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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부족해서 그러냐’는 말도 상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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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아버지와 나는’이라고 시작하는 문장의 뒷부분을 완성해야 한다면, 나는 무슨 말을 쓸까? 우리 아이는 어떻게 완성할까?

예전에 상담했던 중1 남자아이는 이 문장의 뒷부분에 ‘스승과 제자의 사이다’라고 썼다. 아버지가 시험성적을 본 뒤 “학교교육이 소용없다, 학습능력도 안 되고, 학교나 교우관계에서 안 좋은 것만 배우니 학교는 안 되겠다”며 아이를 학교에 며칠째 보내지 않았던 거였다. 아버지는 아이를 두고 ‘학습과정에 대한 부적응 상태’라고 말했다. 또 “타성에 젖어 있고, 자율적이지 못하고, 계획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초등 때부터 영어를 직접 지도했고, “나머지는 교과서만 공부하면 된다”며 아이 스스로 하게 했다. 학습 이외의 생활에도 굉장히 엄격하게 개입을 한 편이라 아이는 또래들과의 놀이문화에 차단되어 있었다. 그런 아이가 사춘기 중학생이 되면서 말도 덜 듣고, 틈만 나면 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이자 학교생활이 아이한테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긴 것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아이가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며 “그럴 거면 학교 다니지 마!”라고 말하는 부모들을 간간이 본다. 실제로 아침 등교 시간에 교복도 못 챙겨 입고 학교로 도망 나온 학생도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부모나 주변의 큰 도움 없이 자신의 노력으로 진학·취업을 한 ‘자수성가형’ 부모들이 자신들의 자녀에 대해 불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의 경험 기준에서 봤을 때 풍요로운 혜택을 받으면서도 공부하지 않고 다른 불만을 앞세우는 아이들이 이해가 안 된다. 자신들은 결과보다는 하겠다는 의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아이가 하는 척만 하고 건성이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없어서 못했다. 이렇게 다 갖춰져 있는데, 공부만 하면 되는데, 그 공부 하나를 제대로 못하는지 모르겠다.” 이들은 이렇게 말하며 답답해한다. 아이의 모습이 게으르고 한심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흐리멍덩한 정신 상태’를 깨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학교를 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를 다그치는 모난 말도 쏟아낸다. 이렇게까지 하는 부모의 속마음에는 ‘집에서 네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정신 차려라, 마음에 상처가 좀 남아도 더 잘되면 그게 남는 거니까. 강하게 대해야 정신 차린다’는 생각이 있다.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그건 부모 자신의 생각이다. 아이들 처지에서는 그 공부 하나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게 따로 있다. 너무 어렵다. 지친다.” 아이들이 하는 이런 말을 건성으로 들을 건 아니다. 아이들도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어쩌면 아이를 잘 돕는다고 했던 것들이 아이를 약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렇게 자신이 살아온 시절의 경험을 기준으로 삼는 부모는 자기 방식이 가장 옳다고 여기며 매사 통제하고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는 그런 부모 앞에서 위축되고 기가 죽는다. 부모에 대한 불안과 긴장이 공부를 포함한 많은 부분에 스며들어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되기 쉽다. 공부 등에 에너지를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부모의 높은 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여겨 무력감을 느끼고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설계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만큼, 또는 자신보다 더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이겠지만, 부모의 기대와 바람대로 아이의 세상이 돌아가진 않는다. 도리어 부모의 의도와는 달리 자신감을 잃고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크기 쉽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분노와 반항심이 키워져서 더 엇나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부모들에 대한 표현 중에 ‘플레잉 코치’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선수 겸 코치. 아이가 자신의 발달과업을 달성하려고 애쓰는 그 과정에 부모 또한 선수로 직접 뛰며 지도하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모습이 좋게 보일 수도 있지만, 아이의 주도성이나 자율성의 발달에 방해가 되기 쉽다. 플레잉 코치 구실을 하는 부모는 개인적 역량이 뛰어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기 방식을 아이에게 강요하기 쉽고 기대수준이 높기 마련이다. 부모 자신이 그린 설계도대로가 아니더라도 아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응원해주는 것이 더 나은 선배며 코치가 아닐까.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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