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이의 카카오톡 상태메시지에 ‘조카 크레파스 18색’이라는 글이 떠 있었다. ‘아니, 웬 욕?’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아 학교생활이나 애들과의 관계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엄청 눈치를 보며 아이가 편안해 보이는 때를 노려서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보았다. “카톡을 보다 보니 ‘조카 크레파스 18색’이라고 되어 있더라.” “아~ 그거? 재미있어서 올려본 건데.” “그래? 엄마, 솔직히 좀 걱정했잖아. 뭔 일 있나 해서.” 이렇게 얘기를 주고받으며 가벼이 넘어간 일이 있었다.
스마트폰을 쓰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신저 사용을 하는 아이들도 급증했다. 아이들은 프로필 사진이나 상태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나 상황을 표현하는 데도 익숙하다. 그만큼 이 창구에서 분란과 분쟁이 시작되기도 한다.
한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방학 때 파마를 한 모습을 자신의 프로필 사진에 올렸는데, 그전부터 그 아이를 싫어하고 무시하던 상대 아이가 자기 친구들과 그 사진을 돌려보면서 쑥덕거리고 비웃는 일이 생긴 적이 있었다. 얌전하고 소극적이었던 아이는 중학교 생활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로 시작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상대 아이들은 ‘찌질이가 왜 나대느냐’는 식이었다. 결국 아이는 그 사진을 내리고 다시 조용하고 위축된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또다른 한 아이는 절친과 갈등이 있은 뒤 그 친구의 상태메시지, ‘나도 쓰레기지만, 너도 쓰레기다’라는 글을 읽고 자신을 말하는 거라며 울적해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정도 말은 양호한 수준이다. 더한 ‘저격글’도 많다.
디지털 시대의 아이들은 이렇게 디지털 세계에서 자기표현과 연결을 일상으로 한다. 그로 인한 폐해도 무시하기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의 욕구가 있다. 사랑과 관심을 추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간다. 이 시절 사춘기 아이들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 그것을 실현해나간다. 그러니 ‘진지하지 않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다, 피상적인 인간관계만을 맺는다’는 비난을 먼저 할 게 아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에는 유희의 요소가 분명 있다. 이는 스트레스 해소의 한 방법으로 작동한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한정적이라는 점은 우리 모두 다 인정한다. 아이들은 그 짧은 틈 사이에서 잠깐의 놀이를 하고, 휴식을 취하며 관계맺기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여러 한계 상황에서도 이렇게 자기 자신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타인과 교류하고, 더 넓은 세상을 접하고자 하는 아이들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는 디지털 세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디지털 중독 전문가들은 부모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때 중독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아이가 부모에게서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무조건 디지털 매체의 해악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부적절하다. 감시 앱을 깔거나 인터넷을 차단하는 등 제압하는 방식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기 쉽다. 아이들은 부모의 눈과 손에서 벗어나는 방식을 기막히게 잘 찾아낸다. 그리고 더 은밀하게 비밀을 유지하며 부모와 거리를 두고 멀어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온라인 세계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 대해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걱정을 하는 게 사실이다. 이때 아이들 가까이에 서 있을 수 있도록 잠시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분명 개입은 해야 한다. 부모의 개입이 효과가 없고, 아이들의 저항만 부른다면 관계를 다지는 방식을 새롭게 시도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안정적이 될수록 아이를 더 잘 도울 수 있다.
아이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의 연결을 위한 활동을 시작한다면,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서 충분히 얘기를 해줘야 한다. 아이들은 일면식도 없는 또래, 이성과도 페이스북 친구 추가를 쉽게 한다. 그러다 사소한 문제로 관계가 어긋나면서 욕설로 위협을 하고 서로 주고받았던 사진을 배포하는 식으로 사이버폭력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이미지 관리가 가능한 온라인 활동에 치중하다 보면 실제 자신의 모습으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다. 대면관계를 통해서 저절로 익히게 되는 시선 처리, 목소리 내기, 타인의 표정 이해와 감정 나누기 등에서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고 다시 온라인 세상 속으로 움츠러드는 악순환을 겪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세계에서 내 정보나 흔적들이 얼마나 영구적으로 남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줘야 한다. 또 자기노출의 내용, 그 정도 등도 스스로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을 진지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