아트를 수십개의 독방이 있는 특별한 건축공간에서 집중조명해 화제를 모았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비롯한 행위예술 거장들은 세계 곳곳의 명문 미술관을 순회하면서 관객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한 치유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다양한 작업으로 호평받고 있다.콜레트 어반의 사진작품인 ‘부르려 하는 노래, 들려주려는 이야기, 밝히려는 의미’. 과장되고 왜곡된 인체 이미지를 통해 여성성의 질곡을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사진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한물간 장르로 여겨졌던 퍼포먼스가 다시 뜨는 이유는 표현 방식이 어느 매체보다도 유연하고 효율적이어서 세계화 시대의 예술 흐름에 맞춤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몸으로 세상과 일상의 온갖 다양한 메시지를 단번에 직설적, 직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서도 강렬하고 센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크다. 결국 관건은 몸에 어떤 개념과 이미지를 담아내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 미술관에서는 이런 퍼포먼스의 새로운 트렌드를 새삼 음미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국내외 페미니즘(여성주의) 예술가들의 발랄하면서도 기발한 퍼포먼스 영상들을 모아 보여주는 ‘댄싱 마마’전이다.여성주의 퍼포먼스 하면 느껴지는 ‘거북스러운’ 선입견과 달리, 전시는 일단 재미있고 신선하다. 가짜 대를 붙여 억지로 죽 늘어뜨린 팔로 힘겹게 공을 굴리고 얼굴보다 큰 안경을 쓰고 허우적거리는 여성들의 사진과 영상(캐나다 작가 콜레트 어번)이 들머리에 들어온다. 안쪽 공간에는 50대 아줌마인 작가가 치마를 입은 채 서울 연희동 주택가 옥상 사이를 펄쩍펄쩍 뛰어넘으며 내달리는 풍경(홍현숙)이 신나게 펼쳐진다. 요즘 프랑스 파리 공연으로 대박난 춤꾼 안은미씨와 그의 동료들이 시골 곳곳의 ‘할매’, ‘아지매’들의 몸에서 우러나온 갖가지 요상한 포즈의 막춤을 따라 추면서 어우러지는 인류학적 영상은 쉬이 물리지 않는다. 독기와 재치를 겸비한 춤꾼 출신 작가 정금형씨는 ‘사물섹스’라는 기상천외한 개념을 들고나온다. 남성 마네킹의 머리통을 올려놓은 카메라 삼각대가 움직이면서 창문 안을 엿보고 급기야 그 안에 들어와 작가와 가상 성행위를 하는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남성적 속성을 연상시키는 기계나 사물을 대상으로 남성적 관음증과 폭력적인 마초이즘을 투영시키고 이를 사물성으로 재해석하는 상상력의 힘이 넘치는 수작이다. 터키 작가 인지 에비네르는 봉지를 뒤집어쓰고 떨고 있는 여성들, 양을 안은 채 불안한 표정으로 제복 입은 경찰과 용접공 등을 스쳐지나가는 젊은 여성 모습을 움직이는 파노라마로 보여줌으로써 초현실적이면서도 터키 여성의 사회적 현실이 배어든 영상을 만들어냈다. 잠수함 속의 토끼처럼 사회의 관용성과 개방성을 짐작하는 잣대가 되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새 조류들을 느껴볼 수 있는 영상마당이다. 12월5일까지. (02)3475-1986.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