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미국의 역사수업은 단순히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외우기보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난 1월 미국 실리콘밸리의 발도르프학교 그린우드에서 르네상스 역사 수업이 한창이다. 토론형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사진의 노트처럼 자신이 직접 손으로 쓰고 그린 보고서를 만들게 된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독일·미국의 역사교육 사례
“민주주의는 성숙한 사람들을 요구한다. 성년됨의 구체적 실현은 교육으로 하여금 반박하는 교육, 저항하는 교육이 되도록 만드는 곳에서 이루어진다.”오늘날 독일 역사 교육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독일의 지성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1966년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에서 한 말이다.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교육은 자기가 배운 것에 대해 비판하고 심지어 저항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라는 뜻이다.국정교과서 논쟁 뜨거운 가운데
다른나라 역사교육서 시사점 찾을 때
독일 어릴 때부터 홀로코스트 교육해
나치시기 비판적으로 조망할 기회 줘
미국 여러 교재 활용해 토론식 수업‘너라면 어땠겠니?’ 생각 유도 질문 던져
수업 통해 역사 해석 다양성 알아가국정화 교과서 논란이 뜨겁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학계는 물론 교사나 학부모, 청소년까지 국정화 반대에 나서고 있다. 현재 국정교과서가 좌·우파의 이념 논쟁으로 치우치고 있지만 이를 계기로 역사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외국에서는 역사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살펴봤다.‘사고력 기르기’에 방점 찍은 수업“독일 학생들은 나치 범죄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국가 차원에서 전반적 역사 인식을 갖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다.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해 잘못한 걸 인정하고 앞으로는 되풀이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었다.”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한대헌(32)씨의 말이다.독일은 홀로코스트 교육을 어릴 적부터 하며, 고등과정으로 갈수록 이를 비판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룬다. 껄끄러운 사실을 감추거나 왜곡하려는 우리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독일의 역사교육>(최호근, 대교출판)을 보면 실제 유치원부터 홀로코스트 교육을 하는 곳도 있다. 이 책을 쓴 저자에 따르면, 제도적으로 시행하는 건 아니고 일부 유치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역사교육을 하지만 밀도 깊고 비판적인 내용은 아니다.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분량이 많아지고 나치 시대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가르친다. 특히 고등학교 현대사 과목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만 20시간 이상을 배운다. 구체적인 내용은 나치 범죄와 그에 대한 책임, 홀로코스트 등이다.중·고등학교 교육과정 내에 ‘나치 시기를 비판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가르치고 국민들 사이 인종과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존과 이해가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연방주별로 교육지침은 다르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각 주의 교육장관협의회를 통해 확고하게 합의가 돼 있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바뀐 예전 강제수용소나 나치 저항운동을 했던 역사적 유적을 학교 차원에서 방문하는 것도 적극 권장하고 있다.이들이 이 교육을 진행하는 이유는 아우슈비츠 같은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이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생활 공존’을 강조하는 내용의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이 나라의 역사교육은 지식 전달보다 사고력을 키우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생이 교과서의 내용을 미리 읽어온 뒤 교사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수업한다. 교과서에 있는 정보를 정확히 파악한 뒤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 해석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식이다.가령 12, 13살 정도 아이들 수업의 경우 교사가 “지금 생활과 그때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져 교과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한 뒤, “지금과 그때를 비교하니 어느 쪽이 좋아?”라고 취향을 묻는 데서 시작한다. 아이들은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쪽을 선택한다. “옛날이 좋다”고 하는 학생에게는 이유를 묻는다. 학생이 “학교에 안 나가도 되니까 매일 놀 수 있다”고 답하면 교사는 “그렇지만 노예는 매일 놀 수 없잖니. 매일 놀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식으로 학생의 사고 수준에 맞춰 질문한다.이런 대화를 통해 학생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조금씩 키워가고, 동시에 사건·사물에 대한 여러 관점을 배워갈 수 있다. 고등학교 상급생이 되면, 학기 초 교사가 주제를 제시한다. 학생들은 ‘나치시대의 외교’나 ‘팔레스타인 문제’ 등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해 공부할 수 있다.해당 내용을 가르치는 방식은 교사의 재량에 달려 있다. 교과서를 사용하는 경우 역사적 사실이나 연호, 인명 등을 외우기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하나의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본인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갖는 것을 중요시한다. 주제별로 만들어진 자료집이 많아 교과서 대신 그 가운데 하나를 지정하거나 자료를 복사해 나눠준 뒤 토론을 벌인다. 국가 차원에서 반드시 교과서를 사용하라고 강제하지 않는다.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외우는 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에는 ‘정답’도, ‘유일한 진실’도 없다.<독일의 역사교육>의 저자는 “역사수업을 통해 얻는 건 두 가지, ‘내용 지식’과 ‘과정 지식’”이라며 “독일은 내용 지식보다 과정 지식을 훈련하는 데 초점이 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지식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알아가면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는 과정 자체를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독일 역사교육의 핵심은 각 개인이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스스로 파악해 행동하고 책임질 수 있는 성년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각자 생각하고 그 근거를 찾아 결론을 내도록 훈련한다.”그러면서 그는 “국정교과서처럼 단일교과서를 만든다는 건 여러 사람들이 공감하는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는 것인데 이건 상상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불명예스런 사건도 사실적으로 다뤄“노예제도나 인종차별,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 대공황 등 정부나 대통령의 실책, 케네디나 빌 클리턴의 사생활도 다 다룬다.”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이아무개군. 현재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애너하임의 한 고등학교 12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는 미국사를 배우는 중인데 수업에 참여하면서 적잖이 놀랐다. 미국의 입장에서 민감한 내용이나 부정적 내용도 비교적 사실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백인 교사가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운 ‘케이케이케이(KKK) 집단’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종차별의 나쁜 점을 설명한다. 현재도 흑인을 미워하고 납치해 투표를 못하게 막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이라크 전쟁 참전에 대해서 미국의 명예를 위해 싸운 것이 옳았는지, 현실적으로는 미국 경제가 나빠졌으니 결국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등 팀을 나눠 토론했다.”이군은 “미국은 영어·수학·역사·과학이 주요과목일 정도로 역사교육을 높이 평가한다”며 “과거의 진실을 거울삼아 보다 발전된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역사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고등학교는 9~12학년이고 미국사·유럽사·세계사 등 한 가지 역사 과목을 일 년씩 배운다. 일주일에 일곱차례 45분 수업을 진행한다. 그가 배우는 교과서는 A4 크기로 927쪽이며 모든 쪽에 그래프나 사진·그림·도표가 있다.미국의 경우 주마다 교육과정의 내용이나 교과서 집필·선정 방식이 다르다. 검정제나 전국 공통의 지도요령도 없다. 각 주 또는 각 학구의 교육위원회가 교육과정 내용을 담은 ‘지도요령’을 가지고 있다. 교과서채택위원회는 교육위원이 선발한 현직 교사와 시민 대표로 꾸려진다. 위원회가 각 과목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교과서 견본을 일반에게 공개한 뒤 공청회를 거쳐 선정한다. 교과서 선정은 3~5년마다 실시한다.이런 제도 때문에 교과서 회사는 전국적으로 교과서가 최대한 많이 채택되기 위해 내용을 다양하게 구성한다. 각 주의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중립성’을 추구하는 경향도 있다. 대부분의 역사교과서는 식민지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을 다루며, A4 정도 크기로 1000쪽가량 된다.내용상으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나 평가를 유도하는 질문이 많다. 학생 스스로 역사적 사실을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하면서 학생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교과서 말고도 자료를 다양하게 활용하며 토론식 수업을 많이 한다.예를 들어, 교과서에서 베트남전쟁은 보통 30~60쪽 정도로 다룬다. 정부의 공식 견해에 따라 ‘미국은 공산주의자의 침략으로부터 베트남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이에 더해 신문에 폭로된 국방성의 극비문서·반전운동·선미마을 사건(밀라이 학살, 1968년 미국에 의해 베트남의 한 마을 주민 전원이 몰살당한 사건) 등을 다룬 교과서도 있다.마지막에는 ‘베트남인의 입장에서 이 전쟁을 생각해보자. 만일 당신이 이 시기에 십대였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통령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반전 여론에도 불구하고 존슨이 전쟁을 계속한 것은 옳은 판단이었을까? 닉슨의 판단은 옳았을까?’ 등 토론을 위한 문제제기가 나온다.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임종규(25)씨는 “미리 책을 읽어 오면 수업시간에 교사가 설명을 한 뒤 우리에게 질문을 했다”며 “교과서가 백과사전처럼 두껍고 읽을거리가 많아서 공부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특히 에세이를 많이 썼다. 가령, ‘남북전쟁과 노예전쟁의 상관성이 뭔지 써라’라는 주제가 나왔는데 자료를 찾고 글을 정리하면서 나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 역사에는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른나라 역사교육서 시사점 찾을 때
독일 어릴 때부터 홀로코스트 교육해
나치시기 비판적으로 조망할 기회 줘
미국 여러 교재 활용해 토론식 수업‘너라면 어땠겠니?’ 생각 유도 질문 던져
수업 통해 역사 해석 다양성 알아가국정화 교과서 논란이 뜨겁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학계는 물론 교사나 학부모, 청소년까지 국정화 반대에 나서고 있다. 현재 국정교과서가 좌·우파의 이념 논쟁으로 치우치고 있지만 이를 계기로 역사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외국에서는 역사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살펴봤다.‘사고력 기르기’에 방점 찍은 수업“독일 학생들은 나치 범죄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국가 차원에서 전반적 역사 인식을 갖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다.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해 잘못한 걸 인정하고 앞으로는 되풀이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었다.”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한대헌(32)씨의 말이다.독일은 홀로코스트 교육을 어릴 적부터 하며, 고등과정으로 갈수록 이를 비판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룬다. 껄끄러운 사실을 감추거나 왜곡하려는 우리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독일의 역사교육>(최호근, 대교출판)을 보면 실제 유치원부터 홀로코스트 교육을 하는 곳도 있다. 이 책을 쓴 저자에 따르면, 제도적으로 시행하는 건 아니고 일부 유치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역사교육을 하지만 밀도 깊고 비판적인 내용은 아니다.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분량이 많아지고 나치 시대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가르친다. 특히 고등학교 현대사 과목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만 20시간 이상을 배운다. 구체적인 내용은 나치 범죄와 그에 대한 책임, 홀로코스트 등이다.중·고등학교 교육과정 내에 ‘나치 시기를 비판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가르치고 국민들 사이 인종과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존과 이해가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연방주별로 교육지침은 다르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각 주의 교육장관협의회를 통해 확고하게 합의가 돼 있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바뀐 예전 강제수용소나 나치 저항운동을 했던 역사적 유적을 학교 차원에서 방문하는 것도 적극 권장하고 있다.이들이 이 교육을 진행하는 이유는 아우슈비츠 같은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이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생활 공존’을 강조하는 내용의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이 나라의 역사교육은 지식 전달보다 사고력을 키우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생이 교과서의 내용을 미리 읽어온 뒤 교사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수업한다. 교과서에 있는 정보를 정확히 파악한 뒤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 해석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식이다.가령 12, 13살 정도 아이들 수업의 경우 교사가 “지금 생활과 그때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져 교과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한 뒤, “지금과 그때를 비교하니 어느 쪽이 좋아?”라고 취향을 묻는 데서 시작한다. 아이들은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쪽을 선택한다. “옛날이 좋다”고 하는 학생에게는 이유를 묻는다. 학생이 “학교에 안 나가도 되니까 매일 놀 수 있다”고 답하면 교사는 “그렇지만 노예는 매일 놀 수 없잖니. 매일 놀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식으로 학생의 사고 수준에 맞춰 질문한다.이런 대화를 통해 학생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조금씩 키워가고, 동시에 사건·사물에 대한 여러 관점을 배워갈 수 있다. 고등학교 상급생이 되면, 학기 초 교사가 주제를 제시한다. 학생들은 ‘나치시대의 외교’나 ‘팔레스타인 문제’ 등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해 공부할 수 있다.해당 내용을 가르치는 방식은 교사의 재량에 달려 있다. 교과서를 사용하는 경우 역사적 사실이나 연호, 인명 등을 외우기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하나의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본인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갖는 것을 중요시한다. 주제별로 만들어진 자료집이 많아 교과서 대신 그 가운데 하나를 지정하거나 자료를 복사해 나눠준 뒤 토론을 벌인다. 국가 차원에서 반드시 교과서를 사용하라고 강제하지 않는다.중요한 것은 단순히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외우는 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에는 ‘정답’도, ‘유일한 진실’도 없다.<독일의 역사교육>의 저자는 “역사수업을 통해 얻는 건 두 가지, ‘내용 지식’과 ‘과정 지식’”이라며 “독일은 내용 지식보다 과정 지식을 훈련하는 데 초점이 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지식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알아가면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는 과정 자체를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독일 역사교육의 핵심은 각 개인이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스스로 파악해 행동하고 책임질 수 있는 성년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각자 생각하고 그 근거를 찾아 결론을 내도록 훈련한다.”그러면서 그는 “국정교과서처럼 단일교과서를 만든다는 건 여러 사람들이 공감하는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는 것인데 이건 상상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불명예스런 사건도 사실적으로 다뤄“노예제도나 인종차별,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 대공황 등 정부나 대통령의 실책, 케네디나 빌 클리턴의 사생활도 다 다룬다.”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이아무개군. 현재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애너하임의 한 고등학교 12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는 미국사를 배우는 중인데 수업에 참여하면서 적잖이 놀랐다. 미국의 입장에서 민감한 내용이나 부정적 내용도 비교적 사실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백인 교사가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운 ‘케이케이케이(KKK) 집단’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종차별의 나쁜 점을 설명한다. 현재도 흑인을 미워하고 납치해 투표를 못하게 막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이라크 전쟁 참전에 대해서 미국의 명예를 위해 싸운 것이 옳았는지, 현실적으로는 미국 경제가 나빠졌으니 결국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등 팀을 나눠 토론했다.”이군은 “미국은 영어·수학·역사·과학이 주요과목일 정도로 역사교육을 높이 평가한다”며 “과거의 진실을 거울삼아 보다 발전된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역사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고등학교는 9~12학년이고 미국사·유럽사·세계사 등 한 가지 역사 과목을 일 년씩 배운다. 일주일에 일곱차례 45분 수업을 진행한다. 그가 배우는 교과서는 A4 크기로 927쪽이며 모든 쪽에 그래프나 사진·그림·도표가 있다.미국의 경우 주마다 교육과정의 내용이나 교과서 집필·선정 방식이 다르다. 검정제나 전국 공통의 지도요령도 없다. 각 주 또는 각 학구의 교육위원회가 교육과정 내용을 담은 ‘지도요령’을 가지고 있다. 교과서채택위원회는 교육위원이 선발한 현직 교사와 시민 대표로 꾸려진다. 위원회가 각 과목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교과서 견본을 일반에게 공개한 뒤 공청회를 거쳐 선정한다. 교과서 선정은 3~5년마다 실시한다.이런 제도 때문에 교과서 회사는 전국적으로 교과서가 최대한 많이 채택되기 위해 내용을 다양하게 구성한다. 각 주의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중립성’을 추구하는 경향도 있다. 대부분의 역사교과서는 식민지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을 다루며, A4 정도 크기로 1000쪽가량 된다.내용상으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나 평가를 유도하는 질문이 많다. 학생 스스로 역사적 사실을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하면서 학생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교과서 말고도 자료를 다양하게 활용하며 토론식 수업을 많이 한다.예를 들어, 교과서에서 베트남전쟁은 보통 30~60쪽 정도로 다룬다. 정부의 공식 견해에 따라 ‘미국은 공산주의자의 침략으로부터 베트남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이에 더해 신문에 폭로된 국방성의 극비문서·반전운동·선미마을 사건(밀라이 학살, 1968년 미국에 의해 베트남의 한 마을 주민 전원이 몰살당한 사건) 등을 다룬 교과서도 있다.마지막에는 ‘베트남인의 입장에서 이 전쟁을 생각해보자. 만일 당신이 이 시기에 십대였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통령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반전 여론에도 불구하고 존슨이 전쟁을 계속한 것은 옳은 판단이었을까? 닉슨의 판단은 옳았을까?’ 등 토론을 위한 문제제기가 나온다.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임종규(25)씨는 “미리 책을 읽어 오면 수업시간에 교사가 설명을 한 뒤 우리에게 질문을 했다”며 “교과서가 백과사전처럼 두껍고 읽을거리가 많아서 공부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특히 에세이를 많이 썼다. 가령, ‘남북전쟁과 노예전쟁의 상관성이 뭔지 써라’라는 주제가 나왔는데 자료를 찾고 글을 정리하면서 나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 역사에는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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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교육 사례를 연구해온 한 대학의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주별로 교육과정 내용 기준이 비교적 자세하게 돼 있지만 각각 달라서 하나로 일반화하긴 힘들다”며 “자료 개발이 활발해서 교과서 외 다른 자료도 많이 쓴다. 내용상으로 교사가 어떤 의견을 가질 수는 있지만 본인의 정치적 견해를 일방적으로 가르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미국 수정헌법 1조에 ‘언론의 자유’가 나오기 때문에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참고- <세계의 역사교과서>(고시다 다카시, 이시와타 노부오 지음, 작가정신) <독일의 역사교육>(최호근 지음, 대교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