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집을 처음 발견했을때, 그리고 마침내 전세로 들어오게 되었을때
나는 정말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줄 알았다.
모든 조건들이 내가 바라던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산자락에 연결된 넒은 마당에 담장도 없는 언덕위의 2층집..
꿈이 이렇게 완벽하게 이루어지다니 믿을 수 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새 집에서의 첫 1년은 충격과 공포와 감탄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1월에 이사왔더니 주택의 겨울 추위는 아파트에서 겪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고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나타난 날개미떼를 비롯한 각종 벌레들에 놀래는 것도
잠시, 장마철이 되자 집안 여기 저기에서 비가 줄줄 샜던 것이다.
게다가 풀이란 것들은 어찌나 빨리 무성하게 자라나는지...
비만 지나가면 텃밭부어 마당 가장자리까지 온통 무성한 풀밭이 되어 있었다.
온갖 벌레들이 약을 치지 않는 우리땅으로만 몰려드나 싶게 벌레들은 넘쳤다.
간신히 첫 장마 겪은 후 대대적인 방수공사를 했건만
올 장마철에도 여지없이 안방 천정에선 빗물이 떨어지고 있다. 벽지가 젖어들면서
곰팡이들도 소담스럽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오래 비어있던 동안 환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천정 합판이 몽땅 썩어 있는 상태였다. 그 위를 그냥 곰팡이 방지 시트로
임시방편만 하고 새로 도배를 하고 들어왔는데 첫 장마철에 곰팡이는 제대로
피어 버렸다. 그 뒤로 곰팡이는 그저 포기하고 살고 있다.
우리집 앞에 커다란 저수지도 있도 산과 바로 이어져 있어서 평소에도
습기가 많은데 장마철이 되면 정말 방바닥이 물에 젖어 있는 것 처럼
축축해진다. 그러니 곰팡이가 없을 수 가 없다.
장마철이 길고 길었던 지난 여름엔 씽크대의 그릇들 위에도
곰팡이가 필 지경이었다. 그러다보니 이젠 겨울보다 여름이 더 무섭다.
당연히 여름 장마철을 지내려면 평소보다 신경써야 할 것들이 배로 늘어난다.
내내 비가 내렸던 지난 한주동안 식구들이 잠을 자던 안방에 곰팡이가
너무 심해 잠자리를 2층으로 옮겼다.
2층은 그저 빨래나 널고 애들이 놀이터로 사용하던 곳을 잠자리로 바꾸기 위해
대대적인 청소를 하느라 허리가 휠 뻔 했다.
잠을 한 번 자려면 절차가 복잡하다.
잠자기 서너시간 전에 방을 치우고 창문을 모두 닫고 이부자리를 편 다음
제습기를 틀어 놓아야 한다. 식구들이 자러 왔을때 제습기를 끄고
창문을 연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보송한 이부자리에서 잘 수 있다.
하지만 제습기 덕분에 방안에 차 있던 후덥지근한 공기는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치우고 빨래 건조대를 옮겨와
제습기로 빨래를 말린다. 빨래가 마르면 다시 마루로 옮겨놓고
잠자리 준비를 한다. 빨래와 잠자리 수발만으로도 일이 많은데
며칠간은 난데없이 등장한 벌레들때문에 잠을 설쳤다.
초파리도 아니고, 파리도 아닌 날벌레들이 자는 방 머리맡으로
모여들더니 그 숫자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늘어나는 것이다.
우리집엔 살충제가 아예 없어서 그 벌레들을 파리채로 때려 잡았는데
잡아도 잡아도 어디선가 또 나타나 방바닥와 이불 위를 기어다녔다.
알아보니 '뿌리파리'였다.
내가 사는 지역 일대에 이 파리가 창궐하여 뉴스에까니 나왔단다.
무는 것은 아니지만 이 뿌리 파리는 날아다니기 보다 바닥을 기어다닌다.
잠든 아이 몸위로도 기어다니고 이불위로도 기어다닌다.
엄마인 나로서는 더 경악스러울 일이었다.
남편은 벌레가 기어다니든 말든 누워 잠을 자지만 애들 잠든 머리맡에
앉아서 혹여라도 애들 몸에 벌레가 붙을까봐 나 혼자 잠을 설쳐가며
하룻밤에 백여마리씩 때려 잡곤 했다.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잡초가 우거진 곳에
많이 서식한단다. 딱 우리집이다. 식물의 뿌리에 기생을 한다는
글을 읽고나서 비 그친 마당에 나가보았더니 사방에 우거져 있는
잡초들이 다 뿌리파리 소굴로 보였다.
며칠 내린 비로 사방에 고여있는 웅덩이 메우고, 조금이라도 물이
고여있는 곳을 확인해서 물을 비우고, 마당가까이 우거져있는
풀을 뽑느라 반 나절을 애를 썼다. 달려드는 풀모기에 뜯겨가며
뿔을 뽑아 음식물 쓰레기를 쌓아두는 퇴빗간으로 던져 넣다가
흙투성이가 되어 저녁을 준비하려니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날만큼
힘이 들었다.
저녁 차리고 부랴부랴 2층으로 달려가 이부자리 펴고 제습기 틀어 놓고...
아무리 더워도 축축한 바닥을 말리기 위해서는 가끔씩 보일러도
틀어 놓아야 한다. 공기는 축축하고 바닥은 뜨겁고 벌레들은 달려들고..
정말 장마철 나기가 한겨울 추위 이기는 일 보다 더 고달프다.
밖에서 외관만 보고 펜션같다고 부러워하던 이웃들은
과일국물 한 방울에도 삽시간에 몰려드는 개미떼들과, 사방 벽에 얼룩져 있는
곰팡이들, 그리고 마당에 무성한 풀들을 보면 역시 아파트가 낫구나 하며
돌아가곤 한다.
겨울 추위, 여름의 습기, 벌레들과 곰팡이... 확실히 이 집에서 사는 일은
아파트에 비해 수십배는 더 어렵다.
그렇지만 곰팡이랑 같이 사는 아이들은 아파트에서보다 훨씬 더 건강해졌다.
한겨울에도 한여름 장마철에도 마당으로 뛰어나가 노는 까닭일 것이다.
장마철을 보내려면 주부인 내 역할이 어느때보다도 더 커지고 중요하지만
애쓰며 애쓰며 견디다보면 지나갈 것이다. 물론 장마 지나면 폭염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계절을 이렇게 진하게 생생하게 살아내는 것이
내 건강도 더 키워주려니.. 믿고 있다.
그렇지만 뿌리 파리야.. 어서 어서 사라져라. 장마철도 작년처럼 두달씩 이어지면
나는 정말 쓰러진단다. 하늘아, 하늘아.. 그저 보통처럼만, 여느때 같이만
그렇게 날씨를 허락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