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진행된 놀이 강연. 사진 권오진.
작년 11월 20일, 중국어 독학 1주년 기념으로 아내와 케익을 잘랐다. 그리고 이제 곧 2주년이 다가온다. 그동안 매일 중국어를 10분 이상 공부를 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했다. 올 6월 경에 도서관에서 중국어 코너에 들렀다. 그동안 늘 초급 중국어를 보다가 처음으로 중급 중국어 책을 펼쳤다. 거기에는 한글이 한 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술술 막힘이 없이 읽힌다. 그런 자신을 보고 내가 더 놀랬다. 요즘은 내가 중국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중국어를 공부한다. 이런 남편을 보고 아내는 ‘정말 대단해요’라고 극 존칭으로 표현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자기주도적인 공부법’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으며 또한 내가 조금만 변해도 공부의 이치를 알 수 있고 터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을 알아보자.
2013년 11월 17일, 중국 베이징에서 가서 2회의 놀이에 대한 강의를 하고 왔다. 물론 통역사가 있어서 불편함은 없었지만 답답하기만 했다. 그동안 한자를 많이 안다고 자부했지만 중국어로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럼에도 소득이 있다면 ‘중국어를 해볼까?’라는 동기부여가 생겼다.
<2013년 11월 20일> 중국어를 시작하다
중국에 다녀와서 중국어를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중국 간체자가 문제임을 간파하고 간체자 천자문을 구입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자를 알고 있으니 이것은 오히려 더 헷갈렸다. 눈으로 몇 번을 본다고 결코 외워지지 않았으며 4성은 더욱 헷갈렸다. 하지만 독학을 하면서 그 당시에 4가지 원칙을 세웠다.
1. 문법은 무시하고 회화 공부를 한다.
2. 매일 10~20분을 한다.
3. 중국어 강의가 목표다.
4. 돈을 들이지 않고 한다
<2개월째> 길이 없는 길을 떠나다
먼저 인터넷에서 중국어 관련 동영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따라서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도 훌륭한 방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주 쉬운 초급 중국어 문장을 반복적으로 듣고 따라서 말을 했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에서만 해야 하는 제약이 생겼다. 그래서 몇 개의 동영상을 핸드폰으로 녹화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들어도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식하게 매일 계속 들었다. 때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CD로 듣기도 했다. 들을 때는 알 것 같지만 금방 까먹었다. 언어학자가 말하길, 한 단어를 말하기 위하여 1,000번을 들어야 한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3개월째> 길위에서 길을 잃다. 그러나 씨앗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40개의 상황, 150개의 문장을 반복적으로 듣고 크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귀에 들리는 중국어 속도는 100%였는데 중국인이 아주 천천히 말하는 속도였다. 하도 반복을 해서 들으니 드디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내가 중국어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계속 남았다. 사실, 매일 공부하면서도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이 시기가 바로 중국어에 대한 씨앗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중국어 공부에 대한 동력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식물이 번창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20~30미터의 나무도 사실은 아주 작은 씨앗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 작은 씨앗 속에 이미 커다란 나무가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대상에 대한 씨앗이 있어야 한다. 물론 씨앗을 많이 뿌리면 대부분 싹이 나지만 더러 죽는 것도 있다.
<5개월째> 중국에 강의를 가다. 씨앗이 확실히 만들어졌다
2014년 4월에 중국 5개 도시에 강의를 다녀왔다. 베이징에서 청두까지 갈 때는 3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물론 이 때도 통역사가 통역을 해주었다. 담당자와 간단한 중국어는 말을 하고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긴 문장으로 말을 할 때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시장에 가서 이 것, 저 것을 물어보면서 중국의 풍물도 알고, 중국어 복습도 했다. 많은 중국인을 만나면서 내가 변한 것은 ‘중국어를 왜 할까?’가 아니라 중국어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변했다. 그런데 사실 목적도 없었다. 내가 중국에 자주 온다는 보장도 없으며, 중국어를 꼭 배워야 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일단 시작을 했으니 끝장을 봐야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호텔에서, 시장에서 매일 중국어를 했다.
<6개월째> 씨앗에서 싹이 나다
중국에 다녀오니 확실히 동기부여가 되었는지 매일 하는 중국어가 지겹지 않다. 그리고 듣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100%의 속도에서 150%의 속도로 빠르게 들었다. 그런데 대부분 귀에서 듣고 이해를 했다. 4성에 대한 구분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똑 같은 내용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또한 80개의 상황, 300문장으로 확대해서 폰에 녹화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매일 듣고 말했다. 이 때가 가장 열심히 공부를 한 시기인 듯 하다. 강의를 갈 때 운전을 하면서 들었고, 전철, 휴게소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9개월째> 잎이 자라다
이 때 쯤, 중국어 공부 영역을 넓혔다. 이젠 150개의 상황, 450개의 문장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어 노래를 들으면 공부가 될 것 같아서 중국노래 CD를 구입했다. 그런데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빨리 포기하고 그냥 듣고 말하기를 반복했다. 이 때는 본문을 보지 않고 그냥 듣고 말을 했다. 하지만 내용 중에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많이 있었다. 그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새로운 호기심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12개월째> 줄기가 자라기 시작하다
이제 중국어를 180개의 상황으로 녹화를 했으며 속도 역시 180%로 빠르게 했다. 이 속도는 중국인이 빨리 말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아들에게 부탁하여 중국 앱에 있는 동요 50개를 4,900원에 구입하여 폰에 설치했다. 중국어도 매일 들으면 사실 좀 지겹다. 그런데 중국 동요로 노래를 가끔 들으니 한결 귀가 편해졌다. 요즘은 10곡 정도의 중국 동요를 부를 수가 있다. 노랫말에서 다양한 중국어 표현을 배울 수가 있어서 좋았다.
<15개월째> 줄기가 무럭무럭 자라다
이제 중국어가 어렵다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 때는 주로 눈으로 공부를 했다. 아내의 옥상정원에 가면 국화, 코스모스, 튤립, 석류나무, 해바라기 등 다양한 꽃들이 있다. 그러면 꽃이나 나무를 보고 즉시 중국어를 공부했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 사람들을 쳐다본다. 그러면 구두, 귀걸이, 목걸이, 외투, 가방, 짧은 가방, 동전 지갑 등이 보인다. 즉시 중얼거리며 중국어로 말하곤 했다. 또한 중국어와 한글의 연관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한글의 많은 단어들이 한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역사적,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어 4성에 대해서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초기에는 4성을 외우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는데 사실, 4성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말을 많이 해서 몸에 각인이 되어야 했다. 여기에서 한글의 위대함을 더욱 알게 되었다. 사실, 한글로서 거의 모든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만 중국어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4성이다. 같은 단어이지만 읽는 음이 다르기도 했다. 은행의 행(行)은 중국어로 항으로 읽지만 ‘가자’라는 말을 할 때의 행(行)은 항이 아니라 씽으로 읽는다. 어째든 1년 넘게 하다보니 중국어의 속성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18개월째> 꽃대가 보이기 시작하다
역시 외국어를 잘하려면 어휘가 풍부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공감할 것이다. 그동안 똑 같은 내용을 반복하다보니 내용은 거의 외웠는데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막히기 일쑤였다. 정말 답답해서 미칠지경이다. 아마 1,000단어 정도를 아는 듯 하다. 그래서 딸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줄 때, 꼭 맘에 드는 중국어책을 구입했다. 2,300단어가 수록된 책인데 상황에 따른 다양한 언어들이 있었다. CD도 부록으로 들어있었다. 그래서 운전을 할 때면 단어를 듣고 이어서 뜻도 함께 들었으며, 외우지 않고 그냥 큰 소리로 따라했다. 그런데 오히여 중국어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침에 사무실에 갈 때 동선이 달라졌다.
한동안은 매일 야채과일가게에 갔다. 그러면 거기에 양파, 파, 고추, 호박, 가지, 감, 수박, 살구 등 수십 가지의 야채와 과일들이 있다. 순간, 한바퀴를 돌면서 빠르게 중국어로 복습을 마친다. 거리를 걷다보면 치과, 내과, 편의점, 미용실 등이 보이면 혼자서 빠르게 복습한다. 집에 도착하면 주방, 거실, 치약, 칫솔, 식칼, 도마 등을 스캔하면서 순간적으로 중국어 복습을 한다. 일상이 모두 중국어 공부 놀이터가 되었다.
<21개월째> 자기주도적인 중국어 공부법을 터득하다
도둑질도 해본 놈이 잘한다고 했듯이, 중국어도 2년 가까이 하게 되니 자기주도공부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중국어를 공부하면 더욱 하고 싶어지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별로 중국어를 하고 싶지 않은데 어느 새 중국어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어와 문장을 공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꼬리가 꼬리를 무는 형국이 되었다. 예를 들어, 타산(打算)을 중한 사전에서 찾으면 ‘..을 할 예정이다’란 뜻이며 여러 가지 예문들이 있다. 그러면 그 문장을 듣고 크게 말한다. 그리고 타(打)를 사전에서 찾으면 수십 가지의 예문이 나온다. 그러면 다시 문장을 듣고 크게 말한다. 다시 산(算)에 대하여 사전을 찾으면 예문이 있고, 그 문장들을 듣고 크게 말한다. 그런데 이게 해보니 중독성이 있다. 한 번 시작하면 30분은 그냥 흘러간다. 그러므로 단어를 찾다가 새로운 단어를 만나게 되고, 또 다른 단어를 알게 되었고 더구나 반복을 하다보니 저절로 복습효과도 있었다. 일명, 꼬리가 꼬리를 무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휘실력이 나도 모르게 좋아지고 있다.
<중국어 독학, 2주년을 맞으며> 공부를 하지 않고 공부를 하다
사실, 나는 중국어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중국어 공부를 했다. 그동안 열심히 한 적도 없으며 노력을 하거나 별도로 도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매일 중국어를 공부했다. 그러다보니 습관이 되어서 나도 모르게 매일 2년간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내가 왜 중국어를 배우려고 했는지 그 이유는 없다. 굳이 이유라면 내가 하루에 꼭 10분씩 하려고 했던 초심을 지키고자 한 것 뿐이다. 나는 머리가 명석한 편도 아니고, 눈치가 빠르지도 않으며, 불같은 열정도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잘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꾸준함이다. 과거를 보면, 일기도 초등학교 6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매일 썼으며, 최초의 사업도 13년을 했고, 꿈점검표도 매달 10년 이상을 했고, 무인도에서 탈출하기도 12년을 했고, 서점놀이도 15년을 했고, 원격놀이는 무려 15년을 했다. 아빠와 아이와의 놀이도 15년을 모으니 5,000개나 되었다.
사무실 옆에는 한식집이 있다. 처음 가게를 오픈했는데 2년이 지나도 손님들이 꾸준히 많다. 그 식당에 가면 김치와 깍두기도 직접 담그고, 각종 채소를 다듬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음식을 먹다가 반찬이 부족하면 어느새 보충을 해주고, 잔반이 남으면 즉시 버린다. 결국, 신선하고 양질의 국산 재료를 사용하기에 손님들에게 신용을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 너무 재미가 있다며 봄과 가을이 되면 산에 가서 직접 나물을 캐와서, 말리기도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의 일이란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노력과 열정만큼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그런 마음이 동기부여가 되어 무엇이든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꾸준함과 열정, 노력을 함께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매일 매일 목적을 위해서 내가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에 모션의 법칙이 있다. 몸이 움직이면 바로 생각이 따라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생각이 아니라 몸을 매일 움직여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보자.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심장이 뛰어야 한다. 잠시라도 쉬면 안된다. 더구나 너무 빨리 뛰어도 문제고, 너무 늦게 뛰어도 문제다. 그저 일정한 속도로 계속 뛰어야 생명이 유지된다. 바로 그 꾸준한 심장의 박동이 생명을 유지시키고 있다. 이미 우리는 꾸준함의 DNA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꿈의 씨앗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내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