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The) 친절한 기자들]누리과정 예산 지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지난 4일치 <조선일보> 1면·8면에서는 ‘불평등 누리과정’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출발선의 평등’을 내세운 연 4조 누리예산이 가진 자의 사교육을 더 조장해 오히려 불평등을 키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월 100만원이 넘는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에게도 정부가 누리예산 월 29만원(방과후과정 7만원 포함)을 지원해서 유치원과 유치원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는 학부모 부담금이 월 78만원인 서울 W유치원과 학부모 부담금이 월 5000원 경기E 유치원을 비교하기도 했지요. 과연 <조선일보>의 분석처럼 누리과정 예산 지원이 가진 자의 사교육을 조장해 불평등을 키우고 있는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이 기사는 누리과정을 포함한 무상보육 정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분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최은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는 하루 4~5시간 유치원·어린이집 공통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에 대해 보편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라며 “마치 그 지원때문에 사교육이 더 조장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짚었습니다. 오히려 최 연구위원은 누리과정 실시로 인해 3~5살 어린이의 유치원·어린이집 이용률이 늘면서 취약계층 아이들이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과정을 들을 수 있게 돼 ‘출발선의 평등’이라는 목표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 주로 유아교육기관에 다녔다면, 무상보육 정책이 실시되면서 누구나 보편적으로 다니게 되면서 집에서 방치·방임되던 아이들이 국가적 보육·교육이라는 틀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죠. 실제로 누리과정 실시 이전의 유치원·어린이집 이용률이 80% 정도였다면, 누리과정 실시 이후 현재 유치원·어린이집 이용률은 90%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누리과정 지원으로 사교육이 조장된다는 말은 번짓수를 잘못 찾은 분석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유아교육기관의 높은 원비와 과도한 특별활동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그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실제로 정부가 보육료·교육비 지원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학부모들의 부담이 줄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정부가 가계 부담 경감이라는 취지로 누리과정 도입을 했지만 많은 학부모들은 여전히 높은 원비로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고 있지요.
지난 1일 육아정책연구소의 육아정책연구(9권)에 실린 ‘무상교육·보육정책으로서의 누리과정 현황과 개선방안’(육아정책연구소 이윤진, 이규림, 조아라)에 따르면, 정부의 누리과정 기본 지원비(국공립유치원 6만원, 사립유치원·어린이집 22만원)를 제외한 월 기본비용은 사립유치원이 11만3570원이나 됐습니다. 이는 국공립유치원의 추가 비용에 비해 5.5배나 많은 액수였습니다. 특별활동 프로그램 비용 역시 사립유치원(6만6805원)이 국공립유치원(2만7616원)보다 2.4배 높았습니다. 무상교육이라고 하지만 사립유치원의 경우 기본비용과 특별활동 비용을 포함하면 한달에 평균 18만375원의 적지않은 돈을 지출해야 한 것이죠.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부 유치원의 과도한 특별활동과 높은 원비는 정부의 정책 설계가 잘못됐기 때문이지 누리과정 지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무상보육 정책은 보육·교육 서비스를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해주는 정책입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국민에게 어떤 서비스를 어느 정도까지 주느냐를 두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했습니다. 백 교수는 “유치원은 특별 활동을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므로, 정부가 교육비 지원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 특별활동과 같은 부가적인 부분에 대한 강한 규제가 들어갔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비용, 특별활동 등과 같은 전체 교육서비스의 질과 양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그것과 연계해 각종 지원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죠. 백 교수는 “무상보육 정책이 단순히 돈을 주는 정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며 “어떻게 보육·교육 서비스의 질을 올릴지에 대한 논의들이 더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유치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아예 안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누리과정을 실시하면서 오히려 유치원에 대한 관리·감독은 더 강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육부는 올해 신학기부터 유치원비 인상률 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유치원장이 원비를 인상할 때 직전 3개 연도의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결정하도록 한 것이죠. 교육부는 2016학년도가 끝나는 내년 2월에 유치원들의 올해 학비 인상률을 점검해 상한선을 위반한 유치원에는 보조금 전액 환수와 유아모집 정지 등의 조처를 할 예정입니다.
교육부는 또 고액 유치원은 일률적으로 고액 여부를 정하기가 어려운 만큼 교육청별로 원비가 해당 지역의 유치원비 평균의 2배 이상이면 학급운영비 지원을 중단하는 식으로 지침을 정해 지도하기로 했습니다. 유아교육법에 따르면 유치원비는 유치원 실정에 맞게 원장이 정하게 돼 있어 그동안 일부 사립유치원에서 무분별하게 원비를 인상해왔기 때문이죠.
교육부의 유아교육 담당자는 “어린이집은 국가 위주로 정책을 도입했기 때문에 원비 자체도 제한을 했고, 방과후 과정도 규제를 한다. 그러나 유치원은 초반에 자율적으로 성장해와서 원비 자체도 상대적으로 높은 측면이 있다”며 “누리과정 도입과 동시에 유치원 원비, 교육과정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담당자는“학부모 부담이 80만원에 가까운 유치원은 사실 전국에서 몇 군데 안된다”며 “일부 유치원의 사례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어 보이며, 지금은 보편적 유아 교육이 실시되는 과정에서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누리과정 예산 지원 전에도 과도한 특별 활동 등을 통해 원비를 높게 받는 유치원은 있어왔는데 갑자기 누리과정 예산 지원때문에 그런 격차가 발생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오히려 누리과정 도입 등을 통해 유아교육의 공공성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봐야한다는 것이죠.
또다른 교육부의 유아교육 담당자는 “특별활동을 많이 하는 아이들이 과연 교육적으로 높은 질의 교육을 받는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영어 몰입 교육 등 유아에게 교육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을 기준으로 교육 불평등을 낳는다는 분석이 잘 와닿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