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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3살 다샤, 모스크바에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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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산하 제공
그림책이야 만화야 소설이야?
소련산 십대의 개성가득 성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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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이 보낸 일년
다샤 톨스티코바 글·그림, 배블링북스 옮김
산하·1만2000원

이것은 그림책일까, 만화일까, 아니면 그림이 곁들여진 소설일까. 곁들여졌다기엔 그림의 몫이 크다. 그림책이라기엔 서사가 길디길다.

그렇다면 이른바 문예만화·그림소설이라 불리는 그래픽노블? 한데 이 책의 그림 문법은 온통 그림책의 그것이다. 제아무리 ‘자유로운 칸 구성’이 그래픽노블의 특징이라 해도, 더러 말풍선이 쓰일 뿐 이 책은 칸이 아예 없다. 두 페이지 통째로 한 컷 그림 터전 삼고 거기에 글을 부려놓는 화법은 그림책과 다르지 않다. 소설과 그림의 응축된 만남, 어쨌거나, 그림책의 진화, 그래픽노블의 진화 그 어디쯤에 있는 건 확실하다.

장르를 허물어대며 묘한 매력을 뿜는 책이 한국 독자를 찾아왔다. 서정적이고 시적인 서사는 이따금 색깔이 입혀질 뿐 주로 흑백으로 소묘된 그림에 빚지고 있다. 샤프연필과 수묵물감을 쥔 작가는 소비에트 모스크바 산이다.

“아주 어릴 때, 나는 엄마의 손가락을 깨물어 상처 낸 적이 있다.”

그림 산하 제공
그림 산하 제공

당돌한 긴장감을 잣는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엄마 없이 보낸 일년>의 관심사는 엄마가 아니다. 때는 1991년 사회주의 붕괴기의 모스크바. 우리의 주인공 다샤는 열세 살, 이제 막 사춘기로 접어들었다. 어쩐 일인지 아빠는 집에 없고,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산다. 어느 날 엄마는 공부를 해야 한다며 미국 유학을 떠나고 다샤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달랑 남겨졌다. 엄마 없이 진로를 고민하고, 엄마 없이 혼자서 단짝 친구와의 묘한 갈등도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방학을 맞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간 ‘작가들의 휴양지’에서 만난 남자아이 페차를 볼 때면 자꾸만 마음이 불편해지는데, 날이 갈수록 그것은 단짝한테도 선뜻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이 되고 말았다. 용기내어 친구에게 털어놓고 그 힘을 발판 삼아 마침내 고백하기로 마음먹던 날 다샤는 페차가 다른 여자아이와 입맞춤하는 것을 보고 만다.

13살 아이 다샤의 격렬한 성장통은 흑백톤의 담백하고 절제된 그림과 묘한 긴장을 빚으며 읽는 이에게 아릿한 통증을 일으킨다. 사회주의 해체기 소련의 먹고사는 덴 별문제 없는 한 지식층 가정과 그들이 속한 중산계층이 살아가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작가, 엄마 또한 자기 꿈을 위한 행로 선택에 거침이 없다. 다샤 가족이 휴가를 보내는 ‘작가휴양지’의 풍경, 끝없이 정치 얘기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고르바초프 정권이 쿠데타로 쫓겨나는 것을 도화선으로 하여 한 체제가 무너져가는 즈음의 혼돈이었을 풍경은 고작 13살이던 아이에겐 아련하고 흐릿한 배경화면으로 슬쩍 스쳐 지나간다. 아이는 그 무엇보다, 그 자신에게 닥친 일을 스스로 풀어나가야 했으니까.

옛소련 태생으로 미국에 사는 작가 다샤 톨스티코바의 자전적 이야기다. 10살부터.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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