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교실
전봇대는 혼자다
백창우 외 101명 지음, 김유대 방현일 그림/사계절·각 권 9000원
지난해 말 충주에서 제1회 동시인대회가 열렸다 한다. 전국의 동시 쓰는 시인들이 모였다. 이 대회를 연 충주작가회의 회장 겸 동시 잡지 <동시마중> 편집위원인 이안 시인의 말을 따오면, 2010년대 우리 동시는 전 시대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성한 언어의 풍경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그 풍경의 일단을 엿보는 맛뵈기로, 겸사겸사 다음 동시의 제목을 알아맞혀 보자.“늘/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함민복)“엄마가/ 동시를 읽어 주다/ 눈물이/ 주르륵”(박철)앞의 것은 ‘반성’이다. 강아지 좋다면서 강아지 입장은 생각 못했던 나의 딱 떨어지는 새 행동강령일진대, 어찌 읽는 이의 입꼬리가 덩달아 빙긋 올라가지 않을 수 있겠는지. 동시를 읽으며 아이들은 나에게서 주변의 나 아닌 존재에게로 시야를 넓혀감 직하다.엄마는 왜 동시를 읽어 주다 눈물 흘렸을까. 달랑 4행짜리 짧은 동시는 제목이 ‘할머니 생각’이라는 걸 깨닫고 보면 가슴 한쪽이 싸해진다. 왠지 돌아가신 듯한 할머니, 그 엄마를 그리워하는 엄마, 엄마를 지켜보는 나까지 3대의 얘기가 깃든 집안의 풍경을 떠올리면서.<날아라 교실>과 <전봇대는 혼자다>는 전국 동시인대회를 기념해 102명의 시인 혹은 동시인이 한편씩 써낸 작품을 두 권에 묶었다. 동시는 동심의 심연을 진심으로 엿보려는 자만이 쓸 수 있는 시다. 시인 박방희가 ‘좀도둑님께’ 부탁 말씀을 드리게 된 건 그래서일 테다. “도둑님, 좀도둑님/ 우리 집 좀, 좀 훔쳐 가세요/ (…)/ 나만 따라다니는 좀/ 껌처럼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 좀/ 공부해라, 좀/ 일찍 일어나라, 좀/ 조용해라, 좀/ 그 모든 좀들 훔쳐 가세요, 좀!”(‘좀도둑님께’)아이건 어른이건 그 마음을 어루만지려는 듯 정진아는 “사람에겐 틈이 있으면 안 된다고?” 묻고, “틈은 웃는 거야”라고 얘기한다. “헤~ 벌린 입을 봐/ 미소를 만들잖아/ 틈은 웃는 거야”도시 맞벌이 가정 아이의 일상을 엿본 진현정의 ‘작전명 1호’는 유머와 아이러니를 내장한 한국 동시의 한 풍경을 드러낸다. “비밀번호 누르고/ 딸깍!/ 현관문 연다// 신발 벗고/ 가방 내려놓고/ 방바닥에 납작//(…)// 혼자서/ 아무도 모르게/ 집 지킨다// 퇴근한 엄마가 뾰족구두 차버리고/ 쳐들어올 때까지.”한국 동시의 풍경은 시편 하나하나를 다 읽어내릴 때 비로소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겠다. 전봇대는 혼자지만 서로를 잇는 줄이 있다. “서로 붙잡은 손과 손으로/ 따뜻한 기운이 번져서/ 사람의 집에도 불이 켜진다.”(장철문 ‘전봇대’) 7살부터.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