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내가 클 때는 부모님과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은 적이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말로 주고받는 표현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서로 직접 주고받는 일이 없지만, 부모님과 나 사이에 사랑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엄마한테 심하게 혼나거나 맞기도 하면서 컸는데 그럴 때 참 무서웠다. 엄격하고 센 엄마한테 기가 눌려서 직접적인 반항은 못했지만 속으로 굉장히 화나고 싫었던 적은 많았다. 사춘기 한때 ‘이러고도 친엄마 맞나? 차라리 고아가 낫겠다’고 혼잣말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도 엄마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주는 기억들도 쉽게 떠오른다. 우리 엄마는 내가 한참 컸을 때도 자고 일어나면 밥 먹는 자리까지 업다시피 해서 데리고 나와 주시는 경우가 많았다.
예전에 상담을 했던 한 아이는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힘들다’는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엄격하게 단속하는 대로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었고, 반대되는 의견이나 자기 속내를 말해보지 못했다. 일상생활에서는 너무나 떠들썩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주변 친구들한테는 아무 걱정 없는 아이, 선생님들에게는 공손하지 못하고 목소리 큰 아이로 여겨졌다. 정작 자신의 힘든 감정은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원래도 강인한 면과 밝은 면이 있는 아이였지만, 꽤 오랜 시간을 혼자서 참고 버티다가 “힘들고 답답하다”며 상담실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게 힘든 건지 물어보면 “몰라요”, “그런 거 없는데…”라는 식으로 말했다. 자기 마음을, 특히 감정을 표현하는 데 많이 어색해했다. 엄하고 말이 별로 없는 아빠 밑에서 일찍 철이 든 아이는 자기 속내를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었다.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하는 걸 왜 하냐?”, “네가 무슨 힘든 일 있다고”, “상담 절대 가지 마라”. 이렇게 말할 정도로 마음을 강하게 먹고 살아가길 바라는 아버지에게 대적하진 못하면서도 아이는 꾸준히 상담을 받았다. “아빠의 마음이나 생각이 어떤지 알고 싶다.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준다”며 아빠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상담을 통해 아이는 아빠와 자신이 ‘자기 마음을 의도대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음을 알아갔다. 그리고 자신을 생각하는 아빠 마음을 어느 정도 알겠다는 얘기도 했다. 엄마 없이 키우는 자식이라 더 엄격하게 대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화내는 걸로 표현하시곤 했다는 걸 말이다. 여전히 아버지는 화부터 낼 때가 많고 어떤 일이건 반대하고 통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이의 마음은 훨씬 더 여유로워졌던 것 같다.
자신의 부모나 가정에 대해 긍정적인 것만 표현하는 아이들이 있다. 설사 부정적인 얘기를 했다 하더라도 곧 다시 “꼭 그런 건만은 아니다”라며 좋은 점들을 열거하곤 한다. 자신의 말 때문에 자신의 부모나 가정을 이상하게 볼까 걱정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 상담 진행이 더디고 어렵다. 그럴 때 “네 부모님이 사랑을 주었다 해도 네 마음에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사랑이 네가 원하는 방식과 다르면 그럴 때 불만도 생기고 서운함을 느낄 수 있다. 자연스러운 거다”라는 말을 해주면서 아이들을 안심시키기도 한다. 대개 부정적인 감정을 충분히 쏟아내고 나면 긍정적인 감정은 저절로 올라온다. 그러니 부모님도 자녀가 부모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배신감을 느끼거나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밝고 어두운 부분, 좋고 싫은 면 양쪽을 다 볼 수 있을 때 균형감 있게 자랄 수 있다.
학교 아이들한테 부모님께 언제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칭찬받을 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때”, “내가 힘든 일로 고민하는 걸 걱정해줄 때”, “잘못을 했는데도 크게 혼내지 않고 위로해줄 때”, “학원 갔다 왔는데 ‘고생했지?’라고 토닥여줄 때”, “생일을 챙겨줄 때”, “그냥 안아줄 때”, “날 보고 웃을 때”, “‘사랑한다’고 말해줄 때”, “맛있는 밥을 해줄 때”, “내가 원하는 걸 해줄 때” 등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부모의 말과 행동, 태도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낀다. 어느 날 자신감이 점점 바닥날 때, 자신이 괜찮은 사람인지 의심이 될 때 일상에서 접한 부모의 따뜻한 말과 행동 등이 엄청난 의미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