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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따라 떠난 제주 ‘진짜 토종맛’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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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진 원장(왼쪽)이 ‘모메존식당’ 주인 한수열씨와 제주 음식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
양용진 원장(왼쪽)이 ‘모메존식당’ 주인 한수열씨와 제주 음식에 대해 얘기 나누고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
[한겨레 매거진 esc] 요리
5월5일부터 열흘간 ‘제1회 제주 푸드앤와인 페스티벌’
행사 앞서 제주 맛전문가와 미리 가본 토종음식 맛집

지난 23일, 저가항공 티더블유(TW) 709편은 제주 하늘을 30여분 동안 빙빙 돌았다. 제주 상공에 진입했지만 바퀴를 내릴 제주국제공항 활주로는 만원이었다. 착륙 허가를 신청한 비행기만 9대가 밀려 있었다. 관광 명소 제주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제주도는 몰려드는 관광객을 겨냥해 5월5일부터 열흘간 ‘제1회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을 연다. 먹거리를 주제로 한 문화콘텐츠 행사다. 행사에 앞서 22일 제주관광공사와 사단법인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은 제주도민이 뽑은 ‘진짜 제주 맛집 50곳’을 발표했다.

미리 ‘진짜 제주 맛집’ 여행을 해봤다. 맛집 선정에 참여한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양용진 원장이 안내자로 나섰다.

“고구마를 삶다가 고구마가 익을 때쯤 메밀가루를 뿌려 버무리를 만들어 먹었다. 어린 시절 간식이었다.” 공항을 나선 나를 첫번째로 안내한 곳은 ‘메밀꽃차롱’. 주메뉴인 ‘꿩 샤브샤브’가 나오기 전에 투박한 메밀버무리가 먼저 나왔다. 고려시대 원나라가 점령했던 제주도엔 일찌감치 메밀이 들어와 뿌리를 내렸다. ‘바람의 섬’ 제주도는 서쪽이 동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옥했다. “척박한 동쪽 돌밭에 뿌려도 메밀은 잘 자라서 끼니를 해결해줬다”고 한다. 얇게 발라낸 샤브샤브용 꿩살은 마치 얇은 기름종이처럼 투명했다. 손으로 집어 올리니 내 지문이 비쳤다. 팔팔 끓는 물에 퐁당 빠뜨리자 옅은 분홍색 속살은 금세 우윳빛으로 변했다. 담백한 맛에 감탄할 때쯤 눈길을 확 사로잡은 또 다른 음식이 나왔다. ‘꿩엿’이다. 제주도 꿩엿은 가난한 시절 섬사람들이 자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메밀꽃차롱의 꿩엿. 사진 박미향 기자
메밀꽃차롱의 꿩엿. 사진 박미향 기자

1980년대 이후 사라진 꿩엿은 2014년 화려하게 부활했다. 국제슬로푸드협회가 ‘맛의 방주’(소멸 위기에 놓인 음식문화유산을 지키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에 꿩엿을 등재시키면서다. 차조와 보리, 꿩고기를 섞어 고아 만드는 꿩엿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판매용 꿩엿은 살을 갈아서 만든다.

양 원장은 “여기(메밀꽃차롱)는 다르다. 먹어보라”고 권했다. 쭉쭉 늘어지는 진한 조청 사이에 뭔가 씹혔다. 꿩고기였다. 쭉쭉 찢긴 꿩살이 다디단 조청을 만나 자랑질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살이 씹히는 꿩엿은 제주도에서도 먹기 힘들다.

살랑 봄비가 내려 푸른 제주 하늘을 볼 수는 없었지만 메밀꽃차롱 앞 돌담에선 싱그러운 꽃들이 만개해 여행객을 유혹했다. 제주도 역사에도 해박한 양 원장은 옆 건물을 가리키며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 ‘열흘 못 본다’ 하시면 이 건물에 가시는 거였다. 꼬박 갇혀 요리를 하셨다. 식재료는 목록을 적어주면 경호원들이 사다 줬다.” 그의 어머니는 최고의 제주향토음식 전문가인 김지순 선생이다. 그의 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먹은 이는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이었다. 1984년 건립된 건물치곤 화려했다. 언뜻 ‘작은 청와대’가 연상되는 이 건물은 본래 대통령의 지방 숙소였다. 그동안 도지사 관사로 활용됐는데, 오는 11월이면 어린이전문도서관으로 개관될 예정이다.

꿩 살코기 씹히는 꿩엿 눈길
사라졌다 복원된 제주 토종 흑우
오래 구워도 부드러운 식감 자랑
제주 화교 애환 밴 간짬뽕도 별미

한우랑의 흑우. 사진 박미향 기자
한우랑의 흑우. 사진 박미향 기자

 꿩고기 식당으로는 40년 넘은 ‘골목식당’도 맛집 명단에 들었다. 말고기를 파는 ‘마진가’와 제주 토종 종자인 흑우를 부활시켜 파는 ‘흑소랑’도 눈길을 끌었다. “흑우, 울릉도의 칡소 등의 우리 토종 소 종자들은 일제강점기에 없어졌다”며 “2010년 제주대학교 등에서 흑우는 복원했다”고 한다. 흑소랑의 주인 송동환씨는 축산을 전공했다. 제주대의 흑소 복원 작업에도 참여한 여엇한 연구원이다. 종업원은 “한우와 다르게 오래 구워도, 식어도 식감이 부드럽다”고 연신 자랑을 늘어놨다. 양 원장이 맛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4~5년 전부터 흑우전문점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숫자는 적다. 재료 공급이 쉽지 않아서다. 흑우의 마릿수를 제한하는데다 한우에 비해 사육기간도 갑절 이상 길다. 흑소랑은 한우 100두, 흑우 300두를 사육하는 농장을 운영한다.

 섬의 해는 짧다. 제주시에서 차로 1시간 달려 서귀포시 강정동에 도착하자 바닷바람 사이로 슬픈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느 틈에 낮은 지붕 사이로 삐죽 아파트들이 튀어나와 동네 풍경을 해치고 있었다.

 오후 3시가 좀 넘은 시간, 문을 힘차게 밀고 들어간 곳은 ‘물질식육식당’이었다. “에이, 끝났는데….” 주인이 배시시 웃으면 말했다. 고기가 넉넉하게 들어가는 짬뽕이 유명한 이 식당은 오후 2시까지만 주문을 받는다. 발끝에서부터 아쉬움이 점점 차오를 때쯤 양 원장이 솔깃한 얘기를 들려줬다. 요즘 외식업계의 대세인 중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제주도의 화교사도 길다. 60년대 덕성원 등 역사가 오래된 화교들의 중식당이 많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 산둥반도에서 내려온 중국인들이 인천에서 한 무리가 내리고 일부는 더 남하해 목포, 군산에서 정착을 했다고 한다. “목포에서 바로 직진해 내려오면 한림항인데 목포에서 일부 화교들이 한림항으로 왔다.” 한때 번성하던 화교들은 박정희 정권의 화교탄압 정책으로 제주를 떠나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이제는 역사가 오래된 중식당이 많지 않다”면서 그가 데려간 식당은 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보영반점’이었다. 67년에 문을 연 보영반점은 차림표가 소박했다. 요리책처럼 두툼한 서울 중식당들과 달랐다.

보영반점의 간짬뽕. 사진 박미향 기자
보영반점의 간짬뽕. 사진 박미향 기자

 양 원장은 “여기는 ‘간짬뽕’과 ‘탕수육’만 주문하면 된다”고 일러줬다. 옆 식탁의 손님들도 모두 이 두 메뉴에만 매달려 있었다. 제주의 신선한 식재료를 쓴 간짬뽕은 볶음짬뽕이다. 소스는 간장과 고추장 사이 어디쯤에 있는 색다른 맛이었다.

뜬금없이 양 원장이 질문을 하나 던졌다. “제주도의 물회집들이 왜 빙초산을 쓰게 됐는지 아느냐?” 중국집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 토속 식초인 ‘쉰다리식초’(일종의 막걸리식초)는 구하기도 힘든데 중국집들이 빙초산을 편리하게 쓰는 것을 보고 따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빙초산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이제는 쓰는 곳도 줄었다.

보영반점의 간짬뽕. 사진 박미향 기자
보영반점의 간짬뽕. 사진 박미향 기자

섬에는 까만 밤이 내렸다. 몸은 먹는 데 지쳐 있었다. 위장은 과로사 직전이었다. 하지만 양 원장은 “이 집은 꼭 가야 한다”면서 제주시의 ‘모메존식당’으로 안내했다. 다시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왔다. 인생사와 같다.

그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동지나물김치’가 푸짐하게 반찬으로 나오고 각종 나물들이 맛깔스러웠다. 모메존식당은 깅이죽, 깅이콩무침, 깅이칼국수 등이 유명하다. 깅이는 제주 방언으로 게를 말한다. “우리 삼촌이 해녀였다. 재료를 지금도 다 삼촌이 구한다.” 인심 좋아 보이는 주인 한수열씨는 올해 예순이다. “본래 제주도는 가까운 이를 다 ‘삼촌’이라고 부른다”고 양 원장이 설명했다.

앞뱅디식당의 멜(멸치)국. 사진 박미향 기자
앞뱅디식당의 멜(멸치)국. 사진 박미향 기자

질 좋은 제주고사리를 푹 익혀 만든 제주식 육개장이 유명한 ‘우진해장국’, 두툼한 멸치 등을 넣어 만든 멜국 등이 소문난 ‘앞뱅디식당’, 횟집 ‘용출횟집’과 ‘혁이네수산’, 제주도 재료로 만든 파스타가 맛난 ‘부엌인세화’ 등 제주 맛집 명단은 맛의 보물지도였다.

양 원장은 관광객들을 위해 토속음식 이외에도 다양한 식당을 뽑았다고 한다. 제주민이 1차로 뽑은 식당 중에서 외국인 영사, 음식전문가 등 12명의 평가단이 ‘제주 식재료로만 맛을 낼 것’이라는 기준에 따라 최종 명단을 작성했다. 전체 목록은 공식 누리집(www.jejufoodandwinefestival.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제주 맛집 리스트 보기

(*위 내용은 2016년 4월27일자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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