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고. 한겨레 자료 사진.나는 유아교육이나 장난감 등의 최근정보를 얻기 위하여 유아교육페어와 같은 전람회에 정기적으로 가는 편이다. 최근 유아교육 박람회의 큰 흐름 중의 하나는 입체자석교구 전시관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것이다. 전시관도 커졌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그 안에서 놀고 사용해볼 수 있는 공간도 널찍이 만들어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실제로 최신의 입체자석교구는 모양도 다양할 뿐 아니라 LED 빛까지 나와서 아이들이 더욱 열광한다. 거기다가 입체자석교구로 자동차를 만들면 리모컨으로 조종이 가능하고 모터까지 달려 구동까지 된다.
두뇌발달에 있어서 소근육운동의 발달은 모국어의 발달과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손놀림은 단순한 소근육 만의 문제가 아니라 안구의 고정, 눈과 손의 협응 등이 이루어져야 하고 청각, 시각, 촉각 등의 감각과도 상호작용을 하여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외부를 탐색하며 그것에 적응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손놀림은 지능과 관련이 깊은 동작이 된다. 소근육운동을 이용하는 블록놀이는 공간감각을 향상시킬 수 있고 수학적 문제해결력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블록을 쌓는 것은 소뇌, 대뇌피질, 시각중추, 전정기관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되는 고도의 기능으로 섬세하게 손놀림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기울기를 눈으로 체크하고, 이것을 다시 손가락 감각으로 확인하면서 바로 세워야 한다. 이것은 대뇌의 신경회로를 만들기에 최고의 자극이다.
어릴수록 큰 블록을 좋아하지만, 3-4세만 되어도 자석블록에 관심을 갖게 된다. 자석블록은 구조적으로 상하로 결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블록 속의 자석이 기능적으로 붙기 때문에 더 다양한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 수 있고 쉽게 붙기 때문에 소근육운동이 크게 발달하지 않은 아이도 가지고 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입체자석교구는 기본적인 모양이 기하도형으로 되어 있고, 블록을 직접 조합하고 연결하는 과정에서 공간에 대한 개념과 부분과 전체, 패턴, 평면도형의 원리 등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은 자석의 원리를 이용하여 다양한 구조물을 직접 만들면서 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있고, 3차원 도형을 만들면서 입체 구성력을 키우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형상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의력에도 도움을 준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은물이나 가베처럼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전통교구까지 자석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몰론 자석을 삼키게 되면 건강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아기가 삼킬 수 있는 작은 형태의 블록은 만들기 어렵다. 또한 레고처럼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높이가 높거나 복잡한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성을 표현하고, 전쟁터를 표현하고, 마을을 표현할 수 있는 레고와 달리 자석블록은 자동차, 건물, 로봇처럼 형상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또한 자석을 사용하기 때문에 수십만원 대의 가격을 호가하기도 하여 부모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여전히 인기있는 레고
내 아이들을 키우던 시대에는 입체자석교구는 없었다. 자석을 사용한다고 해도 칠판에 글자나 그림을 붙이는 정도로 교구에 사용되었다. 따라서 내 아이들은 유아 때부터 레고를 가지고 놀았다. 당시에 유아들이 사용할 수 있는 ‘듀플로’라는 유아용 레고도 있었기 때문에 유아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십수년을 레고와 함께 놀았던 추억이 무수하다.
레고의 탄생은 목수였던 크리스티안센이 경제 공황으로 인하여 일감을 찾지 못하자 정교한 장난감들을 만들어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이루어졌다. 1934년 크리스티안센이 장난감 회사를 설립하였는데 회사의 이름은 ‘잘 논다(leg godt)’란 의미의 덴마크어를 줄여 레고(Lego)라고 지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레고 블록은 1947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키디크래프트 블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1958년경 여러 개 쌓아도 구조적인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각 면 아래쪽에 홈이 있어 조립이 가능한 직사각형 블록으로 진화하였다. 레고는 1년에 2억 박스 이상이 팔리고 있으며 장난감 뿐만 아니라 테마파크, 비디오 게임, 영화 제작까지 하고 있다. 레고는 쌓는 일반 블록과는 달리 자동 잠금이 가능한 블록이다. 자동 잠금 블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빠르게 딸까닥 소리를 내며 블록끼리 결합하는 것과 결합력이 어느 정도인가였다. 레고도 초창기에 헐겁고 느슨했지만, 이후 단단히 꽉 조여지는 블록으로 개량되었다.
레고의 장점은 이러한 결합력으로 기계를 만들고 도시의 모습을 재현하는 등 창조적인 놀이가 가능하고 확장성도 무한하다. 1958년 이후 제작된 레고 블록은 다양한 규격으로 만들어지지만 보편적인 규칙을 따르고 있어 디자인과 상품명이 다르더라도 자유롭게 호환이 가능하다. 레고는 1966년에 ‘레고 트레인 시스템(Lego train system)’으로 큰 히트를 쳤고, 1968년에 빌룬트에 레고 블록으로 지은 미니어처 타운인 ‘레고랜드 파크’를 개장하였으며, 1969년에 큰 사이즈의 블록으로 된 유아용 ‘듀플로 시스템(Duplo system)’을 출시하면서 승승장구하였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이후 레고블록이 안 팔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전자오락이나 컴퓨터 게임에 더 열광하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점점 즉각적으로 자극을 주는 장난감을 좋아하였다. 현대의 아이들은 옛날처럼 오랜 동안 길게 놀 수는 없으니까 짧은 시간 조금씩 할 수 있는 자극적인 오락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아울러 현대의 아이들은 다양한 매체에 영향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에 나오는 것을 보고 장난감을 고르는 것이다.
그러나 레고는 2000년대에 오면서 위기를 극복한다. 레고가 전자오락이나 TV나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장난감의 공격에서도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버리고, ‘놀이 속에 감춰진 아이들의 욕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부터이다. 레고는 연구를 통하여 놀이는 어른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 숨 쉴 틈을 찾는 것‘이라고 상정하여, 아이들에게 ’자기만의 세계‘를 줄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또한 아이들은 경쟁을 좋아하기 때문에 놀이에 등급과 서열을 강화하였다. 아이들은 누가 더 빨리 달리나, 누가 더 많이 모으나,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는가 등으로 끊임없이 경쟁하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또한 아이들은 끊임없이 반복하더라도 완전히 습득하기를 좋아하고 그로 인하여 얻어지는 사회적 평판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단계적으로 난이도를 높였다. 결국 아이들은 놀이를 통하여 끊임없는 반복과 경쟁을 하면서 무언가를 배우고, 거기에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더 나은 평판을 얻게 된다.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도 훨씬 장기적으로 노력을 하고 레벨을 올리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즐거운 블록놀이를 위한 지침]
아이들에게는 발달 시기에 맞는 적절한 놀이가 필요하다. 블록은 잘만 활용하면 여러 가지 재미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다방면의 교육적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정서적인 성장은 물론이고 신체와 두뇌의 발달에도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장난감이다. 블록은 고유의 기능이 따로 없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쉽게 뚝딱뚝딱 표현해 내기 때문에 아이의 현재 상태를 잘 투영해낸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아이 스스로가 탐구하고, 만들고, 성취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와 함께 소통하고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도 블록놀이는 가치를 지닌다.
블록은 아이의 변연계를 자극하여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형의 생각’이 실제 조형물로 완성되었을 때의 성취감, 부수었을 때의 통쾌함과 허무함, 역할극을 할 때의 즐거움 등 다양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재미가 우선이다.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재미를 추구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요즘은 블록이 ‘교구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아무리 교육적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비싼 블록도 플라스틱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경쟁을 하게 하라.
아이들은 경쟁을 하고 서열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블록놀이는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경쟁을 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작은 블록으로 더욱 복잡한 것을 만들어 볼 수 있게 하고, 형들이 더 복잡한 것을 만들면서 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
숙련하여 진정한 프로가 되게 하라.
아이들은 무언가를 배워서 완전히 익히기를 좋아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는 반복도 마다하지 않는다. 블록을 이용해 거대한 성을 쌓고 부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아이는 성취감을 느끼며, 힘세고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아빠가 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낀다.
계획성과 조직성을 키우자.
설계도를 따라 작은 블록으로 로봇을 만들고 우주선을 만드는 아이들은 만들 물건을 상상하고 그것을 조직화하고 체계화해야 하며 조립의 순서를 지켜야하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고 규칙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 질서와 규칙을 강조하고, 작업을 계획적이고 성실하게 이행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좌뇌를 키울 수 있다.
콜라보레이션을 가르쳐라.
3~4명의 또래들과 어울려 블록놀이를 하여보자. 이때 내 아이보다 좀 더 차분하면서 놀이 수준이나 사회성이 높은 친구들이라면 더 좋다. 친구와 블록으로 큰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이는 협동하는 법도 배우고 사회성도 커진다. 이 과정에서 감정조절이나 남을 배려하는 습관도 기를 수 있다.
사회적 소통을 하라.
아이들은 사회적 놀이를 좋아한다. 역할놀이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역할놀이를 제대로 즐기려면 풍부한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실제 밥은 아니지만 ‘밥인 척’, ‘반찬인 척’ 생각할 때 놀이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역할놀이는 ‘나’를 벗어나 관계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 놀이의 수준도 한층 더 진일보한다. 블록은 성뿐 아니라 마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관계의 폭을 확장시키는데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