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더하기 검은색 더하기 흰색은?
사자 빼기 갈기는?
쥐 더하기 날개는?
너구리 더하기 방귀는?
정답이 뭘까. 알쏭달쏭한 문제다.
요즘 부모들은 예전에 비해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낸다. 하지만 정작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재밌게 노는 이들은 많지 않다. 아이와 재밌게 ‘같이 노는 게’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니 ‘놀아준다’는 인식이 강하다.
통신연구원은 게임 원리 담은 놀이
철학자는 문답형 논리 게임으로
전문성 살려 놀이 개발한 아빠들
“아이와 놀아줘야지” 생각 많지만
함께 놀 줄은 모르는 부모들
눈높이 맞춰 ‘어떻게 놀까’ 고민해야
지난달 16일. 국내 최대 사람도서관 ‘위즈돔’과 벤처기부펀드 ‘C프로그램’이 플레이어스 포럼을 열었다. ‘놀이의 천재들, 내일은 뭐하고 놀까’라는 주제로 아빠, 교사 등 놀이전문가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특히 자신의 직업적 전문성을 활용해 아이들과 놀이를 즐기는 아빠들의 사례가 눈에 띄었다.
9살 주헌, 7살 은찬군의 아빠 이정원씨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근무한다. 연구원답게 아이들과 놀 때도 게임을 함께 연구하거나 새롭게 만들어낸다. 앞서 제시한 ‘동물수학퀴즈’도 그렇게 만든 게임이다. 문제의 정답은 각각 ‘얼룩말’, ‘엄마 사자’, ‘박쥐’, ‘스컹크’다.
“내가 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모든 놀이의 핵심은 주어진 규칙(제약조건) 안에서 ‘패턴찾기-구조화-최적화’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규칙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같은 게임을 반복하다 보면 아이 스스로 규칙을 찾아낸다.”
실제 동물수학퀴즈를 하면서 아이들은 패턴을 익혀 새로운 문제를 만들었다. “가재 더하기 침은?(전갈)”, “소 더하기 검은 방울 하얀 방울은?(얼룩소)” 하는 식으로. 이 게임은 단순하지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아이들은 문제를 맞히면서 각 동물에 맞는 특징을 더하고 빼서 새로운 동물을 탄생시킨다는 규칙을 터득한 뒤 놀이를 확장시켰다. 이씨는 아이들과 보드게임, 바둑이나 오목, 체스도 즐겨한다. 이 게임 역시 ‘패턴찾기-구조화-최적화’ 방식으로 돼 있다. 게임을 하며 얻은 정보에서 하나의 규칙을 찾고(패턴찾기), 그 이론을 바탕으로 또 다른 개별 사례를 분류해 파악한 뒤(구조화) 주어진 자원과 정보를 잘 배분해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내는 것(최적화)이다.
가끔 게임에서 지면 막무가내로 떼를 쓰거나 분을 못 삭이고 우는 아이들이 있다. 이씨는 “이기고 지고를 떠나 잘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고 레벨을 올려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습을 하면 점점 잘하게 된다는 믿음, 꾸준히 연습해 얻은 성공 경험은 아이를 성장시킨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구실은 옆에서 응원해주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칭찬해주는 것이다.
피아노 바이엘을 배우던 은찬이가 연주곡 ‘엘리제를 위하여’를 끝까지 치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그 곡을 완성하면 멋진 연주회를 열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 뒤. 이씨는 피아노 앞에 스탠드로 조명을 비추고 카메라로 동영상 촬영도 준비했다. 아이는 긴장한 모습으로 피아노를 쳤고 무사히 연주를 마친 뒤 가족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씨는 “대단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구름사다리 건너기, 팔굽혀펴기, 스피드컵 쌓기 등 아이가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일단 관심을 보이며 격려해주라”며 “막연한 칭찬보다 아이 수준에 맞는 목표를 설정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철학자 권영민씨는 커피숍에 가거나 행사장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 아들 선재와 ‘멘붕게임’을 한다. 철학적 딜레마가 담긴 문제를 아이 버전으로 바꿔 질문하는 놀이다. 가령, 이런 질문이다.
“태어날 때 너는 말도 못했고 키도 지금보다 작았지만 지금은 말도 잘하고 키도 많이 컸어. 그럼 그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같은 너일까, 다른 너일까?” “불은 위험해. 위험한 것은 좋지 않은 거지? 그럼 불을 끄면서 위험한 일을 하는 소방관 아저씨는 좋지 않은 일을 하는 거야?”
처음 질문을 들었을 때 아이는 말이 안 된다며 황당해하거나 화를 냈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반복하자 아이는 나름의 근거를 들며 주장을 편다.
“‘동일성’ 문제를 다룬 질문에 7살 아이는 ‘난 태어날 때부터 발등에 점이 있었으니 내가 맞다’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만약 그 점을 뺀다면? 그럼 발등에 점 있는 사람은 모두 너야?’라고 다시 질문했다.”
권씨는 아이의 생각을 아는 동시에 근거의 문제점을 지적해주면서 아이의 논증력을 키워준다. 예상치 못한 아이의 답변에 아빠도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멘붕게임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세상은 모호한 구석이 많고 누가 답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답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놀이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아이에게 놀이 규칙을 먼저 설명해주고 게임을 한다. 아이가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규칙을 바꾸려고 하면 “그게 아니야, 잘못됐어”라고 말하며 정해진 규칙을 따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 권씨는 규칙을 먼저 설명하지 않고 아이만의 규칙을 이해하려 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규칙을 알려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아이를 보면 단순하지만 나름대로의 규칙을 만들어 논다.”
부모가 아이의 놀이세계에 먼저 발을 내딛는 게 중요하다. 아이가 노는 규칙을 알기 위해서는 관찰이 우선이다. 아이의 규칙이 마음에 들지 않고 말이 안 되더라도 일단 아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와 판타지를 적극 지지하고 이해해야 한다. 권씨는 “기본적으로 부모가 아이와 놀겠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후 아이의 규칙을 이해한 뒤 조금씩 규칙을 함께 만들어갈 수도 있다”고 했다.
아이와 게임을 할 때 부모들은 ‘아이한테 져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다. 권씨는 어릴 적 아버지와 게임을 할 때 항상 이겼다. 이기는 싸움만 하다 보니 밖에 나가서, 커서도 지는 싸움은 안 하려고 했다. 지는 게 싫어서 아예 게임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아빠는 날 위해 한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지금 아이들은 밖에 나가면 무조건 1등을 외치고 승리하라고 한다. 게임이야말로 아이가 마음껏 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는 아이한테 무조건 져주지 않는다. 이기고 지면서 아이 스스로 경험을 얻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처음부터 게임은 가상의 상황이기 때문에 승패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해준다.
사실 이들처럼 자신의 일이나 전문성을 활용해 아이와 노는 게 특별한 건 아니다. 가령, 기자는 신문을 활용해 아이와 엔아이이(NIE) 교육을 하고 시인은 매일 시 한 편을 메일로 자녀에게 보내줄 수도 있다. 이씨는 “직업이나 일은 크게 상관없다. 놀이를 할 때 아이와 함께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