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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고추장 담그고 개 삶고…조선 남자들의 ‘음식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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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조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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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지음/청아출판사·1만5000원

“이전에 보낸 쇠고기장볶이는 받아서 아침저녁으로 먹고 있니? 왜 한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 무람없어. (…) 고추장은 내가 직접 담근 거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주면 앞으로도 계속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연암 박지원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박지원은 1791년, 55살 때 서울을 떠나 경상남도 함양군인 안의 현감으로 내려갔다. 그는 멀리서 편지로 자식들에게 자주 잔소리를 해댔고, 찬거리도 직접 만들어 바리바리 싸보냈다. 그런데 쓰다 달다 답이 없으니 실망하여 토라져버렸던 것이다.

<요리하는 조선 남자>는 연암처럼 먹을거리에 관심이 컸던 조선 양반 남자들의 음식 이야기, 식탐 이야기를 모아 엮은 책이다.

조선 시대 궁중 요리는 숙수를 비롯한 남자들이 주로 맡았다. 태조 이성계의 ‘전속 셰프’였던 이인수는 조선 개국 뒤 중추원 벼슬까지 얻었다. 세종 15년(1433), 명나라에서 음식 하는 공녀를 바치라고 했을 때 왕과 신하들이 당황했던 데도 이유가 있었다. “궁중 요리를 하는 건 다 남자라서 여자들이 아는 바가 아닌데?”

드물긴 했지만 지체 높은 남정네들은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세종 16년(1434), 의안대군 이화의 아들이자 충청도 병마도절제사였던 이교는 특히 음식 솜씨가 좋았던 모양이다.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잔치에 요리할 사람이 없다며 ‘차출’되기까지 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한번에 냉면 세 그릇, 만두 백개를 먹는다며 식탐으로 놀림받았던 대식가 박제가는 개를 직접 잡아 삶는 레시피를 개발해 정약용에게 알려줬다. 정약용은 채마밭을 손수 일궜고 된장까지 담근 것으로 추정된다. 가난했던 책벌레 실학자 이덕무는 단것이라면 사족을 못 썼고, 자신의 전집 <청장관전서>에 카스텔라 레시피를 기록해두었다.

조선 남자들의 ‘음식 열정’은 여러 기록에서 발견된다. 1611년 허균은 귀양살이 때 산해진미를 먹을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며 팔도의 명물 별미음식을 소개한 ‘맛지도’ <도문대작>을 작성했다. 서거정은 게장에 환장했고, 쪄 먹고 술에 담가서도 먹었다. 회는 일본 대표 음식인 것처럼 알려졌지만 조선 사람들이 회를 즐겨먹었다는 엄청난 양의 사료가 남아 있다.

특이한 점은, 조선 사람들의 ‘참외 사랑’이 지극했다는 것이다. 밥 대신 뚝딱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여서 많은 남자들이 직접 칼로 깎아먹었다. 일본인이 쓴 <조선만화>(1909)를 보면, 참외 철에 쌀집 매상이 70%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참외 빨리먹기 내기가 성행해 책의 지은이는 “대단한 폭식이다!”라며 경악했다고 한다.

지은이 역사저술가 이한은 맺음말에서 “딱딱하고 어려운 한자 너머로 ‘이거 정말 맛있어!’ 하는 마음의 외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고 밝혔다. 한자를 말하듯 풀어쓴 문장은 잘 삭힌 식해처럼 맛깔나게 읽힌다. <산가요록><수운잡방><음식디미방>등에 실린 옛날 레시피들을 보면서도 침이 고인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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